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 좀 하면 어때

진짜 인간적인

by 돈태

"나는 너희들 내려올 때 맞춰서 갈 테니 술이나 같이 마시자."

y형은 산에 오르지 않겠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친한 몇몇이 의기투합해 주말 등산을 성사시켰다. 의기투합 멤버인 y형은 등산은 안 하고 술만 마시겠다고 못을 박았다. 같이 올라가자는 다른 멤버들의 '붙잡음'에 y형은 쿨하게 "어차피 내려올 거, 왜 올라가냐"고 받아쳤다. 나는 물론이고 다른 멤버들은 더 붙잡지 않았다. 등산에 대한 y형의 냉소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똥인지 된장인지 맛을 봐야지 알지. 멋진 말로 허접함을 가리려 한다는 못마땅함도 속에서 치밀었다. 저 나이 먹고도 아직도 애네 애야, 저 형 멀었다. 속마음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어쨌든 한 명이라도 더 같이 술을 마시면 즐거울 테니. 선배면 술값을 더 낼 테니.


내게 '냉소'라는 개념은 비겁함 또는 철없는 투정 정도의 부정적인 이미지다. 현실을 바꿀 용기가 없으니 그럴싸하게 포장해 발을 빼는 잔기술 또는 능력도 안 되는 놈이 세치 혀로 자신의 허물을 숨기려는 비열한 나약함으로 와닿았다. 특히나 뭔가 철학을 담은 듯한 냉소의 말에는 혐오감마저 느끼며 경계했다. "어차피 회사 안 바뀐다." "세상 혼자 사는 거야. 사람들 다른 사람한테 관심 없어." "누가 되던 세상 똑같아." "답은 정해져 있어." 세상 살아가는 이치를 꿰뚫고 있다는 식으로 내뱉어진 냉소적인 말들에는 무력감과 패배감이 감춰져 있다며 냉소를 냉소했다.


냉소를 경계하는 마음에 타협의 여지는 없었다. 냉소의 말들에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이며 치를 떨었다. 보통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회사 내에서 선배인 사람들로부터 냉소의 말을 들었다. 그럴 때면 그들을 향해 '비겁하고 나약한 인간들. 나는 니들처럼은 안 산다'라고 속으로 으르렁댔다.


남들이 보기에 갑작스럽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음속에 오래 쌓아둔 사표를 밖으로 던진 후 냉소를 바라보는 시각이 따뜻해지는 나를 느낀다. 냉소를 대하던 태도를 떠올리면 무식하고 무례했다는 생각이 앞선다. 말꼬리 잡듯 냉소의 말을 했다는 이유 하나로 그 사람의 가치관, 삶에 대한 자세를 함부로 재단하고 깎아내렸다. 회사를 관두니 세상이 다르게 보여서일까. 전에 읽었을 때는 무심히 지나쳤던 책의 내용이 요즘 머릿속을 맴돈다. 확고한 신념으로 자리 잡았던 냉소에 대한 '반감'이 실은 고정관념에 갇힌 팍팍한 무지였음을 구병모 작가의 <단지 소설일 뿐이네>에서 뒤늦게 확인했다.


"피 흘리며 자갈밭을 구를 각오를 버리고, 공허와 허무를 구실 삼아 자신의 취약함을 합리화하는 것으로 보이겠지. 그런데 그게 사실이라 치고, 쉬운 거 좀 하면 안 되나? 냉소를 경계해야 한다고 확언하는 자를 경계해야 한다고 나는 말하겠네."


y형의 냉소도 다시 생각해 본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몸이 그날따라 안 좋아서 산에 오르기 힘든데 술은 마시고 싶었을 수도. 아니면 원래 몸 쓰는 운동과 거리가 멀어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을 수도 있고. 또는 등산을 진심으로 무용한 일이라는 철학을 가졌을 수도 있었겠다. 이유야 어쨌든 y형은 적어도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지는 않았다. 김기태 작가의 <보편교양>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냉소는 독이었지만 적당히 쓰면 자기 연민을 경계하는 데에 유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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