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자리

<올바른 고기> 7장.

by 돈태

약속 장소는 ‘동물과 함께’ 사무실에서 두 블록쯤 떨어진 커피숍이었다. 건물 1층 전면이 통유리로 된 곳이었고, 유리 너머로 사무실 회색 외벽이 보였다. 간판은 깔끔했고, 내부는 조용했다. 낮은 음악과 에스프레소 머신이 김을 뿜는 소리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그는 약속 시간보다 십 분쯤 일찍 도착했다. 자리에 앉아 가방을 발치에 내려놓고 유리창 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잠시 후 문소리가 들렸을 때, 지금 들어오는 남자가 무지개 프로필이라는 것을 그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가게 안을 한 번에 훑은 남자는 망설임 없이 그가 앉아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키가 크지는 않았지만 자세가 반듯한 남자였다. 회색 셔츠에 검은 재킷, 손에는 서류 봉투 대신 얇은 태블릿 하나가 들려 있었다.

“기다리게 했나요?”


남자의 목소리는 낮고 안정적이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방금 왔어요.”


남자는 맞은편에 앉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가까이서 보니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눈가에 잔주름이 보였지만,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 얼굴 전체를 환하게 해 줬다.


“영상 잘 봤습니다.” 남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현장에 들어가는 방식이 과하지 않으면서도, 핵심을 피하지 않았더군요.”


‘과하지 않으면서도’와 ‘피하지 않았다’는 두 표현이 이질적이지만 묘하게 균형을 잡고 있는 듯이 들렸다. 그는 손에 힘을 줬다.


“저희 단체 상황상… 할 수 있는 선택이 많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은 선택지가 없을 때, 더 과격해지거나 더 조심스러워지죠.” 남자는 태블릿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며 말했다. “둘 다 이해합니다. 다만 저는, 피하는 방식이 아니라 드러내는 방식을 택하신 점이 좋았습니다.”


주문한 커피가 나왔다. 바리스타가 잔을 내려놓고 물러나자, 잠깐의 공백이 생겼다. 남자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말했다.


“비인간 해방단, 아직 젊은 조직이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긴 지 얼마 안 됐어요. 다들 현장 경험도 많지 않고요.”


“그게 영상에 보이더군요.” 남자는 담담하게 말했다. “서툰데, 그 서툼을 숨기지 않더라고요. 보통은 체계를 먼저 만들고, 그 안에 현실을 끼워 맞추려 합니다. 그런데 그쪽은 현실부터 들이밀었어요.”


그는 남자가 쓰는 단어들이 생소하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그러면서도 남자의 말투에 평가와 호감이 동시에 섞여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남자가 말을 이었다. “저는 단체보다, 그 일을 해낸 사람이 궁금했습니다.”


솔향이 했던 말과 비슷했다. 그는 살짝 당황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만 끄덕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했다. 말 대신 미소를 살짝 지었다. 잠시 말을 고르듯 창밖을 바라보던 남자가 다시 말했다.


“저는 현장에 ‘남는 것’과 현장을 ‘지키는 것’이 같은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남자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었다. 말의 뜻을 물어보려는데 남자가 이어서 말했다.


“어떤 곳에서는, 구출을 반복하는 것보다 구출이 필요 없는 조건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그 과정은 대개 느리고, 보기 싫고, 정치적일 때가 많죠.”


'정치적...' 그는 남자의 마지막 단어를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뭔가 진실을 품고 있는 듯한 표현이 그럴싸해 보였다. 그 표현이 남자에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남자가 덧붙였다. “그래도 기준은 분명해야 합니다. 타협하는 순간 운동은 비즈니스가 될 수 있죠. 제가 가장 경계하는 부분입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봤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남자는 약간은 머쓱하다는 듯 처음으로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잠시 숨을 고르며 커피 잔에 손을 갖다 댔다. 이어 태블릿을 덮고 테이블 위에 손을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남자는 헛기침을 한번 한 후 천천히 입을 뗐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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