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간판

원당역

by 돈태

한때 '한oo식당'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한' 자 하나만 남아있다. 나머지 글자는 어딘가로 떨어져 나갔고, 간판의 남은 글자는 간당간당하게 자리를 버티고 있었다. 마치 주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 세월이 간판 글자들을 조금씩 벗겨내고 있다는 듯이.


여름 장맛비가 내리던 어느 날, 간판이 처음 찢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날 비는 오래 내렸고, 바람은 좁은 골목을 따라 소리를 내며 휘돌았을 테다. 아마도 간판의 모서리부터 천천히 틈이 벌어지고, 결국 글자의 절반이 떨어져 나가고 말았으리라. 주인은 다음날 빗물이 고인 바닥을 대충 쓸어낸 뒤, 수리공을 부르려다 그만두었을 것이다. 손님이 줄어든 지 오래였고, 새 간판 값을 감당할 처지가 못 된다는 것을 묵묵히 받아들였는지 모른다. 옆 가게 문에 붙어 있는 '임대 문의' 현수막은, 이 쓸모없는 상상력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이곳에도 불이 켜진 저녁이 있었을 것이다. 식탁 위에 놓인 따뜻한 국물, 젓가락질 소리와 대화 소리가 버무려진 소음들. 지금은 간판만이 그 시간을 아주 느린 속도로 잊어가고 있었다. 나는 찢겨 나간 간판 아래 서서, 떠나보냈어야 할 어떤 마음이 끝내 떠나지 않고 옆구리쯤에서 계속 걸리적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데도 위태롭게 흔들리는 것은, 머리 위 간판만이 아닌지도 모른다.


원당역 찢어진 간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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