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몰랐던 개인주의

다른생각

by 돈태

"얘는 지 스케줄에 맞춰야 돼."

"얘는 다른 사람과 관련된 건 잘 기억 못 해."

"완전 개인주의야."


이런 소리를 친한 놈한테 가끔 듣는다. 오래 봐온 놈인 만큼 나를 잘 안다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다. 그 말에 나는 딱히 반박을 안 한다. 내 상황과 일정에 맞춰 내가 원하는 약속 날짜와 장소를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으레 관철시키곤 했으니. 또한 안주 삼아 친구들과의 추억을 얘기할 때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추억은 잘 기억하지 못했던 것은 맞으니. 그런데 이런 나의 성향을 '개인주의'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것일까?




개인주의를 말할 때 보통 부정적인 인식이 담긴다. 이기주의 또는 자기중심적이라는 개념을 어렴풋이 떠올리며 '개인주의'라는 말로 퉁치는 경우가 많다. 타인 또는 공동의 이익보다는 자기 만의 이익을 먼저 따져 결정하거나 행동하는 사람, 남의 사정에는 무관심하고 독단적인 결정을 내리는 유형의 사람 등을 향하는 말이다. 쉽게 말해 '지만 생각하는 놈'이다.


개인주의로 통칭되는 개념을 학술적으로 따져보면 이렇다. 이기주의, 자기중심주의(Egoism) 그리고 자기중심성(Egocentrism)은 공통된 속성을 지닌다. Egoism은 타인의 욕구나 고통에 무관심하거나 무시하며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태도, Egocentrism은 주로 아동심리에 적용되는 개념으로 세상에 대한 관점을 자신의 시선으로만 해석하는 심리적 경향으로 정의된다. 두 개념은 공통적으로 타인에 대한 감수성의 결여를 특징으로 한다.


앞서 말했듯이 친구 놈이 나를 지칭하는 '개인주의'에 굳이 반박할 생각은 없다. 그놈은 내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고 말하려고 했던 것이고, 나 역시 그 뜻을 알아먹고 있다. 그런데 개인주의가 잘 못 쓰이고 있다는 생각을 최근에 했다. 별생각 없이 수긍하던 친구 놈의 그 '개인주의'가 어떻게 보면 정반대의 뜻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관용(tolerance)이(이 기간 전체 동안 상승세를 탔으나, 최근에 와서 다시 쇠퇴하여 전체주의 국가의 발흥과 함께 완전히 사라지려고 하는) 개인주의 원리의 충분한 의미를 여전히 보존하는 유일한 단어일 것이다." <노예의 길>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이다. 개인주의를 관용으로 정의했다. 하이에크에게 개인주의란 어떤 이상적인 인간상이나 계획된 사회가 아니라, 불완전하고 다양한 인간들이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구조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한 개인의 선택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조화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하이에크는 국가의 간섭과 통제를 최소화하고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견해를 일관되게 서술하며 노벨경제학상까지 받은 경제학자이자 사상가다. 하이에크의 자유주의를 말하며 개인주의 원칙을 강조했다. 하이에크가 강조하는 자유는 단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타인도 나와 똑같이 자기 삶의 방식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인정이다. 그러나 자유라는 개념이 정치적인 진영논리에 따라 공격받거나 옹호되며 왜곡되고 곡해돼 왔듯이 개인주의라는 개념 역시 본래의 뜻을 잃어 갔다.


결국 진짜 개인주의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만큼, 타인의 선택도 인정할 줄 아는 성숙한 태도다. 누군가 오래된 스쿠터를 타고 다닌다면 또 다른 누군가는 고급 BMW 바이크를 탈 수 있고, 그 두 오토바이는 나란히 주차돼 있다. 두 오토바이의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그것이 존재하는 이유와 맥락은 각기 사연과 의미가 있다. 그런데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저 노인의 오토바이는 둘 중에 뭘까? 사진에 단서가 있긴 하다.


진짜 개인주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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