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배워야 할 자세

진짜 인간적인

by 돈태

영화보다 현실이 더하다. 대전 초등학교 살인사건 뉴스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충격이었다. 어제오늘 주요 언론은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김하늘(8)양과 관련된 보도를 메인 뉴스로 내보내고 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초등학생을 학교에서 죽였다는 팩트는 그 어떤 이유도 따라붙을 수 없는 일이다.


애끊는 부정 “‘제2 하늘이’ 나오지 않도록 법 만들어야”

수많은 관련 기사 가운데 눈에 들어온 제목이다. 하늘이 아버지의 말을 제목으로 달았다. 자식을 잃었다는 위로될 수 없을 슬픔에 빠져있을 아버지가 사회를 향해 어렵게 꺼내놓은 목소리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또 벌어지지 못하도록 법을 고치라고. 또다시 하늘이와 같은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게 해달라고.


감히 아버지의 지금 심정을 헤아릴 길은 없다. 어떤 힘이 남아 있어서 저런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머릿속만으로는 가늠하기 힘든 마음이다. 아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당장 떠오르는 감정은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라는 참담함, 가해 선생에 대한 분노, 딸을 잃은 극한의 슬픔 등일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아버지는 자신의 감정에 침몰되지 않고 밖을 향해 공적인 목소리를 내질를 수 있었을까.


아버지는 슬픔 속에만 있을 수 없다는 절박함을 느꼈을 수 있다. 자신의 슬픔이 다른 사람의 슬픔이 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일 수도 있다. 은유 작가가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의 진실요구 목소리를 언급하며 썼던 "내 자식만을 위해선 내 자식을 위할 수 없다"는 말과 닿는다.


"가해자로 만든 위치에서 벗어나기를 선택"

무엇보다 아버지는 본인이 피해자 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수 있다. 오히려 가해자일 수 있다는 죄책감을 무의식적으로 감지하며 명확하지 않은 대상과 싸울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아버지는 취재진 앞에서 "엄마·아빠와 학교 선생님은 너를 지켜주는 슈퍼맨이라고 했는데 선생이 아이를 죽였습니다"라고도 말했다. 역사학자 후지이 타케시는 <무명의 말들>에서 "유가족들이 계속 싸울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피해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가 가해자임을 깨닫고 자신을 가해자로 만든 위치에서 벗어나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고 썼다.


꼭 공적인 목소리가 아니더라도 아버지가 자신의 딸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혼자만의 슬픔으로 스스로를 가두지 않기 위해서라도. 아버지에게는 배제가 아닌 배려가 필요한 때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위로한다며 아버지 앞에서 자식 이야기를 피하며 눈치 볼 일이 아니다. 아버지가 슬픔은 슬픔 그대로, 그리움은 그리움 그대로 딸과 관련된 감정과 추억을 나눌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주는 자세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슬픔은 배워야 할 자세다. 배제를 배려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을 테다. 론 마라스코와 브라이언 셔프는 <슬픔의 위안>에서 "슬픔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을 용서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슬픔의 일부"라고 말했다.

매거진의 이전글냉소 좀 하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