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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내식당 재발견

250326 무기

by 돈태 Mar 26. 2025


알람을 맞춰 놓은 시간보다 일찍 잠에서 깼다. 입 속이 마르고, 소화불량으로 속이 불편하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알람이 울릴 때까지 1시간 정도 남았다. 베개를 높이고 다시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는데 알람 시각을 살짝 넘겼다. 알람을 못 들을 정도로 잠에 빠졌나 보다. 잠자는 내내 역류성식도염이 의심되는 증상으로 고생을 하다가 겨우 1시간 정도 제대로 잠이 들었던 거 같다.


‘걸어야겠다.’ 원래는 집을 나와 사우나에 가서 운동을 하려고 했는데 밖에서 걷기로 마음을 먹었다. 유산소 운동을 하면 소화불량이 좀 나아질까, 하는 생각에서다. 걷기 편한 옷을 입고 걷기 편한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왔다. 평일을 시작하는 동선은 두 가지인데, 사우나에 가지 않는 날은 걸어서 4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맥도널드에 간다.


맥도널드에 가면서 보통 오늘은 어떤 글을 쓸지 생각한다. 오늘은 커피를 마실지 안 마실 지를 두고 고민했다. 소화불량에 커피가 안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과학적으로 얼마나 신뢰성 있는지 모르겠다. 커피에 대한 일반 상식이 건강에 부정적이다. 몸이 안 좋으니 일단 기대 본다. 맥도널드에 도착해서 커피 대신 제로콜라를 마셨다.  


맥도널드에서 시작하는 평일은 다음으로 이동할 후보지가 두 가지다. 맥도널드에서 차도를 건너면 바로 있는 시립도서관 아니면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교보문고다. 오늘은 교보문고로 결정했다. 더 걷자는 생각이 강했다. 물론 신간을 공짜로 읽는다는 설렘도 한몫했다.


대형마트 3층에 있는 교보문고는 내가 가본 대형서점들 가운데 책읽기가 가장 좋은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 만큼 이곳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다. 오전 10시 30분에 문을 여는데 조금만 늦어도 책읽는 자리를 놓친다. 교보문고 오픈 시간에 맞춰 도착하기 위해 맥도널드에서 적당한 시간에 나왔다. 다행히 단골 자리가 비워있다. 긴 테이블에 의자 여러 개가 놓여 있는 곳에서 바깥쪽으로 산이 보이는 창과 가장 가까운 가장자리다.  


교보문고에 가면 점심 식사를 하기 전까지 책을 읽는다. 교보문고가 있는 마트 건물 내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할 수 있지만 비싸다. 교보문고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정도 떨어진 전통시장에 가면 싼 값에 배를 든든히 채울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은 집과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하기에 돌아올 때 대중교통을 탈 가능성이 높다. 오늘은 무조건 걷자는 신조다. 교보문고에서 집 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식당들을 떠올렸다.


메뉴는 상관없다. 속이 편했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가성비다. 요즘 웬만한 식당에서 한 끼 해결하는데 1만 원이 깨진다. 자연스럽게 구내식당이 떠올랐다.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기업 구내식당들 가운데 일반인에게도 개방되는 곳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다. 회사를 관두면서 덜 쓰는 삶을 살려고 머리를 굴리다 알게 된 것 중 하나다. 교보문고에서 집으로 가는 길 중간쯤에 농협하나로마트가 있다. 그 건물 옥상에 일반인도 이용 가능한 구내식당이 있다. 나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다소 늦은 점심시간에 구내식당에 도착했다. 시간도 그래서 한산할 줄 알았는데 틀렸다. 구내식당 자리는 사람들로 꽉 찼다. 구매한 식권을 내고 식판을 들어 밥과 반찬이 있는 테이블 쪽에 줄을 섰다. "와 대박." 순간 혼잣말이 작게 나왔다 국을 포함해 반찬 수만 8개다. 메인이라고 볼 수 있는 반찬도 두 개다. 김치 종류도 두 개다. 어느새 좋아져 버린 파김치가 눈에 들어왔다. 식판의 반찬 놓는 자리를 초과한 반찬 종류다. 메인 반찬을 퍼가는 양도 제한하지 않는다. 반찬의 배치를 고심한 후 듬뿍듬뿍 퍼 옮겼다.


사람들 사이로 빈자리 하나가 보여 얼른 차지하고 식판을 내려놨다. 핸드폰을 꺼내 넷플릭스를 켰다. 구내식당의 장점 중 하나가 자리만 차지하면 느긋하게 밥을 먹어도 눈치가 덜 보이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최대한 천천히 꼭꼭 씹으며 식사를 마쳤다. 구내식당에는 영양사가 재료와 음식을 관리할 거란 믿음이 있기에 한층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구내식당을 나오면서 돈도 건강도 챙겼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다시 집 방향으로 걸었다. 집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셔야겠다는 생각이다. 구내식당에서 건강해졌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오늘 내내 미뤘던 커피를 한 잔 해도 된다는 위로를 하며 걸었다. 순간 인플레이션과 소화불량에 맞설 든든한 무기 하나를 찾았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 멈춰 '괜찮네'라고 혼잣말을 내뱉었다. 오늘 눈을 사로잡은 기사도, 책 내용도 딱히 없다. 이걸로 쓰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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