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한 보람
"승우야 잘 지내지?"
혼잣말을 해본다. 1년 가까이 못 본 손님인데 보고 싶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보다 책방을 더 아꼈던 아이였던 거 같다.
승우를 처음 만난 날짜를 정확히 기억을 하지 못한다. 다만 겨울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승우가 처음 책방에 들어왔을 때 전기히터가 켜져 있었다. 신난 승우가 책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전기히터에 손을 대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책방에 전기히터가 켜져 있으니 대략 1년 전쯤인 것으로 보인다.
'또 왔네.'
오늘도 엄마와 남자아이는 책방에 들어오지 않고 갔다. 책방 창문 밖에서 훔쳐보듯 책방 안을 구경만 하고 간다. 얼마 전부터 매번 같은 시간대에 엄마와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창 밖에서 책방을 들여다보는 아이는 4살에서 5살 정도로 짐작된다. 엄마의 손에는 아이의 노란색 책가방이 들려있다. 아이는 책방 옆에 있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거 같다. 어린이집을 나와 집으로 가는 엄마와 아이가 책방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 지 며칠 됐다.
'들어와도 되는데.'
창 밖으로 엄마와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시계를 보니 어린이집이 끝나는 시간 대다. 오늘은 아이가 창문에 더욱 바짝 붙어서 책방 안을 들여다본다. 엄마는 그 옆에서 아이와 키를 맞춰 허리를 구부리고 있다. 순간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책방 밖으로 나갔다.
"추운데 들어와서 구경하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엄마 손을 잡고 들어온 아이는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밖에서만 보던 책방에 처음 들어와서일까. 문 앞에 서서 고개만 돌리며 책방 안을 살핀다. 마침 책방에 있던 쿠키가 생각났다. 쿠키 하나를 아이에게 건넸다.
"이름이 뭐야?"
"승우예요."
"편하게 돌아다녀도 돼."
"네."
"승우야 책방 와줘서 고마워. 책들 마음대로 만져도 돼."
"네."
쿠키를 손에 든 승우가 조금은 적응이 됐는지 책방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 뒤를 엄마가 따랐다. 잠시 후 승우가 한 곳에 멈춰서 팔을 뻗었다. 뒤에 있던 엄마가 승우 앞으로 고개를 내밀며 승우의 작은 손가락이 가리키는 책을 집었다. 빈센트 반고흐의 얼굴이 눈에 띄는 책 표지다. 엄마에게 책을 받은 승우는 책장을 넘기며 고흐의 그림이 나올 때마다 엄마에게 손짓을 하며 즐거워했다.
"아이가 빈센트 반고흐의 그림을 좋아해요."
"아, 그래요. 대단하네요."
"며칠 후에는 고흐 전시회가 있어서 같이 가자고 해서 처음으로 미술관 예약도 해봤어요."
"벌써부터 고흐 그림을 좋아하다니... 승우 참 기특하네요."
"그게... 책방 때문이에요."
엄마는 승우가 고흐에 빠진 사연을 들려줬다. 얼마 전부터 어린이집이 끝나고 나온 승우가 책방 앞에서 멈춰 섰다고 한다. 그렇게 책방 창문을 가린 고흐의 그림을 한참 바라보다가 집에 가곤 했다는 것이다. 책방이 닫혀 있을 때는 창문 가운데에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가 인쇄된 대형 패브릭 포스터가 걸려있다. 그 양쪽으로 <밤의 카페 테라스>와 <12송이 해바라기> 그림이 담겨있는 중형 패브릭 포스터가 걸려있다. 책방을 열 때면 가운데 대형 패브릭 포스터만 뗀다. 승우는 책방이 닫혀 있을 때 책방을 가리고 있는 고흐의 그림을 구경했고, 책방이 열려 있을 때는 책방 안에 있을지 모를 고흐의 그림을 찾았던 것이다. 승우의 마음에 고흐가 들어온 이유가 책방이었다니, 가슴이 벅찼다.
이후에 승우가 두세 번 더 책방에 왔던 걸로 기억한다. 한 번은 오랜만에 책방 문을 열었을 때 엄마 손을 잡고 들어온 승우가 먼저 말을 건넸다.
"아저씨 저번에 그림이 거꾸로 걸려 있었어요."
"아이고. 그랬나. 아저씨가 몰랐네. 미안해."
아마도 급하게 책방을 나서느라 대충 창문을 가렸던 거 같다. 그 실수를 승우가 알아챘던 것이다. 부끄러웠다. 승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승우가 아저씨보다 낫네"라고 말하자, 승우는 미소를 띠며 책방 안을 둘러보고 또 한참을 고흐의 책들을 만지작거렸다.
언제부터인가 승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덧 날씨가 따스해진 때로 기억한다. 아마도 승우가 다섯 살이 돼서 유치원에 입학한 것으로 생각이 된다. 아들이 내년이면 다섯 살이다. 아들도 내년부터 유치원으로 옮긴다. 내년 3월이면 책방 계약이 끝난다. 그전에 승우가 한 번 책방을 찾아오면 얼마나 좋을까. 승우에게 고흐의 책을 선물하지 못한 것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승우야 그전까지 열심히 책방을 열고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