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단골가게
평일에 자주 가는 단골 가게가 몇 군데 있다. 커피와 간식을 먹을 수 있고, 노트북으로 글을 쓰거나 책을 읽기 편한 가게들이다. 커피숍도 있고 패스트푸드점도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들리는 가게들이다. 아침에 집을 나와 이동하는 동선을 고려했고, 메뉴 가격도 싸다. 무엇보다 선호하는 자리를 쉽게 차지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누구도 인정하지 않지만 '나만의 지정좌석'이 있는 가게들이다.
나만의 지정좌석에는 공통점이 있다. 테이블이 넓다. 최소 네 명이 앉을 수 있는 크기다. 테이블 주변에는 콘센트가 있다.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배터리를 신경 안 쓸 수 없다. 아울러 집중력 고려해 자리가 있는 공간의 환경도 중요하다. 타인의 시선이 웬만해선 닿지 않아야 한다. 개방된 곳에서 사인적인 영역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절묘한 위치다. 여기에 하나 더해 내 시야를 탁 트이게 해 준다. 햇볕이 잘 드는 구석의 창가 자리가 대부분 그렇다.
가게 사장님한테 미안하지만 이런 자리를 지정좌석으로 삼기 위해서는 손님이 별로 없어야 한다. 손님이 많다면 누군가 먼저 나만의 지정좌석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손님이 많은 가게에서 의자가 네 개 정도 놓여 있는 테이블을 혼자 차지하려면 아무래도 눈치가 보인다. 이런 조건들을 만족시킨 현재의 단골 가게들은 내게 너무나 소중한 공간이다. 귀찮은 마음에 해보지 않았던 포인트 적립도 열심히 하고 있다. 가게가 문을 닫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하며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이용한다.
최근 평일 동선에 변화가 생겼다. 취재와 공부를 위해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국회에 가야 할 거 같다. 국회에 가기 전에 한두 시간 머무를 곳이 필요하다. 취재를 위한 자료 정리를 하고, 국회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도착할 수 있는 위치여야 한다. 새로운 단골 가게가 필요한 셈이다.
집에서 국회로 가는 동선에 위치한 커피숍을 물색했다. 네이버지도에서 기존 단골 가게와 같은 브랜드의 커피숍을 확인했다. 오픈 시간도 빠르고 매장도 넓어서 자리에 여유가 있을 거 같다. 처음 국회에 가기로 마음먹은 날, 미리 확인해 둔 커피숍을 먼저 갔다. 이른 아침 오픈 시간에 맞춰 도착하니 생각대로 손님이 없다. 테이블도 넉넉하고 창도 큼직하니 시원하다. 속으로 '됐다'라고 외쳤다. 만족스럽게 창가 쪽 자리를 둘러보는데 테이블마다 놓여 있는 작은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분들도 이용하실 수 있도록 1인 1테이블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창가 쪽 테이블들은 모두 1인용 테이블 두 개를 붙여서 4인용 자리로 만들어 놨다. 안내판의 의미는 혼자 왔으면 테이블 하나만 놓인 곳에 앉아달라는 것이다. 눈치가 보였다. 다시 속으로 '여긴 단골되기 글렀다'고 말했다.
창가 쪽애서 등을 돌려 다른 테이블을 살폈다. 계속 미련이 남는다. 마음은 창가 쪽인데 발은 반대편으로 향하고 말았다. 창가 쪽에서 떨어진 곳에, 누가 봐도 인기가 없을, 가게에 손님이 많아도 끝까지 비워있을 거 같은 어중간한 자리에 앉았다. 노트북 때문에 넓은 테이블을 찾을 수밖에 없어 고른 자리다. 그냥 있다 가자,라는 심정으로 노트북을 켰다. 그렇게 작업을 하다가 불현듯 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커피숍에 들어온 지 2시간 가까이 지났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했다. 결과물도 만족스럽다. 국회로 가기 위해 서둘러 커피숍을 나왔다.
취재를 마치고 동네로 왔다. 집에 들어가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근처에 있는 단골 커피숍으로 발길을 돌렸다. 평소 단골 커피숍에 가던 시간대가 아니다. 걸어가는데 찝찝하다. 아니 불안한 마음인가. 여하튼 뭔가 께름칙하다. 내 자리가 없을 거 같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나만의 지정좌석에 다른 사람들이 있다. 커피숍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그 사람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마치 내 것을 뺏긴 사람처럼. 커피숍 직원이 나를 알아보는 거 같다. 당연하지 내가 여기 단골인데. 그러니 더 속이 베베 꼬이는 느낌이다. 직원한테 저 사람들 뭐냐고 따지고 싶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란 걸, 나도 너무나 잘 안다. 아무렇지 않은 듯 단골 가게의 생소한 자리에 짐을 풀었다.
자리에 앉아서도 계속 나만의 지정좌석 쪽으로 시선이 간다. 그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자꾸 힐끗거렸다. 그 사람들은 내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1시간쯤 지났을까, 국회에서 취재한 내용을 글로 옮기려던 계획은 진전이 없다. '저 사람들 왜 안 가고 뭐 하냐'라는 괜한 적대감까지 속에서 올라오고 있다.
결국 나만의 지정좌석에 앉지 못했다. 커피숍에서 쓰려던 글도 마무리하지 못했다. 커피숍을 나오는데 나만의 지정좌석을 차지한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만의 티타임을 즐기는 중이다. 바깥공기가 가을 날씨처럼 시원하다. 겨울 기세가 이제야 꺾이려나 보다. 따뜻한 봄날이 어여 왔으면. 머릿속을 꽉 채웠던 잡념들이 순식간에 쓸려나간 것 처럼 상쾌한 기분이다. 그리고 헛웃음이 나왔다. 저 사람들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저 자리가 뭐라고 이렇게 휘둘리냐! 국회 쪽 커피숍도 새로운 단골로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