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손님 1.

진정성

by 돈태

진부하지만 장사를 하다보면 무례한 손님을 만난다. 책방을 하면서 처음 장사라는 것을 했는데 역시나 무례한 손님들은 나타났다. 그중 세명의 손님이 인상 깊다. 이들의 무례함은 결이 다르다. 내 기준에서는 진정성과 위선으로 무례함의 성격이 나뉜다. 무례함마다 내가 받아들이는 강도가 다른 이유다. 적어도 위선적인 무례함보다 진정성 있는 무례함이 낫다. 무색하고, 당황스럽고, 어이없을 수는 있어도 다시 떠올리면 인상이 써지기보다는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고 진정성 있는 무례함에는 가뭄에 비 오듯 가끔 도움 되는 알맹이가 들어있는 경우도 있다. 책방 초창기에 과거 운동권 포스를 한 껏 풍기며 들어왔던 손님이 그랬다.


책방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기에 손님이 왔다는 것 자체가 반갑고 신기한 일이었을 때다. 책방에 대한 열정도 뜨거운 시기인 만큼 그 시절 손님 한 분 한 분이 소중하다. 지금과 다르게 그때는 용기를 내 손님한테 말을 먼저 걸었다. 한 중년 남성이 책방 문을 급하게 열며 들어왔을 때도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이 쪽에 사시나요?”

“아뇨. 저 앞 등갈비 집에 왔는데 친구가 책방이 있다고 해서요.”


손님은 대화에 흥미가 없어 보였다. 손님의 냉랭한 반응에 대화를 더 끌고 갈 호기심이 사라졌던 거 같다. 눈은 여전히 책들을 향하고 있던 손님은 책방 전체를 한 바퀴 돌아보고는 도올 김용옥 선생의 <우린 너무 몰랐다>를 집었다.


“이거 살게요.”

“네.”

“그런데 책들이 좀 약하네요.”

“예?”

“불온서적이라고 해서 왔는데 좀 약해요. 자본론 등 좀 더 센 책들을 들여놔야 할 거 같은데요.”

“아, 그렇죠. 제가 대중적인 책들도 좋아해서요.”

“그해 봄, 이라고 인혁당을 다룬 만화책이 있는데 그거 읽어볼 만해요.”

“아, 감사해요. 적어 놓을게요. ”


손님은 책방 이름에 있는 '불온' 만을 생각하고 책방이 불온서적을 파는 곳으로 짐작하고 왔던 것으로 보인다. 근처 식당에서 술 한잔 하다가 친구가 책방 이야기를 했고,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책방으로 달려온 거 같았다. 왕년에 누구보다 빡세게(?) 운동권 생활을 했다는 자부심을 한가득 안고?


손님은 더욱 레디컬 한 책들이 가득하길 바랐던 것으로 보인다. 책방 주인이라는 사람도 자신보다 한 참 후배인 거 같고 책들 가운데 말랑말랑한 소설책도 많이 보이니 자신이 갖고 있는 '불온'이라는 개념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 같다.


내가 생각하는 불온은 정치적 진영논리에도 기반하지만 자유라는 '인문 정신'이 핵심이고 포괄적으로는 '다른 생각'이라는 키워드를 책방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는데 손님이 알아채지 못한 느낌이다. 한홍구의 <대한민국사>, 김남주 <꽃 속에 피가 흐른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 마르크스 <공산당선언> 등뿐만 아니라 개성 넘치는 독립출판물들, 김수영, 마광수, 박유하, 미셸 우엘벡, 찰스 부코스키, 이반일리치, 헨리데이비드소로우 등이 책방에서 명당을 차지하는 이유다. 그래도 손님 덕분에 <그해 봄>이라는 책을 알게 됐고, 책방에도 입고 했다.


문틈 무례한 손님.png


또 한 명의 무례한 손님이 기억난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기에 더욱 강렬한 할아버지 손님이다. 다만 책방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 소심함에, 그 용기에 미소를 짓게 만드는 무례한 손님이다.


여느 때와 같이 한가한 책방에서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뭔가에 집중하고 있던 그때, 갑자기 문이 열렸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얼굴이 문 틈으로 보인다. 몸은 밖에 있고 얼굴만 책방 안으로 들이민 할아버지는 한 마디 외침과 함께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가 불온이야. 이놈의 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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