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 넘어 '기여'로의 저작권 상상력
“저는 쓰는 사람이기 전에 읽는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쓰는 사람’보다 ‘읽는 사람’에 무게를 뒀다. 한강 작가가 써낸 글들이 한강 작가 혼자만의 결실이 아니라는 고백으로 들리는 요즘이다. 한강 작가의 문장들은 그가 읽어온 문장들의 축적이고, 그 문장들 역시 그 이전의 문장들을 품고 있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한강 작가의 발언은 현재의 저작권 개념을 곱씹어보게 만든다. 글, 음악, 그림 등의 창작물은 저작자만의 소유물인가? 창작물에 대한 윤리적-도덕적 책임을 떠안은 만큼 저작자에게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법적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당연한가? ‘공정한 이용’이라는 법리로 저작권에 공적 성격을 담보했지만, 오히려 해당 조항이 저작자의 사적인 소유권을 더욱 부각시키는 것은 아닐까?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애플파이를 만드는데도 온 우주가 달려들어야 한다는 취지의 통찰을 남겼는데 창작물은 예외일까?
인간이 만든 창작물과 인공지능이 생성한 창작물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진 세상이다. 챗GPT 등 인공지능을 활용해 글을 써보면, 그 효율성과 생산성에 감탄사가 나온다. 감탄사는 글쓰는 수고를 덜기 위한 잔머리를 굴리고 싶은 얄팍한 마음이 들게 한다. 하지만 창작활동에 진심인 사람들에게는 인공지능이라는 기계 또는 소프트웨어의 저자성을 고민하게 만든다. 이 지점에서 한강 작가의 발언은 저작권으로 보호 또는 지원해야 할 창작물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를 제공한다. 창작물은 단독적 소유물인가, 다층-다면적 기여의 산물인가?
고대 문학과 철학 저작물에는 사실상 소유권 개념이 없었다. 구약성서에도 등장하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은 창작물의 본질을 대하는 전통적인 인식을 대변한다. 구전되는 이야기, 민요, 설화, 전통 장인들의 기술은 특정 개인의 소유물이라기보다, 많은 사람들의 손길과 시간이 더해진 집단적 결과였다. 창작은 특정한 개인의 영감에서 시작됐어도 이전 세대가 남긴 언어와 감정, 형식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었다. 저작권이 제도화되기 이전, 창작물은 공동체 안에서 순환되는 문화적 자산이었던 셈이다.
단순한 검색만으로 18세기 영국의 앤 여왕법(Statute of Anne)이 최초로 법제화된 저작권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창작자가 일정 기간 동안 자신의 저작물에 대해 배타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한 역사가 그렇게 길지 않다. 저작권으로 창작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발상은 창작물에 시장 가치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된다. 시장에서 거래되고 유통되는 저작권은 소유권의 개념과 뗄 수 없는 관계다. 소설, 영화, 그림, 음악 등 근현대 창작물을 유료로 또는 엄격한 제약 속에 사용해야 한다는 인식은 상식이다.
저작권이 창작의 가치를 인정하고 보호하며, 창작물이 시장에서 유통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더 오랜 시간 창작물의 본질은 사유 재산이 아니라 공유 재산에 가까웠다. 저작권이 제도화되면서 창작물은 많은 이들이 쌓아온 기여의 결실이기보다 개인의 산물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한강 작가가 자신의 정체성을 “읽는 사람”으로 지칭한 맥락에는 창작물의 오래된 본질을 담고 있다.
창작물의 본질을 부각될수록 개인의 소유권을 중심으로 한 저작권 개념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어디까지를 기여로 볼 것인가, 어떤 기준으로 저작권 비중을 나눌 것인가, 분산된 저작권을 어떻게 보장하고 행사할 수 있나.
그렇다고 소유권을 중심으로 한 저작권 개념을 그대로 유지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온갖 창작물을 학습해 인간 수준의 창작물을 생성해 내는 인공지능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인간의 소유권을 중심으로 한 저작권 개념은 현실을 온전히 반영하기 힘든 처지다. 인공지능과 협업 없이 순전히 인간의 노동으로만 세상에 나온 창작물이라고 어떻게 증명하고 검증할 것이며, 꼭 인간만이 창작활동을 해야 하는 것인가? 더 나아가 앞으로 인공지능의 기술은 더욱 정교해질 텐데 과연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지 않은 창작물이 존재할 수 있을까?
사회적 공론장은 이미 열렸다. 인공지능 창작물에 대한 우려와 기대 그리고 저작권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쏟아진다. 이에 저작권과 관련된 법률 정비와 인식 개선 등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법적인 제도가 바뀌는 과정에서는 예기치 못한 논란과 갈등 그리고 시행착오 등도 예상된다. 그래도 피할 수 없는 길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공론장에서 치열하게 논의될수록 본격적인 제도화 과정에서 불필요한 논쟁을 줄일 가능성이 높다. 공론장이 건설적으로 가열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가능성에 문을 열어둬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저작권을 공동 기여의 산물로 접근하기 위한 기술적 대안으로 블록체인을 상상해 본다.
결론적부터 말하면 기여한 몫에 따라 지분이 나눠진 저작권을 블록체인에 기록하는 것이다. 지분을 나누는 기준과 실행은 독점적 권한을 지닌 중앙조직에 의존하는 것도 아니고, 주체들 사이의 신뢰에 기반하는 것도 아니다. 스마트컨트랙트로 프로그래밍된 계약관계에 따라 누구의 개입도 없이 블록체인 시스템상에서 이뤄지는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블록체인으로 분산된 저작권은 각각의 지분별로 시장에서 거래하기에 편리하다. 부동산, 그림 등의 자산을 블록체인상에서 최소단위로 토큰화해 투자 접근성을 확장시킨다는 실물자산토큰화(RWA) 개념이랑 연결되는 지점이다. 예컨대 AI 창작물 하나에 대해 ①데이터 제공자 ②알고리즘 개발자 ③프롬프트 작성자 ④최종 선택자 등에게 저작권 지분을 토큰으로 부여할 수 있다.
지분별로 쪼개진 저작권들의 안정성은 공개된 분산원장이라는 블록체인의 본질과 고유한 원본성을 보장하는 대체불가능토큰(NFT)의 개념을 연상하면 우려할 점이 아니다. 오태민 교수의 <비트코인 지혜의 족보>에서 나오듯이 우리나라 부동산등기제도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수 있다. 소유주와 저당권 변경에 대해 누구나 열람하게 해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위조를 막는 개념이 블록체인 특성과 닮았다.
챗GPT와의 프롬프팅 작업 과정을 통해 공동의 기여라는 개념을 확장시키면 창작물은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수정되고 발전하는 ‘프로세스’로 인식할 수 있다는 상상력을 추가할 수 있었다. 블록체인 기반의 RWA와 NFT는 분산된 저작권별 이력과 가치 그리고 지분이 바뀌어간 흐름을 추적하는데 용이하다.
물론 블록체인에 대한 기술적 전문성이 부족한 일반인이 독서와 인공지능 협업으로 생각해 본 대안은 상상력이라는 한계가 분명하다. 다양한 가능성을 논의해 볼 시점이기에 상상할 수 있는 생각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새로운 저작권 개념 역시 공동의 기여로 만들어지는 중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