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 무시해야

통념 흔들기

by 돈태

10년 넘게 기자 생활을 하면서 글쓰기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약점이 있다. 맞춤법(띄어쓰기 포함)이다. 평소 문자를 보낼 때도 잘 틀린다. '기자 맞냐'는 핀잔을 들으며 민망했다. 언론사 시험 때문에 한국어 성적은 괜찮다. 시험 실력은 좋았는데 글을 쓸 때 맞춤법은 틀린다. 토익 성적이랑 영어 회화랑 다른 세계인 것과 비슷하다.


맞춤법 공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을 받으며 살았다. 실천을 안 하니 강박이 되곤 했다. 토익 공부와 마찬가지로 맞춤법 공부를 하기 싫었다. 책은 좋은데 교과서는 싫은 느낌이랄까. 기자에게 맞춤법은 치명적일 수 있다. 맞춤법이 틀린 기사는 내용을 떠나 일단 신뢰가 떨어진다. 안 그래도 언론에 대한 신뢰가 바닥인데 맞춤법까지 틀린 기사는 설상가상이다. 과거에는 언론사에 교열부가 있어서 다행이지만 점점 사라지는 부서다. 기자들이 알아서 맞춤법을 신경 써야 한다. 내 약점이 점점 도드라질 수밖에 없는 근로 환경이다. 그래도 뚝심 있게 맞춤법을 멀리했다. 솔직히 귀찮았고, 맞춤법을 검사해 주는 프로그램에 의존하며 버텼다.


맞춤법 지적을 받을 때면 마음속이 삐뚤어졌다. 나름 반골기질이다. 꼭 이렇게 써야 해! 너무 어려운데! 내가 동의하지 않은 규정을 꼭 지켜야 해? 의미 전달을 오히려 방해하는 거 같은데? 냉소적인 변명일 수도 있고, 정신승리 과정일 수도 있다. 그만큼 스스로도 약점이라고 인정하기 때문에 맞춤법은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성가신 존재였다.


'다른 생각'도 가능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통해서다. 한국어 전문가의 견해에 위안을 얻고, 동경하는 작가로부터 자신감을 얻었다. 순전히 주관적으로 해석한 자위일 수 있지만, 맞춤법 약점이 꼭 잘못은 아니고 오히려 작가 소질을 반증하고 있다고.


"한글이 창제되고 난 후 400여 년 동안 띄어쓰기 없이 잘 읽었고 최근까지도 띄어쓰기가 안 된 문자 메시지도 잘 끊어서 읽었다."


한성우 국어학자의 칼럼으로 인해 띄어쓰기에 대한 강박이 어느 정도 해소됐다. 띄어쓰기는 읽기 편해서 사용한 것이지 애초부터 규정은 아니었다. 띄어쓰기를 해보니 읽기 수월했고, 점점 띄어쓰기가 보편화 됐다는 것이다. 칼럼에 따르면 1933년에 한글맞춤법통일안이 제정되면서 띄어쓰기 규정이 포함됐고, 1988년의 맞춤법 전면 개정 때에도 띄어쓰기 규정이 한층 더 세밀하게 정비됐다. 한성우 국어학자는 "결국 띄어쓰기는 당위가 아니라 필요에 의한 선택이다"고 말했다.


띄어쓰기가 규정으로 자리 잡으면서 맞춤법을 지키는 글쓰기는 더욱 까다로워졌다. 한성우 국어학자는 "알면 알수록 어렵게 느껴지는 띄어쓰기 규정이 정착되었다"고 말했다. 띄어쓰기의 엄격한 규정화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으로 볼 수 있다. 글쓰기의 본질이 맞춤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말로도 이해된다. 쓸모가 있어 만든 규정이니 지키려고 노력은 하되, 시험 치듯 얽매이면 본질을 해친다. 한성우 국어학자는 "규정보다 소통이 먼저다"라며 칼럼을 마무리했다.


"대학 나온 친구들도 문장 구조에 문제는 있다는 말로 문법에 약한 내 단점의 충격을 완화시켜 준 것 고맙습니다. 어떤 작가들이 이런 운명으로 괴로워하는 것은, 그들은 마음속에서는 반항적인데도 우리 세계의 많은 규칙처럼 문법 규칙 역시 무리 짓기와 확신을 요구하기 때문이죠. 타고난 작가라면 본능적으로 혐오하는 것들이에요."


내가 동경하는 작가의 글이다. 너무나 반가웠고 신기해서 문장을 만나자 입이 쫙 벌려졌다. 미국 현대문학의 가장 위대한 아웃사이더라는 평가를 받는 찰스 부코스키는 <글쓰기에 대하여>에서 문법에 대한 약점을 실토했다. 부코스키 역시 맞춤법에 약한 자신의 글쓰기에 꽤나 신경을 썼던 거 같다. 그런데 이런 약점에 대한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확장시켰다. 글뿐 아니라 삶 자체도 예술적인 작가는 자신의 약점이 작가로서의 본능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연결했다. 다만 나 같은 사람이 자신의 글을 읽고 수박 겉핥기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우려도 했던 거 같다. 그래서 이 글도 맞춤법 검사 프로그램을 열심히 돌렸다.


"그러나 문법 무시자가 되는 것과 무식자가 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느낍니다. 책을 읽지 않아 무식하고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 너무 성급히 작품 출간에 뛰어든 사람들은 제가 지금 과업으로 삼은 심오하고 기초적인 도약대에 다다르지 못한 자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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