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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태 Oct 23. 2024

당장 카드값이 문제지만

자본주의 즐기기/ 저항

"소박한 자율의 삶이 긴장을 잃지 않도록 평생 유의하는 것만으로도 이 지옥 같은 거대한 타율의 획일적 사회를 소박한 자율의 개성적 사회로 바뀌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소박한 자율의 사상가, 이반일리치 중>


14년을 일했다. 중간에 회사를 옮기면서 1주일 정도 쉰 것을 빼면 내 몫의 연차를 제외하고 쉰 적이 없다. 초등학교 때도,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군대에 갔다 와서도 어딘가에 소속돼 뭔가는 해야만 해서 했다. 이제는 멈춘다. 칭찬을 받기 위해,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취업을 하기 위해 등 돈이 목적이 된 일을 위해 버틴 삶을 일단은 멈춰보자고 용기를 냈다. 그렇게 사표를 쓰겠다고 회사에 통보를 한 후 휴직에 들어갔다. 하루하루를 온전히 마음 가는 대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삶을 시작했다.


당장 월급이 안 들어오는 문제가 급선무다. 일하면서 재테크를 무시했다. 모아둔 돈이 많지 않다. 결혼을 하고 나서야 월급쟁이들의 자산 격차가 대부분 재테크에서 온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어쩔 수 없는 장기 투자 경험 때문이다. 전세가 싫어 대출을 받아서 산 신혼집이 몇 년 후 올랐다. 당시 신혼집뿐만 아니라 부동산 시장 전체가 과열이었다. 차익을 보고 집을 옮겼고, 옮긴 집의 가격도 올랐다. 다만 최근 부동산 시장이 침체이라서 거품이 빠졌다. 진작에 재테크에 관심을 갖고 주식이든 코인이든 꾸준히 투자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특히 비트코인을 생각하면 아쉬운 정도가 아니라 땅을 치고 후회하는 중이다. 직업 특성상 정보에 민감하다. 의미가 있는 정보를 남들보다 빨리 접할 기회가 많다. 의미 있는 정보, 즉 가치 있는 정보는 권력 아니면 돈이랑 연결된다. 돈이랑 연결되는 정보는 투자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다만 공부가 아닌 정보를 기반으로 한 투자는 오래가지 못한다. 수익을 어느 정도 보면 정리하기 바쁘다. 비트코인을 2016년 초에 소개받았다. 당시 몇 달 만에 수익을 보고 비트코인을 정리했다. 그때는 내가 투자를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무식했다. 이제야 비트코인을 비롯해 블록체인을 공부하며 긴 호흡으로 투자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여유로운 파이어족이 아니다. 현재 손에 현금은 바닥이다. 신용카드로 생활한다. 돌려 막기는 아니지만 매달 카드 값을 막을 현금이 필요하다.  매달 갚아야 할 대출 이자도 상당하다. 매월 특정 일을 앞두고 코인이나 주식 등을 일부분 처분해 현금을 마련해야 한다. 나름 근본적인 대책은 있다. 살고 있는 집을 파는 것이다. 지방으로 내려가 주거 비용을 대폭 줄이면 숨통이 트인다는 계산이다. 금리와 부동산 시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와이프는 다시 일을 찾기 시작했다. 


내 사정을 잘 아는 친구 한 놈이 얼마 전 "복직 안 해도 정말 괜찮은 거냐"라고 물었다. 나는 "응. 복직해서 다음날 출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토 나올 거 같다"라고 답했다. 친구의 물음에 처음 떠올린 단어는 '지옥'이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단어는 '토'다. 지옥이라고 말하기에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감정이다. 글을 쓰며 적확한 단어를 고민하는 직업병이 발동한 셈이다. 다음으로 떠올린 단어인 '토'가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출근 풍경을 떠올리니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울렁댔다. '우웩'이라는 표현을 쓸 걸 그랬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사업을 하는 그 친구에게 "너네 회사에 알바 자리 있으면 알려주라"라고 농담을 덧붙이며 메마른 미소를 지었다. 


한 가지 다짐을 했다. 솔직히 벌써부터 흔들리고 있지만, 앞으로는 그 어떤 조직에도 속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다. 월급 받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에, 조직이라는 표현을 썼다. 회사라고 표현하기에는 뭔가 의미가 좁다는 생각을 했다. 그보다는 더 포괄적인 의미가 필요했다. 나름의 체계, 지켜야 할 규칙 등이 있는 사람들의 무리 안에서 밥벌이를 해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의지다. 지인들에게는 설명하기 번거로워 "대안 없이 관둬"라고 말한다. 


당장 실행할 일은 머릿속에 명확하다. 돈을 아껴 쓰는 것이다. 10년 넘게 몸에 밴 생활인지라, 아침에 전과 비슷한 시간대에 일어난다. 누가 보면 출근하는 것처럼 집을 서둘러 나온다. 달라진 점은 커피를 집에서 내려 텀블러에 담아서 나온다는 것이다. 출근 대신 운동을 한다. 헬스장 대신 걷는다. 지하철 두세 정거장 거리는 그냥 걷는다. 점심을 해결할 단골 식당도 생겼다. 구청 구내식당이다. 공무원과 일반인 식사 시간대가 분리돼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괜찮은 백반집 반값 수준인데 그렇다고 반찬 구성과 맛이 못하지 않다. 하얀 가운을 입은 조리사들이 내주는 음식을 입에 넣으면 건강해지는 느낌마저 받는다. 몸에 인이 박힌 듯 습관처럼 반복되던 친구들과의 저녁 술자리는 끊어내는 중이다. 지금의 상황들이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생 때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한 선생님의 진로상담이 떠오른다. 선생님은 기자가 되고 싶다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떤 직업을 가질지 고민하기보다 어떤 삶을 살지 고민하고 용기를 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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