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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거리감?

언어의 한계

by 돈태

멀어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꼈다. 그 감정에 딱 들어맞는 단어를 찾지 못했다. 어른들 사이를 비집고 나가 무대에 오른 아들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춤을 췄다. 아들을 '타인'으로 바라보게 된 첫 경험일까.



이번 설 연휴를 괌에서 보냈다. 올해 5살(만 3세)이 된 아들과의 첫 해외여행이다. 괌에서의 마지막 저녁은 건비치 해변에서 보냈다. 해변에 설치된 야외무대에서 펼쳐지는 원주민 공연인 '타 오타오타씨 디너쇼'를 예약했기 때문이다. 공연장 한 편에 차려진 뷔페에서 음식을 떠 온 뒤 무대 뒤 편으로 바라보이는 선셋을 감상하며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아빠도 나가요."

날이 저물고 공연이 시작됐다. 객석이 어두워지며 무대에 초점을 맞춘 조명들이 켜졌다. 화려한 의상과 웅장한 퍼포먼스에 객석은 숨죽였다. 공연 중간에는 관객참여 무대도 있었다. 배우들이 객석으로 넘어와 성인 남자들을 사실상 끌고 나가 춤 대결을 시켰다. 관객참여 무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긴장했다. 배우들이 관객을 찾아 돌아다닐 때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태연한 척 음식을 입에 넣으면서도 가슴을 졸였다. 필요한 관객이 모두 끌려나가자 안도했다. 그때 아들이 작은 목소리로 한 마디 했다. 아빠도 나가라고. 이미 버스는 지나간 터. 아들의 말을 못 들은 척, 아들을 향해 온화한 미소를 지웠다.


"쉬 마려워."

관객참여 무대가 끝나고 다시 공연이 이어졌다. 잠시 환해졌던 객석은 다시 어두워졌다. 무대 위 조명만이 현란했다. 다시 아들이 입을 뗐다.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난감했다. 화장실을 가려면 공연장을 나가야 한다. 식사를 하며 공연을 즐기는 쇼이기에 객석은 테이블로 꽉 차있다. 본공연이 시작됐기에 객석은 어둡다. 더욱이 우리 자리는 무대와 가까운 곳이다. 공연장을 나가기 위해서는 계단을 오르고 자리 뒤편의 수많은 테이블을 지나야 한다. 혼자면 문제없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들을 모셔야 한다. 아들의 손을 꽉 잡았다. 다른 관객들을 방해하지 않게 최대한 허리를 굽히고 눈에 힘을 주며 한 발 한 발 뗐다.


돌발상황 없이 일을 마친 아들과 공연장에 들어섰다. 무대 앞에 있는 자리에 돌아갈 생각을 하니 아득했다. 다시 허리를 굽히고 아들 손을 잡으려는데 아들이 손을 뿌리쳤다. 아들은 자기 볼일 다 봤다는 듯 혼자 앞으로 나아갔다. 불안한 마음에 바로 아들을 쫓았다. 순식간에 아들을 잡아 안았다. 아들은 발버둥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내려놓으라고, 자기 혼자 갈 수 있다고. 팔에 더욱 힘을 주고 자리로 향했다. 무기력하게 포박당했던 아들은 자리에 도착하자마자 울음을 터뜨릴듯한 표정을 지었다. 부자(父子)를 바라보던 와이프는 "둘이 또 싸웠어?"라고 말했다.


"나갈래."

불쇼를 마지막으로 공연이 끝났다. 객석이 환해지며 포토타임이 시작됐다. 몇몇 배우들은 객석을 돌아다니며 관객들과 사진을 찍고 손뼉을 마주쳤다. 무대 위에 남아있는 배우들은 간단한 율동을 하면서 관객들을 향해 무대로 올라오라는 몸짓을 했다. 숙소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데 아들이 말했다. 무대에 나가고 싶다고. 주변을 둘러봤다. 무대로 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경로를 지나야 하는지 확인했다. 아직 무대 위로 오른 사람들이 별로 없어 조금만 더 있다가 아들을 데리고 같이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들이 의자에서 내려와 혼자 걸어가기 시작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대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들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쫓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들은 다른 사람들과 부딪힐 듯 말 듯 하며 나아갔다. 무대에 당도하자 잠깐 멈추더니 뛰어올랐다. 무대 위에 오른 아들은 배우들의 율동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무대 위에 한 줄로 선 관객들 가운데 아들의 키가 가장 작았다.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아들의 모습이 생소했다. 이게 무슨 감정이지. 당장 떠올랐던 단어는 '거리감'이다. 아들한테서 거리감이 느껴진다,라는 문장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지금의 감정이 설명하기에는 부족했다. 이어 내 품을 떠났다,라는 문장도 떠올랐지만 만족스럽지 못했다. 찝찝하기도 한 감정을 도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하지,라고 생각하며 아들을 말 없이 바라봤다.


"우리 아들 멋있네. 아빠보다 낫네."

자리로 돌아온 아들을 힘껏 안아 올리며 반겼다. 허공으로 몸이 떠올려진 아들도 돌고래 소리를 내며 신나 했다. 아들을 칭찬하면서 나도 모르게 "아빠보다 낫네"라는 말이 나왔다.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아들을 보는데 낮설었다. 키가 조금 더 큰 거 같기도 하고, 얼굴이 어른스러워 보이는 거 같기도 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귀여운데 늠름해 보였다. 숙소로 돌아온 아들은 무대 위에서 했던 동작을 보여주며 "괌 뮤지컬"이라고 말했다. 아들이 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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