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 아들이 부러워
이제 막 돌을 지난 아들이 ‘공 놀이’에 재미를 붙였다. 테니스 공 크기의 고무공을 손으로 잡은 후 자기 앞으로 던지고 다시 주우러 가는 행동을 반복한다. 공을 잡는 손이 오른손이든 왼손이든 던지는 손은 왼손이다. 바닥에 있는 공을 오른손으로 잡아도 왼손으로 공을 옮긴 후 던진다. ‘아들은 왼손잡이 인가보다’
와이프한테 새로운 발견이라도 한 듯 아들이 왼손으로 공을 던진다고 말했다. 공 놀이를 하고 있는 아들을 지켜본 와이프는 “진짜 왼손잡이인 거 같네”라고 말했다. 왼손으로 공을 던지는 아들의 모습이 낯설었다. 아들이 ‘바른 손(?)’이 아닌 ‘다른 손(?)’을 주로 사용하는 사람일 거라 생각하니 신기했다. 그리고 기뻤다. ‘아들은 인식론적 특권을 누릴 수 있겠네’라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은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비주류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인식론적 특권’이 있다고 말한다. 애초 세상을 받아들이는 인식이 주류의 시각에서 벗어나 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에서도 ‘문제의식’을 느낀다는 말로 해석된다. 정희진이 말한 ‘인식론적 특권’은 상상력과 지성의 원천이 된다.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라는 사회적 위치와 삶의 경험은, 주류의 시각에서 보면 열등함의 근원이고 극복되어야 할 장애이다. 그러나 반대로 억압받는 자의 시각에서 기존 사회를 보면, 이들의 타자성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력과 지성을 가능하게 하는 자원이 된다." <페미니즘의 도전> 중
정희진이 말한 타자성은 ‘새로운 언어’를 구사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기존 질서와 상식을 거머쥔 주류의 언어와 차별화되는 ‘새로운 언어’는 글쓰기를 포함해 창작활동에서 가장 빛을 낸다.
이성복 시인이 말한 ‘신기한 것들에 한 눈 팔지 말고 당연한 것들에 질문을 던지세요’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주류의 시각에서 벗어난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언급된 것처럼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에 드러난 정체성의 정치학이 그가 동성애자였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도 타자성에 기인한 '새로운 언어'의 결과물일 테다. 그래서 기존 질서와 상식의 틀 안에서 사고하고 생활해온 사람에게 페미니즘은 ‘새로운 언어’를 갖게 해 줄 디딤돌이 될 수 있다.
“페미니즘은 간단하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성소수자든 동등하게 존중받는 것” <정의당 심상정 의원>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기 전에는 페미니즘을 ‘젠더 갈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남녀 차별'에 문제의식을 갖는 접근방식으로 개념화해 왔다.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은 후에 페미니즘에 대한 협소한 이해를 반성했다.
‘여성도 인간이라는 급진적 믿음’이라는 유명한 페미니스트 슬로건을 장애인, 동성애자, 미성년자, 백인이 아닌 인종, 미혼모 가정, 이주 노동자, 비정규직, 여성 등 우리 사회 모든 소수자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과 실천으로 이해하게 됐다. 페미니즘은 경험적으로 비주류의 시각을 갖기 어려운 사람에게 ‘새로운 언어’로 향하는 문을 열어줄 훌륭한 도구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글 쓰는 입장에서 페미니즘이 탐날 수밖에 없다.
영어에서 오른쪽을 뜻하는 right는 ‘옳은’으로 통하며, 왼쪽을 뜻하는 'left'는 쓸모없다는 뜻을 가진 단어 ‘lyft’에서 파생됐다. 우리말도 마찬가지다. 오른손을 '바른 손'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오른쪽이 올바른 방향이라는 이미지를 준다.
아들이 정말 왼손잡이라면 앞으로 수많은 불편함과 마주칠 것이다. 가위, 키보드, 마우스 사례는 이미 많이 알려졌다. 글을 막 배우기 시작한 왼손잡이 아이들은 책을 읽을 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기도 한다. 악기를 다루려고 해도 오른손잡이 중심으로 만들어진 악기가 대부분이다.
아들이 굳이 오른손을 쓰기 위해 애쓰지 않았으면 한다. 왼손에 맞는 세상을 상상하며 불만을 털어놓는 모습을 기다린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오른손잡이 아빠'는 왼손잡이 아들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