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추천 비법?

힌트와 관심

by 돈태

차림새가 남다른 손님이 책방에 들어왔다. 어디론가 떠나거나, 어딘가에서 돌아오는 중인 분위기다. 동네사람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자유로운 겉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게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어색하다. 머뭇머뭇 책방을 둘러보던 손님이 조용히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저 지금 용기 내서 말을 걸고 있어요,라는 표정이다.


"사장님. 조금 이상한 질문인데 해도 괜찮을까요?"

"아, 그럼요."


말문을 연 손님은 그래도 주춤했다. 손님은 다시 마음을 다잡은 듯 입을 뗐다. 나는 기다렸다.


"제가 한국어가 서툴러서요. 쉽게 읽을 수 있는 한국 소설을 추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 네. 주로 어떤 책을 읽었나요?"


크게 기대하지 않고 되물었다. 책추천을 바라는 손님들이 자신이 읽어온 책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는 경우는 드물다. 책추천을 요구했는데 원하는 답이 아닌 질문이 돌아오자 당황했을 수 있고, 정작 말로 하자니 최근에 읽은 책의 제목이나 저자 이름이 떠오르지 않거나, 책과는 거리가 사람일 수도 있다. 아니면 선물용이거나. 무턱대고 책 추천만을 요구하는 손님을 만날 때면 막막함이 밀려온다. 점집도 아닌데 처음 보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맞혀야만 한다는 부담과 함께. 그런데 눈앞에 있는 손님은 달랐다.


"최근에 사피엔스 읽었어요. 음... 얼마 전에는 김명민 교수의 책도 읽었고요."

"우와... 그런데 소설보다는 역사나 인문학 책이네요. 비소설을 주로 읽으시나봐요?"


서툰 한국말로 손님은 자신이 최근에 읽은 책 제목과 저자의 이름을 정확히 말했다. 그런데 손님이 바라는 책은 소설인데 자신의 독서취향을 설명한 책들은 비소설이다. 머리가 빨리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떤 책을 추천해야 한담. 손님이 조금 더 힌트를 줬다.


"소설도 좋아해요. 제가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거 같아서, 그런 책들을 요즘에 읽었어요. 조금 더 한국을 이해하고 싶어서 다가가기 쉬운 한국 소설을 읽어보려고요."

"지금 말씀해 주신 책들이 쉽지는 않은 거 같은데요."

"사실 책을 공부하듯이 읽어요. 제가 한국을 잘 모르는 거 같아서요. 지금 호주에 살고 있는데 가끔 한국에 옵니다. 한국 오면 책방들을 찾아다니고요."


대화를 할수록 손님의 겸손한 모습에서 오히려 내공을 느꼈다. 나이는 많지 않지만 읽은 책들과 평범하지 않은 듯한 경험에서 오는 성숙함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섣불리 책을 추천하기보다 손님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는 심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아주 가끔 이 질문을 하고 싶게 만드는 손님들이 나타난다.


"혹시 글을 쓰나요?"

"음... 글이라고 하기보다는 일기를 써요. 이거 저거 생각날 때 쓰고, 책을 읽다가도 쓰고요. 개인적인 마음을 쓰기도 하지만 시사적인 내용도 좋아합니다."


질문은 성공적이었다. 손님은 자신을 조금 더 드러내줬다. 손님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떠올랐다. 소설은 아니지만 지금 손님이 읽기에 알맞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사적이면서도 문학적이고, 무엇보다 읽으면 쓰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하는 책이다. 책방지기의 취향이 강하게 들어가긴 했지만.


"그렇다면 소설이 아니라도 괜찮을까요? 떠오르는 작가가 있는데. 은유 작가 아시나요?"

"아뇨."

"공적인 에세이를 쓰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에요. 일기를 시사랑 연결하는 글 쓰기라고 할 수도 있을 거 같고요. 더욱이 책을 읽다 보면 글이 쓰고 싶은 생각이 드는 점이 좋아요. 솔직히 제가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와. 감사합니다. 오늘은 은유 작가의 책으로 살게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책 추천은 손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과정이 먼저다. 그 과정을 건너뛰려는 손님이 있고, 그 과정에 진심인 손님이 있다. 과정을 거치다 보면 책추천을 원하는 손님도, 책추천을 고민하던 책방지기도 방향성이 새롭게 잡히는 경우가 많다. 글쓰기가 글을 쓰면서 써지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책추천에서 서로의 독서량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손님의 경우 자기 얘기를 해줄 마음가짐, 책방지기 입장에서는 손님에 대한 관심이 책추천의 관건이 될 수 있다. 둘 다 서로에게 마음을 열 자세 또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에 쉽지 않다. 그래도 손님보단 주인이 먼저 다가가는 게 아무래도 모양새가 나은 거 같은데, 여전히 어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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