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모자

책방 덕분에

by 돈태

책방을 연지 얼마 안 돼 아버지가 책방에 왔다. 며칠 전 어머니는 다녀갔는데 이번에 어머니가 아버지를 데리고 왔다. 입술을 일자로 다물고 무표정한 얼굴로 책방 문을 열고 들어온 아버지는 이마에 주름이 잡히게 눈을 크게 뜨더니 책방 안을 한번 둘러봤다. 나를 본척만척하며 책방을 말없이 탐색(?)했다. 아들의 책방이 못마땅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썩 내키지도 않은 눈치다. 나는 책방 이름에 대한 아버지의 반응이 가장 궁금했다. 돌직구를 날리며 대화의 물꼬를 텄다.


"아버지 책방 이름 어때요?"

"그냥 뭐."

"불온이라고 하면 무슨 생각이 들어요?"

"뭐 좋은 의미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

"불편해요? 불온이라는 단어가?"

"우리야 조금 그렇지."


아버지랑 친하지 않았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원양어선을 탔다. 해외에 있는 날이 많았다. 1년 한 번 정도 휴가를 받아 귀국하면 2~3주 집에 있다가 다시 해외로 나갔다. 어린 시절 김포공항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며 설렜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공항의 기다림을 빼면 아버지와의 추억은 많지 않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공백은 아버지에 대한 셀렘으로 기억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에 대한 어색함으로 자라났다. 지금도 중간에 누군가가 없으면 아버지와의 대화가 어색하다.


몇 없는 아버지와의 추억 중 유독 선명히 기억되는 순간이 하나 있다. 저 멀리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얼굴을 옆에서 올려다보고 있는 나, 그리고 내 손을 꼭 잡고 있는 아버지의 손에서 느껴지는 악력. 그날 아버지는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며 내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초등학교쯤으로 생각되는 그날, 어머니와 동생 없이 아버지와 나 둘이 간 곳은 인천 어디쯤이었다. 지명은 기억나지 않고 학교는 아니지만 학교 운동장 같은 곳에 상당한 인파가 몰려있었다. 순간 아버지의 혼잣말이 들렸다. "선생님을 보는구나." 아버지는 물론 사람들이 향하는 단상에 누군가 올라서자 주변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당시 김대중 후보의 연설이 시작됐고, 아버지는 연설이 끝날 때까지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전라남도 고흥에서 자라고 목표에서 학교를 다녔던 아버지는 '김대중'이라는 이름을 말한 적이 없다. 지금도 아버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말할 때 꼭 선생님 아니면 DJ라고 부른다.


책방 안을 돌아다니던 아버지가 한쪽 벽 앞에서 멈췄다. 아버지의 얼굴이 벽 쪽으로 가까이 갔다. 벽에 붙어있는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아버지에게 말을 걸었다.


"사진에 있는 사람들 누군지 아시겠어요?"

"몰라. 그런데 한 명을 알지."

"누구요?"

"DJ. 선생님이 젊었을 때는 참 잘 생겼는데. 너무 고생을 해서..."


사진에 담긴 사람들은 김수영 시인, 김대중 전 대통령, 루쉰, 프레디 머큐리, 조지오웰, 체게바라, 김현식, 한나 아렌트다. 각자의 사진을 이어 붙여서 만든 한 장의 사진이다. 이들을 묶을 공통점이라고 딱히 없다. 각자의 분야에서 이름을 날렸다는 정도. 그냥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하나의 사진으로 모아놓으니 공통점이 생겼다. 모두 담배와 함께 찍혔다. 담배를 물거나 손가락에 끼고 있는 모습들이 너무나도 불온해 보여서 더욱 마음에 드는 사진들이다. 허리를 굽혀 사진에 집중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는데 아버지 모자가 눈에 들어왔다. 모자 뚜껑에 있는 그림이 낯설지 않다. 자세히 보니 반가웠다. 아버지에게 말을 안 걸 수 없었다.


"아버지. 모자 어디서 샀어요?"

"이거. 너네 엄마랑 월미도 갔다가 샀다."

"그래요. 모자에 있는 그림 누군지 알아요?"

"몰라."

"DJ보다 더 잘생긴 사람인데."

"누군데?"

"체게바라예요. 거기 사진에도 있어요."

"그래도 DJ 젊었을 때보다는 못하지."


책방 덕분에 오랜만에 아버지랑 아기자기한 대화를 이어갔다. 어머니는 부자(父子)의 대화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책방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먼지를 닦고,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을 뿐이다.


이전 08화무례한 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