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보니 이불 킥

쓰면서 나온 결론

by 돈태

'나까지 이런 글을 쓸 필요가 있을까?'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책방 상가계약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다가 말았다. 책방 연재를 구상하면서 상가계약, 책 유통 계약, 인테리어 등 실무적인 정보를 담은 글도 쓰려고 했다. 책방과 관련된 메모들을 이참에 다시 정리하고, 혹시나 책방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런 글, 아니 그런 정보들은 이미 인터넷에 넘친다. 조금만 시간을 들여 검색하면 관련 정보를 찾을 수 있다. 나 역시 책방을 준비하면서 인터넷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이른바 '야마(주제)'를 틀기로 했다.


책방을 준비하면서 '사업자등록 방법', '상가계약 팁', '상가 인테리어 분쟁', '셀프 인테리어 자재', '책 입고 방법', '총판 계약', '책방 개업' 등을 검색해서 유용한 정보를 얻었다. 특히 선배들이라고 할 수 있는, 먼저 책방을 열고 그 내용을 글로 엮은 이들의 책들에서 쏠쏠한 정보를 구했다. 다양한 정보들 가운데 주관적인 기준으로 추려서 따로 메모했다. 이런 메모들은 실제 책방을 여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다. 정보성 메모와 별개로 향후 책방 운영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도 틈틈이 정리했다. 이런 메모들이 이번 글을 쓰게 만든 겸연쩍은 동력이다.


'풉'

책방을 준비하며 기록한 메모를 훑어보는데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굳이 갖다붙이면 고등학교 때 썼던 일기장을 보는 느낌이다. 초등학교나 중학교가 아니라 고등학교를 꼽은 이유도 있다. 그래도 머리가 컸던 시절이랄까. 나름 앞날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막연한 열정 같은 것을 품고 있었던 시기 같다. 그 시절 일기장을 다시보며 오그라드는 느낌을 책방 메모에서 받았다. 메모의 언어들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일들을 앞두고 뜨거운 무언가를 내뱉는 듯 했다.


'컨셉 및 공간 활용'

책방의 정체성과 향후 운영 계획을 기록해 둔 메모다. '정치적', '풀뿌리', '유튜브 방송', '피피티 활용 공간', '정치인 소통', '부수입 추진' 등의 키워드가 눈에 띈다. 단박에 드는 느낌은 '거창했다'다. 다만 책방의 컨셉 측면에서는 약소하게나마 현실화했다. 정치적으로 명확한 정체성을 드러내려고 했다. 그래서 책방을 채울 사진이나 그림 또는 포스터 등을 최대한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무엇보다 책 목록이 대표적이다. 이른바 '빨간 책들'이 많다. 조지오웰, 김수영, 마광수 등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물론 국방부가 지정했던 불온서적과 레닌 저작, 체게바라 자서전 등도 의도적으로 배치했다. 읽어보지는 못했어도 자본주의 등 기존 질서와 체제를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저항하는 메시지가 담긴 책들도 일부로 입고해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았다. 한 번은 나이가 지긋하신 손님이 들어와서 "여기는 온통 빨갱이 책들이네"라고 말했다. 순간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다른 키워드들은 책방을 운영한 지 5년을 넘긴 시점에서 보니 '참 열정적이었다'라는 회한을 들게 한다. 풀뿌리, 정치인 소통과 같은 키워드는 책방을 현실정치와 연결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보자는 바람이 베어었다. 책방이 있는 동네에서 주민들과 정치적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관련 책을 읽는 모임을 추진하고 비정기적이라도 지역구 의원, 구의원 등과 직접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해 보자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책방을 열고 1년 안팎으로 이런저런 관련 모임을 시도했고 성사도 시켰지만, 결국 지속되지 못했다. 당장 사람 모으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작은 책방이 유튜브 방송을 하기에는 적당한 장소일 수 있다. 환경은 그럭저럭 할 만한데 정작 시작을 못했다. 아니 안 했다. 책방을 소개하는 영상을 찍어 올려보기는 했지만 방송을 해 본 적은 없다. 방송 장비가 없는 것은 물론 경험도 없었다. 유튜브 방송을 위한 공부를 하자는 마음만 있었지 정작 시간을 내지 않았다. "언제 밥 한번 먹자"처럼 유튜브를 만들던 지인에게 같이해보자고 실없는 말만 몇 번 던졌을 뿐이다. '피피티 활용 공간'과 관련해서는 저자를 섭외해 책방에서 북토크와 같은 모임을 하기 위해 빔프로젝트 등의 장비를 구입했지만 딱 1번만 썼다. 책 판매 외의 부수입도 상상의 나래를 펼쳤었다. 음료와 굿즈 판매, 회원비를 받는 독서모임과 글쓰기 모임 등이다. 이런 계획들은 시도하고 중단하거나 애초 시작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글을 쓰다보니 느낀다. 머리를 굴려 글을 마무리하지 않고 그냥 몸이 쓰는 대로 쓰니 글의 결론이 나온다. 결국 문제는 내게 있던 거 같다. 책방을 열기 전에 계획했던 일들이 실제로 이뤄졌을 수도 있다. 책방하는 현실이 꼭 내가 겪은 날들만 있다고 할 수 없다. 책방을 열기 전에 상상했던 그림들은 문제가 없는데 내가 책방을 대하는 마음이 서서히 달라지면서 문제가 됐을 수 있다. 나도 모르게 책방을 하면서 점점 책방과 멀어졌던 것은 아닌지. 이런 생각에는 당장 변명할 수 있는 말들이 많다. 하지만 그래도 변명일 뿐이다. 몸으로 밀고 나가지 않았다. 머릿속에 없던 글도 이리 밀고 나가니 마침표를 찍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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