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 사교육
평일 루틴을 생략하고, 집에서 나와 국회로 향했다. 정확히는 집과 국회의 중간 지점 정도인 홍제역 근처 커피숍으로 갔다. 홍제역 근처에서 국회로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다. 커피숍에서 오늘 쓸 글과 관련해 기본적인 내용을 정리하고 시간에 맞춰 편히 국회로 가기 위해서다. 그 '시간'이란 것은 오전 10시 30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리는 토론회 시각이다. '현실성 있는 유아 사교육비 조사를 위한 대책을 제시한다'는 이름을 달고 열리는 토론회다. 최근 4세 고시, 7세 고시 그리고 각종 패러디 영상으로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영유아 사교육의 실태가 궁금했다. 올해 처음 유치원에 들어간 5살 아들을 둔 아빠의 입장이기에 더욱 관심이 갔던 거 같다.
"거기 아무나 들어갈 수 있어?"
전날 와이프한테 내일 국회에 가서 토론회 보고 올 거라고 말하니 돌아온 답이다. 일반인들에게 국회 입출입은 자연스럽지 않다. 국회 정문에서부터 경호 인력들이 서 있다. 국회를 처음 온 사람들은 정문 앞에서 뭔가 허락을 받고 들어가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를 느끼기 쉽다. 하지만 국회 정문에서는 차량 통제를 할 뿐 일반인들의 입출입을 일일이 통제하지 않는다. 국회 정문은 누구나 걸어서 자유롭게 들락거릴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오늘 국회 정문을 통과하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어 눈치를 봤다. 5년 가까이 국회를 제집처럼 들락거리며 출입기자 생활을 했으면서도 일반시민으로는 처음 국회에 오니 와이프의 말이 와닿았다.
국회에서 일반시민의 입출입을 통제하는 곳은 각 건물 내부에서부터다. 기자 시절에는 출입증을 갖고 자유롭게 오가던 의원회관인데, 방문증을 끊어야 하는 처지가 되니 묘한 감정을 느꼈다. 경조사 전에 사표를 쓰지 않는 심정이랄까. 특권 비슷한 소속이 있다는 것이 이런 걸까.
2시간 정도 이어지는 토론회는 알찼다. 최근 교육부가 일부 공개한 '2024 유아사교육비 시험조사'의 주요 내용과 부족한 점 그리고 향후 본조사가 이뤄질 경우 수정보완해야 할 구체적인 내용 등이 발제됐고 어린이집, 학부모, 학계, 시민단체 등에서 토론자로 참석한 사람들이 각자의 전문성으로 토론 내용을 채웠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내용은 발제자가 분석해서 밝혀낸 사실이다. 발제자에 따르면 교육부와 통계청이 협업해 진행한 이번 시험조사의 대상지역에서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노원구, 양천구 등과 같은 사교육 과열지역이 제외됐다. 토론자 사이에서 해당 지역이 빠진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토론자로 참석했던 교육부 영유아정책교육총괄 과장은 수긍을 하고, 올해 중 진행할 조사에서는 해당 5곳을 포함시키겠다고 약속했다.
토론회를 통해 영유아사교육에 대해 모르고 있던 것이 많았다는 뿌듯함을 느꼈지만, 한편으로 찝찝했다. 정부가 영유아 사교육에 문제의식을 갖고 진행한 조사에서 문제의 진원지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을 뺐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런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교육부 과장의 발언에서는 한숨이 나왔다. 4세 고시, 7세 고시라고 불리는 현상을 외신에서도 취재하며 사회적인 논란이 되고, 그 중심에는 대치동이라는 상징적인 지역이 있다는 것이 상식인데! 도대체 대치동은 지금 어떤 모습이길래! 의원회관 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려는 계획을 접고 대치동을 한 번 가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국회의사당역에서 9호선을 타고 봉은사역으로 갔다. 여기서부터 집으로 돌아올 길을 염두해 3호선 학여울역까지 걷기로 했다. 두 역 사이에는 얼마 전 '황소고시'로 화제가 초등학생 선행학습 수학 학원인 '생각하는 황소'가 있고, 온라인에서 대표적인 영어 유치원으로 유명한 곳이 몇 군데 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대치동 거리는 한산했다. 사교육을 받으러 유치원에 가는 아이들과 부모들의 모습은 잘 안 보였다. 한 영어유치원 건물에서는 창문을 통해 선생님들이 영어로 수업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영유아 사교육 현장인 건물들 사진을 핸드폰으로 몇 장 찍고 학여울역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 들어와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시켰다. 무엇을 바라고 대치동에 왔을까? 한산하고 평범해 보이는 대치동 풍경에서 힘이 빠진 걸까? 뱃속에서 허기가 밀려왔다. 커피숍에서 토론회 내용과 대치동을 둘러본 내용을 글로 옮겨서 오마이뉴스에 올렸다. 기사가 홈페이지에 실렸다는 오마이뉴스 알림이 왔다. 글이 상당히 건조하게 편집됐다. 편집된 기사를 보며 감정이 상했다가 점점 수긍을 하고 있다.특별할 거 없는 대치동 현장을 굳이 의미화해서 토론회 내용에 억지스럽게 연결했던 거 같다. 있는 그대로 쓰지 않고 기사를 만들려고 했구나! 아직 옛날 버릇 못 버렸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