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친구가 필요할까?

참나, 나참

by 돈태

"바깥으로부터의 어떤 것도 아닌, 내 안의 소리만을 좇아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는 '친구 그만 찾아라'로 와닿는 말이다. 타인과 관계를 맺는 시간을 줄이고 혼자 있는 시간을 늘리라는 해석쯤 되겠다. 어떤 성취감 또는 성공을 위해서라기보다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을 나답게 살기 위해서는 말이다. 나에 대해 깊이 알아갈 시간이 필요하고 공부할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친구를 만나면 시간을 허비하고, 혼자 있으면 시간을 채운다는 나름의 의미화도 해본다.


지난 삶에 대한 반성이 짙다. 툭하면 친구를 찾았었다. 술에 취하고 농담 따먹기를 하고 가끔은 일탈을 했다. 어느새 습관이 되고 있었다. 다음 날 후회를 한 적도 많지만 이내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느끼며 또 친구를 찾았다. 정상적인 일상까지 무너뜨리는 습관이 돼갔다. 제어를 하는 대신 스스로를 놓고 있었다. 스스로 발을 들여놓은 진창에서 빠져나오기를 포기한 사람마냥.


바닥을 쳤다고 생각했다. 일상을 바꾸고 나를 바꿔야 한다는 절박함에 달했다. 조용히 사표를 제출했다. 행정절차상 필요한 사람들에게만 퇴직 의사를 전했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동료들은 내게 속 시원한 답을 듣지 못했다. '다른 삶'이라는 말은 그들에게 '뜬구름 잡기'일 뿐이다. 나도 구체적인 답을 찾아 헤매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백수가 된 후 약속을 취소하고, 약속을 잡지 않고 있다. 퇴사 소식에 일부러 연락을 줘 안부를 묻는 고마운 사람들과 어쩔 수 없이 잡았던 약속을 의도적으로 취소하고 있다. 약속 날짜가 당도하면 알아서 취소되는 약속도 더러 있지만, 약속날짜가 가까워질 때쯤 이런저런 핑계와 변명으로 정중히 약속을 취소한다. 반가운 연락이 오면 "다음에 한잔 하자" 등과 같은 기약 없는 약속으로 얼버무린다. 사적인 술자리로 이어졌던 동호회도 나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습관처럼 만나서 술을 마시던 오랜 친구들과도 의도적으로 멀어지고 있다. 어느순간부터 친구들의 연락이 뜸해지고 있다.


늘어난 시간을 혼자 채우는 중이다. 출근이 없지만 출근할 때와 비슷한 시간에 일어난다. 출근할 때처럼 서둘러 집을 나와서 걷는다. 적당한 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걸으며 했던 생각을 노트에 정리한다. 배가 고파지면 근처에서 허기를 채운 후 또 걷는다. 다시 적당한 곳에 들어가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지금 그렇게 글을 쓰는 중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걸어서 집으로 온다. 여전히 내가 원하는 삶의 구체적인 답은 없다. 대신 내가 조금씩 변하는 걸 느낀다. 누군가와 놀 생각보다는 다음날도 오늘과 같이 걷고, 생각하고, 읽고, 쓰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하다. 출근이 그렇게도 싫었는데 요즘은 빨리 아침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든다.




"나 아닌 존재와 연결되어야만 내가 되는 영롱함"

김선우 시인의 <참나라니, 참나>라는 시에 나오는 문장이다. '진짜 나'를 찾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관계맺음이 필요하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변화가 필요하거나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며 나를 되짚어보기 위해 떠나는 여행만큼 허무한 것이 없다는 말로도 이해된다. 특별한 계기와 상황으로 피하지 말고 현재의 일상 안에서 사람들과 부딪혀야 찾을까 말까 한 것이 '진짜 나'라는 것이다. 같은 시에서 "비루를 덜기 위해 저잣거리를 떠났던 자이오나...속았으니 냉큼 돌아올 밖에."라고도 말했다. 나를 정확히 알고 내가 원하는 삶을 밀고나가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기보다 타인들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시인의 철학이다.


고민되는 지점이다.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중인데 시인의 철학대로라면 허무한 결과가 기다릴 수 있다. 시인의 철학을 내 잣대로만 거칠게 해석하는 것일 수 있다. 그래도 시를 읽은 후 찜찜함이 가시지 않는다. 내가 잘 하고 있나. 그래도 어느정도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적당히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는 절충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나를 깊이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이해하며 내가 원하는 삶을 밀고나갈 힘을 얻는데 고립이 중요할까, 관계맺임이 필요할까. '참나(참된 나)'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친구보다 먼저 자신을 사랑하라"

다시 니체의 말로 돌아가본다. 고립 아니면 관계맺음,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한쪽을 극한으로 몰고갈수도 없다. 그간 삐뚤어진 관계맺음에 취했으니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니체의 말에서 '먼저'에 방점을 찍어본다. 내 안의 목소리를 우선적으로 좇고 스스로를 채운 뒤 타인과의 관계맺음에 나서도 늦지 않다. 과거에는 내가 텅 빈 상태에서 관계맺음만 좇았다. 이슬을 맺는데 순서가 있는 거 같다. <참나라니, 참나>에 나오는 그 '이슬'이다.


"비루할지라도 당신.


당신들과의 접촉면에서 이슬이 맺히죠.


이슬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미안할 거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