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일까
그 손님에 대한 감정은 일관되지 않았다. 첫 대면은 당황스러웠고, 헤어질 때는 멍했으며, 혼자 남겨진 후에는 불쾌감이 왔다. 지금은 뭔가 씁쓸하다. 또 어떤 감정이 들까.
"여기 사장님이세요?"
책방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주변에서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갑자기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목소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 여자가 책방 문을 반쯤 열다 말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여자 뒤에 남자 한 명 서 있다. 남자는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아, 네."
언제 손님이 온 거지. 도둑질하다 걸린 마냥 눈을 크게 떴다.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손가락 사이에 껴있는 담배가 왠지 민망했다. 담뱃불을 급히 끄는데 여자의 말이 이어졌다.
"책 좀 추천해 주세요."
대답은 필요 없다는 듯 여자는 바로 책방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내쪽을 한번 돌아보고 여자의 뒤를 따랐다. 담배꽁초를 버리고 서둘러 남자의 뒤를 쫓았다.
"제가 이 친구한테 책을 선물하려고요. 좋은 책 좀 추천해 주세요."
여자는 서가 한쪽에 서서 고갯짓으로 책방을 둘러보더니 다시 입을 뗐다. 옆의 남자는 무표정이다. 오기 싫은 곳에 억지로 끌려온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다지 내키지 않는 얼굴이다. 좋은 책이라... 막막했다.
"학교 없는 사회. 이건 어때요? 괜찮을 거 같은데."
무슨 책을 추천해야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여자가 말을 이었다. 여자의 손에는 이반일리치의 <학교 없는 사회>가 들려 있다. 나한테 묻는 건지, 남자에게 권하는 건지 헷갈리는 말이다. 남자는 원래 서있던 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 바로 앞에 놓여 있는 책들을 무심히 바라만 볼 뿐이다.
"평소 어떤 책을 읽나요?"
여자가 왜 이반일리치의 책을 추천하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무턱대고 책 추천을 요구하는 손님에게 되묻는 말이 떠올랐다. 여자가 아닌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남자는 뭔가를 생각하는 눈치다. 남자에게 다시 "최근에 무슨 책을 읽었어요?"라고 말했다. 남자는 그제야 "저는 책을 잘 안 읽어요"라고 답했다. 남자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여자가 대화를 시도했다.
"사장님 여기 얼마나 됐나요?"
"책방이요?
"네 책방이요."
"한... 4년 됐습니다. "
"저는 이 근처에서 일 한지 4개월 정도 됐어요.
"아, 네."
"책방을 검색하니 여기가 나오더라고요. 이 친구가 요즘에 삶에 의욕이 없는 상황인데 책 하나 추천해 주세요."
결국 또 책을 추천하라는 것이다. 또다시 말문이 막혔다. 남자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이걸로 할게요"라고 말했다. 남자 손에는 권기태 작가의 <중력>이 들려 있다. 남자가 서있던 곳에서 손만 뻗으면 닿을 자리에 있던 책이다. 남자는 여전히 무표정이다.
여자는 손에 들고 있던 이반일리치의 책을 내려놨다. 대신 남자 손에 있던 <중력>을 내게 내밀었다. 계산을 마친 여자는 "근처에 있으니 또 올게요"라는 말을 남기고 책방을 나갔다. 건네받은 책에 눈길 한번 주지 않은 남자는 여자를 뒤따랐다. 나는 인사할 생각도 못하고 입을 살짝 벌린 채 남자의 뒷모습만 바라봤다.
남자는 여자와 같은 회사를 다니는 거 같다. 아마도 여자가 다니는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입으로 보인다. 이후 여자를 책방에서 못 봤다. 혹시 책방 문이 닫혀 있을 때 왔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남자는 <중력>을 읽었을까. 궁금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