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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태 Aug 04. 2019

<그해봄>이 책방에 온 사연

다른 생각 받아들이기


"책방이 좀 약해요."


도발이었다. 발끈하려던 감정은 손님이 나간 후 차츰 수그러들었다. 쥔장 역시 무의식중에 신경이 쓰이던 지점을 손님이 건드렸다. 뒤늦게 손님께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한적한 저녁, 한 남성이 망설임 없이 책방 문을 열었다. 책방을 연지 한 달쯤 됐을까? 손님 자체가 그저 신기할 때다. 책방을 알고 찾아왔을까? 근처에 사는 이웃인가? 궁금했다. 책방 이곳저곳을 유심히 둘러보는 손님에게 말을 걸었다.


“이쪽에 사시나요?”

“아뇨. 저 앞 등갈비 집에 왔는데 친구가 책방이 있다고 해서요.”


대화는 더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손님은 다시 책을 열심히 구경했다. 잠시 후 손님은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우린 너무 몰랐다>를 손에 들고 쥔장에게 다가왔다.


"이거 살게요."

"네."


"그런데 사장님, 여기 책들이 좀 약하네요."

"네?"


"책방 이름이 불온인데. 좀 약해요. 마르크스 정도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 그렇습니까? 제가 대중적인 책을 좋아해서요."


"그해봄, 이라는 책이 있어요. 인혁당 내용을 만화로 만든 책이에요. 그거 읽어볼 만 해요."

"아...네네(뭐야!)"

40대 초중반쯤 돼 보이는 손님은 '불온'이라는 단어에 기대했고, 책방에 들어와 그 '불온'이라는 단어로 인해 실망했던 듯싶다. 손님이 나가고 책방 이름에 대해 곰곰이 되짚어봤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도 둘러봤다.


독립서점인데 정작 독립출판물이 많지 않다. 베스트셀러 책들에 미간이 찌푸려진다. 나름 의미 있는 신간이라고 생각했지만, 대형 서점에서 손쉽게 살 수 있는 책들이다. 굳이 이곳까지 와서 살 이유가 없는 책이다. 그래도 책방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책들이 눈에 띈다. 김수영, 마광수, 강신주, 장정일 등 쥔장이 좋아하는 작가들이다. 쥔장의 기준에 '불온 책'이다. 이석기 전 의원 사건을 다룬 <이카로스의 감옥>, 역사학자 한홍구 선생의 <대한민국史> 등 작가의 진보적 정치 성향이 명확히 드러나는 책들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하지만 손님 입장에서는 뭔가 아니다, 싶은 듯하다. 마르크스를 언급할 때 느낌이 왔다. 이왕 불온이라는 단어를 책방 이름으로 내걸었으면 확실히 '불온'하라는 의미로 읽혔다. 책방이 좀 약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당황스럽고 불편했다. 손님의 말에 수긍하기보다 맞서고 싶었다. 이곳의 불온은 정치적인 의미는 물론 기존 질서와 체제에 맞서는 자유로운 인문 정신도 담고 있는 것이라고. 낡은 '빨갱이 프레임'과 혈투를 벌일 생각이 없다고. 좌파와 진보라는 진영 논리에 불온이라는 단어를 가두지 않을 것이라고.


손님이 사라진 후 한숨 고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불온의 의미를 받아 들이는 결이 손님과 다르다고 강변할 필요가 뭐 있을까. 쓸데없는 말 안 하길 잘한 거 같다. 모르는 책을 권하는 손님에게 불편하고 부끄러웠던 감정을 스스로 부인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쥔장과 '일단불온'의 갈 길이 멀다. <그해봄>을 바로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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