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안부 문자'

같은 말도 다르다

by 돈태

알람을 듣지 못해서 평소보다 20분 정도 늦게 일어났다. 어차피 회사는 가지 않기 때문에 급할 이유가 없다. 그래도 스스로 정한 루틴을 지키려고 조금 서둘렀다. 씻고 나오니 와이프가 일어나 핸드폰을 확인하고 있다. 집을 나설 준비를 하는데 와이프가 부른다. 평소와는 다른 톤이다. 나에게 뭔가 알려줘야 할 일이 생긴 듯한 뉘앙스다.


"오빠, 계엄이래."

"무슨 소리야?"

"잘 때 속보 뜨고 난리 났어. 계엄 선포했는데 다시 해제됐데. 사람들 출근하냐 마냐 그런다네."

"정말이야? 계엄이 말이 돼?"

"뉴스 봐봐."

"어이없네."


진짜 계엄이 선포됐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3일 밤 10시 23분께 대통령실에서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 해제를 선언했다. 하지만 선포한 지 6시간 만에 계엄을 해제했다. 4일 새벽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표결로 통과됐고, 윤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면서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계엄 선포'를 믿기 힘들었다. 일상과 멀게 느껴졌던 정치가 실감 났다. 계엄 선포와 해제가 벌어진 몇 시간 사이 우리나라 자산시장은 나홀로 요동쳤다. 국내 코인거래소에서만 코인 가격이 급락했다가 급등했다. 혀를 찼다. 비정상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정치권에 환멸까지 치밀었다. '내 일상에 도움을 주지 못할 망정 방해만이라도 하지 말지'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여야 똑같다. 정치부 기자 경험상 이번 계엄 사태는 야당의 '꽃놀이 패'가 될 것이 뻔하다. 누가 더 잘못하냐 경쟁으로 거대 양당의 기득권을 견고히 해주는 반사이익 구조가 고착화된 지 오래다.


집을 나와 카톡을 확인하니 오랜만에 대학 동창한테 문자가 와있다. 반가움에 문자를 확인했다.


"몸 조심혀. 무리한 거 하지 말고."


동창이 문자를 보내 시간은 전날 밤 11시 55분이다. 술 한잔하고 생각났나, 싶었다. 내 걱정을 해주는 거 같은데 정확히 무엇을 걱정하는 건지 명확하지 않았다. 내가 지금 휴직하고 퇴사를 준비하고 있는 걸 알았나. 늦었지만 답문을 보냈다.


"그랴. 고맙다~ㅎ"


대안 없이 밥벌이를 그만두려는 나를 걱정하는 문자라고 추측했다. 얼굴 본 지는 꽤 됐지만 어디선가 내 소식을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마웠다. 곧바로 동창한테 답문이 왔다.


"바빴겠구먼ㅋㅋㅋ"


뭐가 바빴다는 거지. 나는 너무나 한가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고, 어제도 별반 다를 게 없었는데. 순간 집을 나오기 전 와이프랑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아, 계엄.' 동창은 내가 아직 정치부 기자인 줄 아는 거다. 전날 계엄이 선포되고 국회에서 결의안이 표결되는 긴박한 현장에 내가 있던 걸로 생각하고 안부 문자를 보냈던 것이다. 헛웃음이 나왔다.


정치부 기자를 할 때 국회에 같이 있던 바로 밑 후배가 인사이동이 있은 후 전화가 온 적이 있다. 친척 상을 당해 며칠 휴가를 냈을 때다.


"선배 연락을 못 드려 죄송해요."

"아니다. 괜찮아. 이제 정리 됐어. 곧 출근할 거야. 연락 줘서 고마워."

"아, 네 선배. 그게... 제가 회사를 옮기게 돼서요."

"아... 그래..."


같은 말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사람에 따라, 사연에 따라, 지금 처한 각각의 현실에 따라. 내게 온 말들은 내 입장을 중심으로 해석된다. 남을 향한 말을 조심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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