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 / 어휘력
‘우천시에 ○○로 장소 변경’을 우천시라는 지역에 있는 ○○장소로 변경한다고 이해한 사례가 있다. 한 학부모가 가정통신문에 적힌 ‘중식 제공’을 ‘중식(중국 음식)만 제공된다’고 오해한 일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문해력 저하를 우려하는 기사에 나온 사례다.
'디지털 시대'라는 말에 '문해력 저하'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짧은 동영상과 SNS 등을 즐기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가리키는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문해력 위기를 극복할 대안들도 다양하게 제시된다. 독서는 진부해도 분명한 해법이긴 하기에 하나마나한 말이 된다. 더러 어휘력을 해법으로 제시하곤 한다. 단어를 모르거나 잘못 이해하면서 글 전체의 맥락을 놓친다는 문제의식이다. 문해력을 우려하는 기사들의 주요 사례들을 보면 단어의 의미를 일반 상식과 다르게 받아들이거나 단어의 사전적인 정의를 모르는 아이들 또는 어른들이 나온다. 그렇게 문해력 저하와 어휘력을 한 세트로 묶는 경우가 많다.
어휘력을 타깃으로 삼은 해법들은 직관적이면서도 비교적 단기간에 실질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할 수 있고, 그 방법을 충실히 실천할 경우 예상 가능한 결과물을 기대할 수 있다. 그래서 공부하듯 어휘를 익히라는 뉘앙스가 강하다.
최근 '한자 교육'이 어휘력을 키우는 동시에 문해력을 향상시키는 해법으로 거론된다. 한 지역 언론사에서는 "울산 척과초등학교 전교생의 71%가 한자 공부를 하며 문해력을 키우고 있다. 학생들은 한자를 외우며 급수를 따고, 한자어 이해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지난 3월 11일에는 전남도의회 교육위원회 서대현 의원이 대표발의한 ‘전라남도교육청 한자 교육 지원 조례안’이 전라남도의회 임시회 교육위원회 심사를 통과했다. 서 의원은 “문해력 문제의 대부분은 어휘력 부족에서 생긴다”며 “한자 교육을 통해 단어의 어원을 이해하고, 새로운 단어를 추측하여 어휘력과 문해력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한자교육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점가에서는 필사 관련 책이 인기라는 소식도 들린다. 어휘력을 키우려는 목적의식이 뚜렷한 독서다. 예스24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첫 선을 보인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는 출간 이후 22주 연속으로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올랐다. 아울러 지난해 올해 맞춤법/띄어쓰기 관련 도서의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10.4% 상승했고, 지난 2023년에도 전년 동기 대비 7.7% 판매량이 오르며 2년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고 한다.
다만 공부하듯 어휘력을 익히는 것이 문해력 향상으로 이어질지 의문이다. 물론 글 전반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휘력이 뒷받침 돼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많이 안다고 글의 문맥에 적합한 단어를 고르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문해력이 단순히 읽기 능력일까? 문해력이 국어 시험에 나오는 지문과 관련한 객관식 정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면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많이 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지 않을까.
"'맹자'에는 글자나 낱말에 매달려 글월의 말뜻을 그르치지 말라는 "不以文害辭(불이문해사)"라는 문구가 나온다. 요새들 이런 말을 모른다 어쩐다 같은 게 이른바 문해력 타령의 단골 소재다. 어휘력과 문해력이 다르지만 두 개념이 이어져 있고 어휘력도 중요하니 뒤섞는 거야 그렇다 쳐도 마치 글자, 낱말, 자구를 많이 알면 장땡인 듯 강요하면 문해력이 높아진다고 오해하게 만드는 게 더 문제 아닐까 싶다. 좋은 음식만 실컷 먹는다고 건강해지지는 않듯이, 어휘든 지식이든 그저 양적으로 많이 안다고만 해서 질적으로 높은 지력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신견식 칼럼 <어도락가(語道樂家)의 말구경> 중-
문해력은 텍스트를 읽고 그 의미를 '생각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국어 시험 지문을 읽는 것이 아니라 문학작품을 읽는 것이 문해력이다. 문학작품의 '이해'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 고전일수록 읽는 이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문해력은 글쓰기와 연결된다. 글쟁이들이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사람들이다. 작가 한강은 자신을 '읽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결국 문해력은 읽고 생각하는 힘으로 쓰는 데까지 나아가는 동력이라고 의미를 확장해 볼 수 있다.
어휘력도 마찬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정답만 따지지 말고 제각각의 상상력을 환영해 보면 어떨까. 어휘의 사전적 의미를 많이 외우기 보다, 문맥상 어떤 어휘가 더욱 맞아떨어지고 참신할지를 궁리해 보는 일에 무게를 두면 어떨까. 나아가 어휘를 골라보며 마땅치 않을 때는 새로운 어휘를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꾸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여전히 사상계의 이단아로 추앙받는 이반 일리치는 그의 책에서 자신이 만들어낸 단어를 써서 독자를 애먹이는 걸로 유명하다. 기존 단어로는 자신의 생각을 적확히 전달하기 어렵고, 자신의 말하고자하는 바를 조금 더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단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처음으로 돌아와 '우천시'를 굳이 이렇게 어려운 한자로 써야만 했을까. '비가 올 때'라는 쉬운 말도 있는데. '우천시'를 특정 지역명으로 이해하는 소수의 상상력이 문해력 위기의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일까. 참신해 박수를 치고 싶은 심정이 들었는데 오히려 이런 시각을 권장하면 안 될까. 또한 중식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중식 제공'을 보자마자 짜장면과 탕수육 또는 볶음밥과 잡채밥을 떠올렸다면 무식하거나 잘못된 일까. '점심식사 제공'이라고 풀어쓰면 헛된 기대를 품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사전을 통째로 외워서 어휘력이 확 좋아진다면 저도 그렇게 하려고 했어요(웃음.) 그런데 어휘력은 많은 단어를 암기하는 능력이 아니라 적재적소에 딱 맞게 어울리는 단어를 배치하는 힘이더라고요. 이미 알고 있는 언어에 관한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기보다는 그때그때 상황 속에 어울리는 단어나 어구를 발명해 내는 것에 가까워요. 단순히 단어를 찾는 능력이 아니라 문장 전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어휘력이에요." 정여울의 <끝까지 쓰는 용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