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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주의 균열

대학 서열화 / 시장논리 해법

by 돈태

"특성화고(직업계고)가 야자·석식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다."


오늘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를 읽고 희망을 봤다. 비로소 학벌주의가 균열을 내고 있다는. 그것도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시장 논리로.


기사에서 제시한 팩트는 최근 들어 직업계고 신입생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기사에 나온 광주공고는 올해 수십 년 만에 처음 모집 정원(144명)보다 지원자(160명)가 더 많았다. 이 학교뿐만 아니다. 광주광역시교육청에 따르면 광주의 직업계고는 2022학년도까지 정원을 못 채우다가 2023학년도 충원율 100%를 채웠고 올해는 지원자가 모집 정원보다 수백 명 많았다. 기사는 이례적 일이 벌어졌다,고 표현했다.


광주 만의 지역적 현상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대구에서도 2025학년도 직업계고 모집 정원 3618명에 지원자 4840명이 몰렸다. 인천 역시 2025학년도 직업계고 모집 정원 4524명에 지원자 5271명이 몰렸다. 서울 지역 직업계고도 올해 1만234명 모집에 1만2111명이 지원해 충원율 94.7%를 기록했다. 이는 5년 전인 2021학년도(84.4%)보다 10%포인트 넘게 뛴 것이다. 직업계고에 이례적으로 많은 지원자가 몰려 탈락자들이 일반고에 진학하는 ‘역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기사는 해석했다.




직업계고에서 이례적으로 야자를 하고 석식을 제공하게 된 이유는 학생들의 학구열 때문이다. 일반고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위해 학구열을 끌어올렸다면 직업계고 학생들은 대학 진학이 아닌 바로 취업에 써먹을 수 있는 자격증을 따기 위함이다. 대학 진학보다 전문 기술을 익히는 것이 자신의 인생에 더욱 유리하다는 판단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학벌주의는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는 개인들의 본성이 모여서 집단적 현상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지금까지는 학벌주의고, 이를 통해 대학서열화가 인이 박히게 고착화 돼왔다. 좋은 대학을 나와야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있다는 이해관계의 쏠림은 극에 달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을 뜯어고치기 전에 학벌주의는 고치기 어려운 병폐로 보인다. 인위적인 제도개선과 인식전환을 위한 사회운동 등이 실질적인 효과를 냈는지 의문이다. 진보적인 소설과 영화 등의 문화적인 성과를 부인하기는 어렵지만 정치적 올바름(PC)을 추구하는 입바른 수준에 그친다. 여전히 사회를 움직이는 구조와 인간관계의 은밀한 속내에는 '출신 대학'이라는 보이지 않는 신분과 계급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학벌주의는 견고하고, 그래서 대학서열화는 철옹성이다.


희망은 그래서 인간 본성에서 찾아야 한다. 그 현상이 감지되고 있다. 인간 본성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인간 본성은 그대로인데 작동하는 방향성이 달라지고 있다. 기존 방향으로 작동할 경우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들이 힘을 얻는 사회 환경과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명문대->고(高)연봉'이라는 공식이 깨지면서,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개인들의 '경제적 유인 구조'가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사 마지막의 전문가 멘트는 그래서 의미가 있다. 이런 현상이 일시적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곱씹어 볼 만한 해석이다. 개인들의 자연스러운 선택을 통해서 비로소 학벌주의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배영찬 한양대 명예교수는 “높은 대학 진학률로 인한 취업난, 인력 시장의 불일치 등 수많은 문제가 최근 경기 침체와 맞물리며 고소득 블루칼라 직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면서 “학벌주의로 만들어진 기형적 사회구조가 개선되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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