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유혹 이겨내기

읽고 쓰는 이유

by 돈태

집 앞 하천 산책로를 걷는데 고꾸라질 듯 세워져 있는 굴삭기를 보고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비현실감을 느꼈다. 전날 하천 정비공사를 했던 모양이다. 좁은 하천 산책로를 어떻게 비집고 들어와서 저기서 작업을 했을까, 신기했다. 지나치는데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다. 평소 보지 못한 광경을 사진에 담아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발길을 돌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창릉천 굴착기.jpg


만화 같았던 풍경을 만화로 남기고 싶었다. 카페에 도착해 굴삭기를 찍은 사진을 챗GPT를 이용해 지브리 스타일로 변환했다. 요즘 재미를 붙인 활동이다. 결과를 받아보면 어떤 건 감탄스럽고, 어떨 때는 조금 아쉽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놀랍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얼마 전 지인의 SNS에서 "이번엔 지브리 스타일로"라는 글과 함께 애니메이션 주인공들 같은 그림 사진을 봤다. '지브리 스타일이 뭐지'라며 인터넷에서 검색했다. '지브리 열풍'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챗GPT에서 내놓은 서비스인데 사람들의 반응이 상당히 뜨겁다는 내용들이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사진을 지브리 스타일로 바꿔달라고 하면 AI가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스튜디오 지브리 화풍의 그림으로 변환해 준다는 것이다. 특유의 선한 얼굴 선과 표정, 레트로하면서 따뜻한 색감의 그림들을 보며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으로 챗GPT앱을 깔았다.


챗GPT앱을 쓰는 시간이 나날이 는다. 단순한 검색은 물론 지적인 문답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점은 창작활동을 뒷받침하는 수준을 넘어서려는 모습에서다. 일부에서 챗GPT를 활용해서 보고서나 과제를 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소설이나 주장을 담은 에세이도 어설프지만 가능해 보였다. 특정 주제와 키워드를 잡아주고 소설을 쓰려고 한다니까 챗GPT는 시놉시스와 등장인물 그리고 한 챕터의 초고까지 써줬다. 섬뜩하면서도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잘만 활용하면 단편 소설하나 쉽게 쓸 수 있겠다는 잔머리가 굴러가다 정신을 차렸다. 다음 장 초고를 써주거나 초고를 더 디테일하게 발전시킬 수 있다는 챗GPT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불현듯 한 방송에서 황석영 작가가 챗GPT를 써봤다며 한 말이 떠올랐다.


"써보니까 박사 학위 받은 조수 10명쯤 부리는 거 같아요. 그 대신에 질문을 잘해야 돼요. 자기가 읽은 독서 범위 또는 자기가 알고 있는 내용에 의해서 질문이 나더라. 질문이 애매모호하가 실력이 떨어지는 질문은 얘가 거짓말한다. 자기가 가진 그만큼 거울하고 똑같다. 그래서 자기 콘텐츠가 없으면 안 된다."


황석영 작가의 말을 요약하자면 '자기의 지적능력이 결여돼 있는 상태에서 챗GPT를 쓰면 노예가 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겠지만 황석영 작가는 그러면서 독서를 강조했다. 인공지능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 책을 읽어야만 제대로 질문을 할 수 있고, 그래야 챗GPT를 가성비 좋은 조수로 부릴 수 있다는 얘기다. 공감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챗GPT를 쓰면서 섬뜩하면서도 잔머리를 굴렸던 이유다. 오늘도 유혹을 떨쳐내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중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지정좌석 집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