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육식, 취중진담

<올바른 고기> 14장.

by 돈태

그날 오후, 그는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집에 돌아왔다. 공청회가 끝나고 동물과함께 사무실에 도착하니 수영이 그를 반기며 휴가를 권했다. 그간 고생했다며 이틀 정도 쉬라고. 그는 수영의 제안을 기다렸다는 듯 받아들인 후 사무실을 나왔다. 평일 점심시간의 자유로움을 오랜만에 느끼며 천천히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 들어오고 나서야 점심을 거른 허기가 실감이 났다. 하지만 그는 옷도 벗지 않은 채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혼자 사는 그의 자치방에서 평일 오후 잠들어있는 그를 방해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깊게 잠들지 못하고 눈을 떴다. 아직 밖은 해가 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부엌으로 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안에는 물과 채소 몇 가지, 오래된 두부 한 모가 전부였다. 무엇을 먹을지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냉장고 문을 다시 닫았다.


그는 식탁 위에 앉아 휴대폰을 집었다. 배달 앱을 켜고 화면을 내려다봤다. 고기를 먹고 싶은 생각이 스쳤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메뉴 목록을 넘기던 그의 시선이 ‘비건 버거’ 항목에서 멈췄다. 며칠 전, 사무실에서 혼자 영상 편집을 하며 점심으로 시켜 먹었던 음식이 떠올랐다. 고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식감에 놀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 공청회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멍하니 있다가 무엇에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뒤졌다. 공청회가 끝난 뒤 받은 명함이 안쪽 포켓에서 나왔다. 흰 바탕 위에 간결한 글씨로 이름과 회사가 인쇄되어 있었다.


'이산. 에코젠 푸드(Ecogen Foods).'


그는 명함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매만지다 노트북을 켰다. 검색창에 회사 이름을 입력했다. 화면에는 곧 다양한 기사와 기업 소개 페이지가 나타났다. 식물성 단백질 기술, 글로벌 패스트푸드 체인과의 협업, 빠르게 성장하는 대체 단백질 시장에 대한 분석 기사들이 이어졌다. 일부 기사에서 회사가 '나스닥 상장'을 추진 중이라는 내용도 눈에 띄었다. 잠시 후 그는 눈을 크게 떴다. 며칠 전 점심으로 먹었던 비건 버거의 포장 사진이었다. 제품 설명 아래에는 제조사가 에코젠 푸드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명함의 남자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남자가 공청회에서 질문을 던지는 모습이 오버랩됐다. 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방법을 기술과 산업의 문제로 설명하던 말솜씨, 감정의 기복 없이 정리된 문장들. 그는 다시 명함을 바라봤다. '꽤 알려진 곳이구나!'


그는 한동안 명함을 내려놓지 못했다. 손끝에 닿는 종이의 질감이 이상하게 또렷하게 느껴졌다. 배 속에서 다시 허기가 꿈틀거렸다. 잠에서 덜 깬 몸이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속은 비어 있었다.


그는 다시 휴대폰을 들어 배달 앱을 켰다. 메뉴 목록을 천천히 넘겼다. 치킨, 삼겹살, 족발. 화면 속 음식 사진들이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다. 기름이 번들거리는 고기 표면, 잘린 단면에서 흘러나오는 육즙. 그는 무심코 침을 삼켰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공청회장에서 보았던 장면들, 스크린 위에서 꿈틀거리던 생명들, 그리고 스스로에게 했던 다짐이 동시에 떠올랐다.


손가락은 잠시 허공에 멈춰 있다가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비건 버거’ 항목을 눌렀다. 주문을 마치고 잠시 뒤 도착한 종이봉투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따뜻한 김이 봉투 안에서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그는 천천히 포장을 뜯었다.


버거를 들어 한 입 베어 물었다. 이미 경험한 낯설지 않다는 감각이었다. 식감은 고기와 거의 다르지 않았고, 소스의 맛과 빵의 온기가 혀 위에서 익숙하게 퍼졌다. 씹을수록 묘하게 기름진 향이 올라왔고, 입안에서는 분명 ‘고기 같은’ 감각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는 다시 한 입을 베어 물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천천히 씹었다. 혀끝에서 만들어지는 맛의 층위들을 분해하듯 맛을 음미했다. 콩 단백질, 향료, 조미료, 기름. 모든 것이 정교하게 계산된 결과처럼 느껴졌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스쳤다. 고기는 없지만 인간의 기술이 대체하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가짜라는 생각. 그는 버거를 내려놓고 손을 닦았다.


불현듯 진짜 고기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에 구워지는 삼겹살 냄새, 기름이 튀는 소리, 소주잔이 부딪히는 소리. 생각은 대학 시절 늦은 밤까지 이어지던 술자리 풍경으로까지 이어졌다. 휴학한 지도 어느새 일 년이 다 돼가고 있었다. 친구들 얼굴이 하나둘 떠올랐다. 일종의 해방감을 느껴 보고 싶다는 충동도 느꼈다.


그는 창밖을 바라봤다. 초겨울 저녁 공기가 어둑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이틀의 휴가가 이제 막 시작이다. 식탁 위에 놓인 반쯤 먹은 비건 버거를 바라봤다. 잠시 뒤 그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연락처 목록을 천천히 넘기다가 한 이름 앞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명수.


대학교 신입생 때 다큐멘터리 동아리에서 만난 동기였다. 그와 가장 자주 술잔을 기울였던 친구들 가운데 한 명이다. 영상 편집에는 소질이 없지만 누구보다 성실했던 명수. 영상 편집에 두각을 나타내던 그에게 명수는 술이 취하면 자기 대신 꿈을 이뤄달라고 말하곤 했었다. 그런 말들에 은근히 기분이 좋았던 그는 명수와의 술차리를 항상 즐겼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명수가 전화를 받았다.


“어, 웬일이야?”

“지금 뭐 해?”

“학교야. 도서관. 복학한 거야?”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아니.. 근데 시험 때도 아닌데 도서관은 웬일이냐.”


명수는 짧게 웃었다.


“나 이제 4학년이잖아. 취업 준비해야지. 시험 기간보다 여기 있는 시간이 더 많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숨을 골랐다가 말을 꺼냈다.


“저녁에 시간 돼? 오랜만에 얼굴 좀 보자.”


전화기 너머로 의자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오늘?”

“응.”


명수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말했다.


“너 지금 어딘데?"

"자취방이야. 학교에 있어 한 1시간이면 도착해."

“그래. 오랜만에 얼굴 보자.”


학교 근처 고깃집 안은 저녁 손님들로 붐볐다. 연기가 천장 가까이 옅게 깔려 있었고, 테이블마다 고기가 익는 소리와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명수는 불판 위에 올려진 삼겹살을 뒤집다가 그를 힐끗 바라봤다.


“너… 괜찮아?”


그는 집게를 들고 있던 손을 멈췄다.


“뭐가.”

“휴학하기 전엔 고기 잘 안 먹으려고 했잖아. 갑자기 고깃집 가자고 해서.”


명수의 말투는 조심스러웠다. 그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삼겹살 한 점을 뒤집었다.


“그냥… 오늘은 좀 먹고 싶더라.”


명수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잘 익은 고기를 그의 접시에 올려 주었다. 그는 상추 위에 고기를 얹고 마늘과 쌈장을 조금 올려 입에 넣었다. 기름진 맛이 혀 위에 퍼졌고, 씹을수록 뜨거운 육즙이 흘러나왔다. 그는 속으로 '이건 진짜'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곧바로 소주잔을 들어 한 모금 넘겼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알코올의 감각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술잔이 몇 순배 돌고 명수는 취업 준비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다들 정신없어. 우리 과 애들도 거의 취준 모드야. 인턴 자리 하나 나오면 경쟁률이 말도 안 되고.”


그는 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진짜 힘들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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