질투심
"책을 한 권 쓰고 있습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책을 쓰고 있다고 알렸다. 오랜만에 뉴스에 등장하면서 알린 소식이 '출판 예고'다. 조기 대선을 염두한 유력 대선후보의 정계 복귀라는 해석이 쏟아진다. 한 전 대표가 어떤 책을 쓰고 있는 지보다, 출판의 정치적 의미가 뉴스인 셈이다.
뉴스를 보고 부러웠다. 마음만 먹으면 책 한 권은 뚝딱 쓰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밥벌이용 글을 썼었고, 책방을 운영하며 글을 쓰고 있지만 '내가 책을 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나는 항상 품고 살고 있는데. 그래서 난 한 전 대표가 쓰고 있다는 책이 궁금하다. 출간 작가가 되고 싶은 질투심을 갖고 그리고 양서를 골라 입고시키려는 책방 주인의 입장에서 한 전 대표의 책을 기다리기로 했다.
기대감은 사실 크지 않다. 정치인의 책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책을 자기 돈 내고 사서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치인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는 너무나 이례적인 일이다. 독자도 알고 정치인도 안다. 정치인의 책은 내용보다 정치적 의미가 중요하다고. 정치인의 책은 정치적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니까.
그래도 이례적인 일은 일어난다. 대표적으로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의 <안철수의 생각>이다. 2012년 '안철수 신드롬'을 일으키며 책 역시 화제가 됐다. 나도 사서 읽은 책이다. 당시 대선주자로 급부상한 안철수라는 사람의 정책과 비전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책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포인트를 정확히 짚었다.
정치인이라서 책이 평가절하되는 경우도 흔치 않게 있다. 정치부 기자와 책방 주인 생활을 하면서 정치인들의 책을 많이 읽어봤다. 그래도 주관적인 평가지만 평가절하된 책을 꼽으라면 두 권이 떠오른다.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대한민국 금기 깨기>와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의 <정책의 배신>이다.
출판 당시 정치인이라는 대외적인 정체성 때문에 내공을 쌓아온 전문성이 가려진 대표적인 정치인의 책이다. 정부 예산을 실무에서부터 다뤄온 김 지사는 현 제도의 문제적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디테일한 정책 대안을 책에 담았다. 정부 예산에 대한 오랜 경험과 공부가 없다면 쓰기 어려운 책이다. 윤 전 의원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출신답게 다양한 연구자료 등을 동원해 정책들의 빛과 그림자를 집요하게 파헤쳤다. 최저임금제도 등 우리 사회의 주요 정책 사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돕는데 유용한 책이다.
책방 주인의 입장에서 '한동훈 책'이 안철수보단 김동연, 윤희숙의 책을 따랐으면 한다. 유력한 대선주자로서 자신의 비전과 정책대안을 제시했던 <안철수의 생각>은 안철수라는 정치인의 행보와 성과에 따라 책의 운명도 갈린다. 더욱이 정치인으로서의 비전과 정책을 꼭 책으로 내야 하는 지도 의문이다. 필요하면 언론 인터뷰를 하면 된다. 반면 <대한민국 금기 깨기>와 <정책의 배신>은 다시 꺼내 읽어볼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정책을 실제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이 참고할 만한 내용인 것은 물론, 일반인들 역시 정부 또는 정치인이 추진하는 정책과 입법 등을 평가하는데 도움을 주기 충분하다.
기자 시절 한 전 대표와 점심을 먹은 적이 있다. 한 전 대표가 서울중앙지검 3차장을 할 때 출입기자로 만났다. 한 전 대표는 검찰 내에서도 실력을 인정받는 특수통 엘리트 검사로 유명했다. 특히 누구보다도 검사로서 공과를 극으로 겪어본 이력이 있다.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만큼 대한민국 검사, 더 나아가 검찰 조직에 대해 누구보다 디테일을 잘 알고 할 말이 많을 테다. 검사 시절 내용을 책으로 엮었던 다른 검사 출신 작가들의 책들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는데 기대 자체가 무색해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