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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인연, 정치인 이탄희를 기다리는 마음

사적인 인터뷰

by 돈태

이탄희 전 의원과는 짧은 공적-사적 인연이 있다. 국회의원과 정치부 기자로 안면을 텄고, 독서를 많이 하는 정치인과 책방을 운영하는 기자로 서로 읽고 있는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이 전 의원이 국회에서 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외로운 투쟁을 벌이던 어느 날, 늦은 저녁에 걸려온 이 전 의원의 전화를 받고 진심으로 응원을 했던 기억이 난다. 21대 국회가 끝날 무렵 인사라도 할 겸 국회에 있는 이 전 의원의 의원실을 찾았지만 만나지 못했다. 대신 갖고 간 책을 보좌관에게 건네며 전해달라고 부탁했었다. 책을 많이 읽는 이 전 의원이 읽지 못했을 것 같은 책을 고르느라 일부러 절판본을 준비했었다. 이후 이 전 의원과의 연은 사실상 단절된 상태로 시간이 흘렀다.


올해 1월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카카오톡의 '업데이트한 프로필'에서 이 전 의원을 발견했다. 22대 총선이 끝나고 이 전 의원의 근황을 확인할 길이 없었던 터다. 이 전 의원의 카톡 프로필을 누르니 사진 밑에 '법무법인 덕수'라고 적혀있었다.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구나, 짐작했다. 당시 연락을 해볼까, 말까 고민하다 관뒀다.


며칠 뒤 인터넷에서 '[단독] 이탄희 전 의원 로펌행 결정…'덕수'에서 변호사 활동 시작'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봤다. '취재를 종합하면'이라는 문장이 적힌 기사에서, 새로운 내용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이 전 의원에게 연락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인으로서의 이탄희를 조용히 응원하면 될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낸 후,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막바지로 치달을 때쯤 문득 이 전 의원의 소식이 궁금했다. 뒤늦게 이 전 의원이 가장 최근에 올린 페이스북 포스팅도 발견했다. 여의도 국회 앞 대로로 보이는 곳에서 탄핵찬성 집회를 하고 있던 거 같은 시민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린 이 전 의원은 계엄 후 정국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처음으로 짧게 공개했다.


'우리는 함께 버티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아가 또 한 번 평범한 시민들의 고됨과 헌신으로 이 공동체를 지켜냈습니다. 우리의 일상을 지켜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다시 한번 보여줬습니다. 정말로, 마음 깊이 우리 국민을 존경합니다.' <이탄희 페이스북 포스팅 글 중>


이탄희 페이스북.jpg 1월 29일 이탄희 전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포스팅한 사진.


이 전 의원이 다시 정치활동을 시작할까, 궁금했다. 페이스북 포스팅을 보면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시 정치권으로 돌아올 거라는 기대를 갖기 충분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연락을 하는데 정치 복귀를 묻기엔 불편했다. 더욱이 기자로서가 아닌 일반인으로, 어쩌면 팬심일 수도 있는 그런 마음으로 이 전 의원에게 연락을 하고 싶었다. 잘 지내고 계시냐고, 그냥 한 번 연락해 봤다고, 내 근황은 이러저러하다고, 무심한 듯 애정을 담아 이 전 의원에게 문자를 남겼다.


몇 분 안 돼 이 전 의원의 답문이 도착했다. 이 전 의원의 문자에는 반가움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그러면서 이 전 의원은 "이제 완전한 생활인이 되어서 지내고 있어요"라며 시간이 되면 차 한잔 하자고 했고, 난 연락하고 얼굴보러 가겠다고 답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한다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의 선고를 TV로 본 후, 이 전 의원에 대한 소식이 다시 궁금해지고 있다. 생활인 이탄희가 아닌 정치인 이탄희를 기다리는 마음은 커지고 있다. 계엄과 탄핵을 지나오며 여전히 출구가 보이지 않는 분열의 정치가 극으로 치닫는 모습에, 선거제도 개편 토론을 위한 국회 전원위원회에서 가장 먼저 단상에 올라 '반사이익 구조 타파'를 외쳤던 이 전 의원의 모습이 점점 더 선명히 겹치는 요즘이다.


"상대만 못 찍게 하면 선거 이기니까요. 제 소속 정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일 굴욕 외교 그 참담함을 반복해서 폭로하면 그만인 것이지 더 나아가서 새 시대의 외교 전략 그 대안을 말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쉬운 정치가 없습니다. 남의 말에 조롱하고 반문하고 모욕 주면 끝입니다. 고소, 고발하고 체포동의안 보내고 악마화하면 그만입니다. 반사이익 구조니까요. 그래서 대한민국 정치에는 일 잘하기 경쟁이 없습니다. 대안 경쟁이 없습니다. 문제를 방치합니다. 200만 농민, 100만 하청 노동자의 생활고는 버리고 갑니다.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그래도 선거 이기는 데 지장이 없으니까요." <2023년 4월 10일 국회 전원위원회 이탄희 의원 발언 중>


탄핵 선고가 나면서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이 6월 3일로 확정됐다. 각 정당이 선출한 대선 후보들은 5월10~11일 중앙선관위에 후보자 등록을 하면 된다. 후보자로 등록하려는 공직자는 선거일 30일 전인 5월4일까지 사직해야 한다. 공식 선거운동은 5월12일부터 6월2일까지 22일간 펼쳐진다. 이미 분위기는 대선정국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선주자들의 이름이 거론되며 누구는 공식적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어떤 이는 불출마 의사를 밝히고 있다. 주요 여론조사 기관에서는 대선주자 지지도를 내보내기 바쁘다. 거대 양당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더불어민주당은 경선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분위기가 엿보이고, 국민의힘에서는 '군웅할거'라고 할법 하다.


생활인이 된 이 전 의원의 이름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보이지 않는다. 한 때 이 전 의원도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 이름을 올리며 신선한 충격을 줬던 적이 있다. 지난 2023년 6월 2일 한국갤럽은 5월 30일부터 6월 1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장래정치지도자 선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언론들은 결과를 대선주자 지지도로 받아들여 보도했다. 여기서 이 전 의원은 1%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 이름을 올렸다. 이제 막 정치에 입문한 초선 의원이 정치권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신망을 쌓거나 대중적 인지도를 높인 고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결과는 놀라웠다. 그렇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보면 수긍이 가는 여론조사 결과다. '그 과정'을 짧게 요약해 의미화한 한 글이 있다. 지난해 3월, 22대 총선을 앞두고 김누리 중앙대 교수가 <한겨레신문>에 쓴 칼럼이다.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이 전 의원의 경쟁력을 다섯 가지로 평가한 대목이다.


첫째, 이탄희는 1978년생 40대 중반으로 1972년생 50대 초반의 한동훈보다 젊다. 이탄희의 등장은 586운동권 대 법기술자(테크노크라트)의 대립 구도를 깨고 ‘새로운 진보적 젊은 정치’의 개막을 알릴 것이다. 둘째, 이탄희는 한동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혁적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의 사법 농단을 폭로한 이탄희의 용기와 윤석열 대통령 앞에서 90도 ‘폴더 인사’를 하는 한동훈의 굴종을 비교해보라. 셋째, 이탄희는 한동훈보다 훨씬 더 ‘똑똑하다’. 이탄희와 한동훈이 논쟁을 벌이는 유튜브는 널려 있다. 직접 확인해 보시라. 넷째, 이탄희는 귀족적인 한동훈과는 달리 서민적이다. 가락시장의 가난한 서민적 환경에서 성장한 이탄희는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매우 민감하다. ‘강남 키드’ 한동훈과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르다. 다섯째, 이탄희는 사려 깊고 예리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심연의 언어’를 구사하는 보기 드문 정치인이다. <이탄희가 희망이다 [김누리 칼럼] 중>


이탄희 손석희.png jtbc 뉴스룸 유튜브 갈무리.


개인적으로는 김 교수가 꼽은 다섯 가지에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정치부 기자를 하면서 만났던 국회의원과 여의도 정치인들에게서는 보기 힘들었던 점이다. 이 전 의원의 삶을 대하는 자세와 마음이다. 진정성 또는 진중함이라는 단어로 대신할 수 있겠지만, 단어가 갖는 의미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한 느낌이다. 이 전 의원에 대한 이런 감정을 처음 받은 것은 그가 국회의원이 되기 전,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 <뉴스룸>에 나왔을 때다. 손 앵커가 인터뷰 도중에 자신의 질문을 '그 따위 질문'이라고 깎아내리며 반성하고, 사과를 하게 만든 이 전 의원의 답변이다. 그때 받은 모호한 감정을 최대한 정확히 전하고자 그 대목의 인터뷰 발언을 그대로 옮긴다.


손석희 : 이 질문이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는데. 개인이 부각되는 걸 원치 않는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참여연대에서 제정한 올해의 의인상은 또 받으러 가셨더라고요.


이탄희 : 사실은 그 행사에 언론이 온다는 것을 정확히 예측은 못했고요. 다만 거기 간 이유는 있습니다. 저도 사실 망설였습니다. 거기 가는 게 어떻게 비출까. 거기 있는 분들에게. 제가 아들이 하나 있는데 제가 아파트 살다 보니까, 단지 내에 있는 편의점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가끔 산다. 나눠주면 아이들이 좋아하고 그 모습을 보면 좋은데. 하루는 아이스크림을 사 왔는데 애가 표정이 너무 안 좋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왜 그러냐고 했더니 아빠가 없어진 줄 알았다, 어디 잡혀간 것처럼 생각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때 충격을 받았어요. 저는 이걸 잘 극복해서 하루하루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이는 그때 겪었던 일에 갇혀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시상식 가서 아빠 상 받는 모습도 보여주고. 좀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서 시상식에 같이 데리고 갔습니다.


손석희 : 아... 죄송합니다. 그 따위 질문을 던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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