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일까, 고집일까

다른생각/ 한국과 베트남의 경적

by 돈태

집 앞 사거리 횡당보도에서 보행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녹색 신호등으로 바뀐 것을 보고 횡당보도를 건너려는데 대각선 쪽에서 빠른 속도로 좌회전을 해오는 차가 보였다. 노란색 신호 막바지에 꼬리를 물었던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운전자는 횡당보도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 차는 경적일 길게 울리며 순식간에 횡당보도를 지나쳤다. 길을 건너려던 사람들은 잠시 멈칫했고, 고개를 돌려 쌩하고 사라지는 그 차를 흘겨봤다. 위험을 알렸던 경적 소리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런데 그때 생각이 들었다.


'그래, 경적은 다른 사람의 안전을 위해서 울려주는 것이 더 맞을 수도...'


운전을 하다 보면 있는 힘껏 경적을 울릴 때가 있다. 내 차를 위협한 다른 차를 향한 화풀이다. 끼어들기를 한 차를 겨냥해 분노를 표출할 때 울리는 경적이 대표적이다. 신호등이 바뀌었는데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앞차를 향해 짜증을 내는 용도로도 유용하다. 그렇게 경적을 대하는 사람들의 감정과 인식은 부정적일 때가 많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베트남 여행에서 들었던 경적은 느낌이 달랐다. 베트남에서 처음 택시를 탔을 때는 기사가 경적을 너무 자주 그리고 한 번 울릴 때 너무 여러분 나눠 울려서 같은 차에 타고 있다는 것이 민망했다. 이 기사의 성격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두 번째 택시를 탔을 때도 기사는 역시나 경적을 자주 그리고 여러분 울리면서 운전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속도를 잘 높이지는 않고 차선도 잘 바꾸지 않았다. 그제야 도로 위를 점령한 듯한 오토바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기사는 속도를 조금만 올릴 때면 경적을 울렸고, 옆으로 뒤쳐지는 오토바이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제갈길을 잘 갔다.


베트남에서 경적을 울리는 것은 마치 공통된 습관 같았다. 자주 울리는 것은 물론 한 번 울릴 때 짧게 끊어서 여러분 울리는 것도 비슷했다. 마치 리듬을 타듯.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경적이 몇 초간 길게 이어지는 것과는 분명히 차이가 났다. 우리나라에서 경적을 울리는 사람들의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면, 베트남 사람들은 힘을 빼고 톡톡 치는 모습이랄까. 그렇게 처음에는 인상을 쓰게 만들었던 베트남 경적이 어느덧 안전운전을 위한 몸에 밴 습관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나라에서 경적이 공격성을 띤다면 베트남에서는 방어용에 가까웠다.


불현듯 한국과 베트남 경적에 대한 사적인 감상을 쓴 이유는 한 신문에 실린 칼럼 때문이다. 첫 문단에 경적과 관련한 글쓴이의 경험이 나온다.


"아파트 입구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빨간불이 선명한데도 한 어르신이 건널목을 건너기 시작했다. 통행량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서 쌩쌩 다니는 차들이 적잖은 길이었다. 경적을 살짝 울려 조심하시라, 신호를 보냈다. 돌아온 반응은 싸늘했다. 삿대질은 없었지만, 입으로는 분명 ‘XX놈’이라고 욕을 하고 있었다. 어르신은 ‘걱정마라, 내가 다 알아서 한다’는 의도였겠지만,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순간 다시 깨달았다. 선한 의도가 모두 선한 결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칼럼 중>


이 대목을 읽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글쓴이는 다른 사람의 안전을 걱정하는 선의로 경적을 울렸다. 자신의 마음이 그렇더라도 한국에서 경적을 대하는 태도를 생각하면 돌아올 반응은 쉽게 예상이 된다. 어르신은 갑작스러운 경적 소리에 움찔했을 테다. 어르신의 행동이 도덕적으로나 법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떠나, 갑작스레 자신을 놀라게 한 경적을 향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글쓴이 말대로 경적을 '살짝' 울렸다고 해도 경적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과 인식이 팽배한 곳에서.


그래서 첫 문단의 마지막에 나오는 ' 순간 다시 깨달았다. 선한 의도가 모두 선한 결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는 것을'이라는 문장이 와닿지 않았다. 딱 들어맞는 예가 아니라는 생각이 앞섰다. 자기의 입장에서만 생각한 나머지 일반적인 사람들의 감정과 인식과 동떨어진 깨달음으로 느껴졌다.


글쓴이는 앞으로도 자신만의 선의를 지속하겠다는 다짐으로 글을 맺었다.


"오늘 퇴근길에도 아파트 입구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릴 것이다. 그때 그 어르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또 빨간불에 길을 건널지 모른다. 그때도 가볍게 경적을 울려줄 생각이다. 그이가 욕을 내뱉더라도, 내 선한 의도만큼은 변함없을 테니 말이다."<칼럼 중>


칼럼을 다 읽고, 나는 한숨이 나왔다. 글쓴이의 선한 의도보다 그의 고집스러움이 읽혔다. 내가 지나치게 삐뚤어 진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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