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고기> 13장.
그날 오후, 약속된 시간에 수영은 의원실에 도착했다. 의원실에서 가장 막내인 비서의 안내를 받아 접견실로 들어갔다. 낮은 테이블 위에는 이미 서류와 노트북이 정리돼 있었고, 보좌관은 자리에 앉아 수영을 맞았다. 서로 가벼운 인사를 나눈 뒤, 두 사람은 곧바로 공청회 기획안 이야기를 꺼냈다.
테이블 위에는 낮에 업로드된 조각 영상 캡처본과 수영이 보낸 공청회 기획안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영상 반응이 좋던데요." 보좌관은 프린트물을 천천히 넘기며 말을 골랐다. "확실히 짧은 영상들이 더 빨리 소비되는군요.”
맞은편에 앉은 수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청회 전에 이슈를 끌고 갈 정도는 될 듯해요.”
"공청회 기획안도 잘 봤습니다." 보좌관은 기획안에 메모를 하며 말했다. "제가 보내드린 기획안이랑 조정이 필요한 부분이 조금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수영은 예상했다는 듯 답했다.
“좌장 발언 시간이...” 보좌관은 펜 끝으로 기획안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시민단체 등 일부 패널 발언 시간을 조금 줄이고, 좌장의 입법 설명을 조금 늘렸으면 합니다.”
"전체적인 시간을 조금씩 조정하시죠." 수영은 역시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침묵이 흐르고 수영이 말을 이었다.
“영상 상영 시간은 6분 그대로 가는 게 좋겠습니다.”
"동의합니다."
수영은 의외로 쉽게 답을 얻었다는 생각과 동시에 하나씩 주고받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보좌관이 말했다.
“대신 사회자 진행 멘트는 저희 쪽에서 한 번 더 다듬겠습니다.”
수영은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곤 늦지 않게 입을 뗐다.
"초안은 저희가 잡아볼게요."
보좌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죠."
이어 두 사람은 패널 섭외와 세부 일정에 대해 실무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둘의 협업은 서로의 이해관계를 확인하는 작업이나 다름없었다. 어느정도 논의가 끝나갈 무렵 수영이 기본적인 사항을 물었다.
"그런데 공청회 장소는 예약이 됐나요?"
"그건 미리 잡아 뒀습니다. 시간만 조정하면 됩니다. 일단 대회의실과 소회의실 두 곳을 다른 시간데로 잡았어요. 참석자 규모가 어느정도 파악되면 맞춰서 한 곳을 취소하면 됩니다."
"그렇군요. 그럼 대회의실로 하시는 게 나을 듯합니다."
보좌관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우리는 소회의실로 생각을 하고 있는 데 여기도 어느정도 규모는 있어서 20~30명 정도 가능합니다."
수영은 잠시 뜸을 들였다. "아무래도 일반 참여자가 30명은 넘을 거 같습니다. 우리 쪽 캠페인 때문에 일반 시민들의 공청회 문의가 더러 오는 상황입니다."
보좌관은 잠시 수영을 바라봤다. 그리곤 수영의 기획안 마지막 부분을 살폈다. 보좌관의 시선이 닿은 곳은 질의응답 순서였다. 일반 시민들의 질문을 중심으로 한다는 문구가 적힌. 보좌관은 고개를 들어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대략적으로라도 참석자 규모가 파악이 되면 알려주세요. 대회의실로 생각하고 있겠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수영과 보좌관은 가볍게 악수를 한 후 헤어졌다. 수영이 의원실을 나가고 보좌관은 자기 자리로 돌아와 앉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질의응답 시간을 생각하고 있구나."
일주일은 빠르게 지나갔다. 공청회 당일 아침, 그는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다. 초겨울 문턱의 공기가 목 안쪽을 서늘하게 훑고 지나갔다. 11월 특유의 건조한 찬 기운이 아직 완전히 자리 잡지는 않았지만, 계절이 이미 겨울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느낌은 분명했다. 지하철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회색 건물들을 바라보며 그는 몇 번이나 행사 순서를 머릿속으로 되짚었다. 사회자 멘트, 영상 소개, 패널 토론 연결. 준비한 문장들은 머릿속에서 또박또박 이어졌지만, 떨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국회라는 공간을 멀리서 바라만 봤지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처음이었다.
국회의사당역에 내려 지상으로 올라와 국회 정문에 들어서자 넓은 잔디밭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주위로 회색빛 외벽의 건물들, 그 건물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기둥들. 그는 공청회가 열리는 의원회관 앞에서 건물을 올려다봤다. 이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이 법이라는 이름으로 삶의 기준을 정한다는 생각에 묘한 현실감이 올라왔다. 막연한 거리감 속에 있던 ‘국민의 대표’라는 존재가 처음으로 구체적인 장소와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회관 1층 로비에는 방문문증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는 차례가 오자 신분증을 꺼내 안내 직원에게 건넸다.
“공청회 참석이신가요?”
“네. 대회의실입니다.”
직원은 몇 가지 확인 절차를 거친 뒤 목에 걸 수 있는 방문증을 내밀었다. 투명한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담긴 방문증을 목에 걸자 어딘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보안검색대를 통과해 안쪽으로 들어서자 긴 복도가 눈앞에 펼쳐졌다. 벽면에는 각종 안내 표지와 함께 행사 포스터들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AI와 토큰화의 미래, 정책 간담회', '내란 청산, 입법 토론회', '농축산업 경쟁력 강화 '정책 공청회'.
서로 다른 색과 글씨체의 포스터들이 이어졌다. 날짜와 시간, 발언자 이름, 주최 의원 이름이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이곳에서는 매일같이 수많은 말들이 오가고, 수많은 결정들이 준비되고 있다는 사실이 포스터들만으로도 전해졌다.
엘리베이터 옆 안내판에서 대회의실 위치를 다시 확인한 그는 회관 1층 안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바닥에 깔린 카펫이 발걸음 소리를 삼켰고, 멀리서 마이크 테스트를 하는 듯한 낮은 울림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복도 끝에 ‘대회의실’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보였다. 출입문 앞에는 행사 스태프로 보이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문 안쪽에서는 의자를 정리하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새어 나왔다.
그는 잠시 문 앞에 서서 숨을 고른 뒤 방문증을 손으로 만져 보았다. 그 작은 플라스틱 조각 하나가 자신을 이 공간 안으로 들여보낸다는 사실이 낯설었지만, 셀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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