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뀌고 있을 뿐인데

술자리

by 돈태


저녁 술자리를 앞두고 술자리 장소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 들어왔다. 잠깐이라도 읽던 책을 읽고 가고 싶었다. 오늘 술자리는 사회인야구팀 총회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팀원들끼리 송년회를 하는 자리다. 질펀한 술판이 벌어질 것이 뻔하다.


내년에는 야구를 그만할 생각이다. 서울살이를 정리하면서 야구팀도 서둘러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방살이를 위해 휴직을 하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이 늘어났다. 자연스럽게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줄었다. 그렇게 열심히 찾아헤맸던 술자리가 줄어들면서 읽고 쓰며 머릿속 생각을 밀고나가는 재미가 붙었다.


커피숍에서 책을 읽다가 메모를 끄적였다. 딱히 무엇을 쓸 생각은 없었고 지금 감정을 글로 옮기는데 술자리에 가기 싫은 마음이 글로 삐져나왔다. 가면 반가운 얼굴들과 술한잔 기울이는 재미가 있긴 한데, 했던 얘기 또 하고 별로 달라지지 않은 일상을 주고받고, 야구든 성격이든 서로에 대한 품평을 하며 술이 거하게 오르면 팀의 단합을 애써 확인하듯 건배사가 이어지는 등의 그림이 그려졌다. 오히려 술자리를 가기 전에 커피숍에서 책을 읽다가 뭔가를 끄적이는 지금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말이 있어 술자리는 갔다. 감독한테는 내년부터 야구를 못한다고 말을 해놨다. 감독은 총회에 와서 술 한잔 하며 서로 인사라도 하고 팀을 나가자고 했고, 난 알았다고 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술과 함께 정신줄을 놓고 살았는지, 술이 몇 잔 들어가니 예전 습관이 나오는 것처럼 술자리를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분이 오래가지 못했다. 달라지지 않는 대화 주제와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건네는 술잔 그리고 시작된 건배사들에 정신이 들었다. 빨리 가던 시간이 더디게 느껴졌다. 사람들에게 먼저 일어나 봐야겠다고 말하자 동갑내기 팀원들이 조금만 더 있다 가라며 한 마디씩 던졌다.


"에이 그러지 말고, 언제 또 볼 줄 모르잖아 한잔 더해."

"그럼 조금만 있다가 일어설게."


술 한잔을 받아 마시자, 다른 동갑내기 팀원이 한 마디를 거들었다.


"뭐 그리 급해. 집에 무슨 일 있냐?"

"아니. 무슨 일은. 집에 가는 시간도 있고, 애도 있으니 너무 늦게 들어가기가 좀 그렇지"

"야, 너만 애 있냐. 왜 그렇게 휘둘리며 사냐. 난 그렇게 안 한다."

"그래 넌 멋지다."


휘둘리지 말라는 말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 동갑내기가 가장 눈치를 보며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왔던 참이다. 술을 한 잔 더 받아 마시는데 처음 동갑내기 팀원이 다시 말했다.


"야. 우리 행복하자."

"그럼 행복해야지."

"그래 더 활짝 웃어봐. 너 너무 안 웃어. 행복하게 살자."

"그래 그러자."


역시나 미소가 살짝 지어졌다. 그 놈이 가장 현재에서 벗어나고 싶어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를 건넸다. 야구는 그만두지만 관계는 이어가자는 취지의 말들이 빠르게 오갔다. 택시를 잡는데 동갑내기 팀원 두 놈이 배웅했다.


"야, 집에 무슨 일 있는 거 정말 아니지"

"무슨 일이 있긴 뭐가 있어. 무슨 일이 있기를 바라는 거 같다"

"새끼. 잘 들어가고 또 보자. 그리고 진짜 휘둘리지 말고 살아. 나는 그렇게는 못 산다. 오늘 끝까지 달릴 거야. 행복해야지."

"알았다. 그런데 나 휘둘리는 거 없어. 그냥 내가 바뀐 거지. 재밌게들 마셔라. 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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