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발견한 단골 이유
정기권을 끊고 가는 동네 사우나에서 평일 오전에 운동을 한다. 사우나에서 운동을 한다는 것은 비밀스럽고 호사로운 습관이다. 사람이 뜸한 평일 오전 사우나에서 사물함 두 개를 쓰고, 땀을 두 배 이상을 뺄 수 있는 공간에서 운동을 하며, 짧은 코스지만 수영까지 가능하다. 무엇보다 자연인의 느낌으로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 다만 다소 가격이 비싸다. 하루에 8500원을 내고 누린다.
최근 새로운 사실을 뒤늦게 발견했다. 이 사우나에 단골이 된 다른 이유 하나다. 같은 건물 1층에 위치한 빽다방의 존재다. 사우나에 들어간 후 보통 1시간 30분 정도 지나면 나온다. 그리고 바로 빽다방으로 가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신다. 하루 첫 커피다. 집을 나오기 전에 일부러 커피를 안 마신다. 사우나 후 마시는 아이스아메리카노의 맛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빽다방은 테이크아웃 전문 커피숍답게 가격이 싸다. 더욱이 사우나 건물 빽다방은 내가 여태껏 가본 빽다방 가운데 내부 공간이 가장 크다. 좌석도 많고 테이블도 넉넉하다. 그냥 앉아서 커피만 마시기 좋을 뿐만 아니라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글을 쓰기 좋은 환경이다. 콘센트도 적당히 있다.
무엇보다 매장 구석 창가 쪽 자리는 훌륭하다. 테이블은 넓고 큰 창 때문에 바깥이 훤히 보여 자리에 앉아 있으면 뭔가 탁 트인 느낌이다. 콘센트도 있는 자리다. 커피를 시켜 놓고 2시간 정도 앉아 기사와 책을 읽거나 글감을 정리하기 딱이다. 사우나에서 나와 빽다방에 오면 곧바로 차지하는 단골 자리다. 사우나에서 나오는 시간도 마침 빽다방이 문을 여는 시간이랑 겹친다.
얼마 전 사우나를 나와서 빽다방 앞에 도착했는데 문이 안 열려 있었다. 오픈 시간도 지났기에 뭐지 했다. 사우나 단골이 되고 한 번도 문이 닫혀 있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출입문에 붙어있는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직원들과 상의를 해서 며칠간 휴가를 다녀온다는 내용이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비로소 빽다방의 소중함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오늘 또 하나의 사우나 단골 이유를 봤다. 음료를 받는 쪽에서 손님의 함박웃음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에 왔다고 직원과 짧게 대화를 나누고 미소진 얼굴로 가게를 나갔다. 괜히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돌이켜 보니 내가 항상 이곳에 오는 시간대 손님들이 같은 직원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자주 봤다. 날씨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고, 데리고 온 강아지 이야기를 하는 사람, 오랜만에 왔다는 사람도 있다. 손님들은 하나같이 직원에게 미소를 짓는다. 직원도 한 명 한 명 원래 알던 사람인 마냥 친절하게 짧은 대화를 주고받는다. 오늘 신문에 실린 기사들 가운데 눈길을 끈 기사 내용과 겹치는 풍경이다. 경향신문에 실린 김지원 기자의 <돈 없어도…느긋한 머무름·자유로움과 사유의 공간을 허하라[인스피아]>다. 오랜만에 완독 한 긴 기사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는, 마치 더월드호처럼 대부분의 공간이 수익을 내기 위한 배타적인 공간으로 생명력을 잃은 채 시무룩해지게 되었고 - 극소수의 공간만을 겨우 가지고 살아갈 뿐인 것이 아닐까 하고요. 그런 도시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족스럽게 살아가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