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과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긴긴 연휴 동안 읽은 책소감2

by 오늘의 혼자

배수아의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을 읽고 있다. 책이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같은 책을 소장용 1권, (누군가에게 주게 될지 모르겠지만) 선물용 1권, 하여 총 2권을 추가 구매했다. 찌르는 듯 투명한 물과 영원의 돌이 잠들어 있고, 바람에서 뼈와 쇠의 냄새가 나는 나라 몽골에서 배수아가 느낀 것들은 내게 알 수 없는 슬픔을 가져다 주었다. 책장이 넘어가는 것이 아까워서였던 것 같기도 하고... 좀 더 깊은 내면의 동요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의 검은 눈동자를 마주친 기분. 어느 마법적 힘에 이끌려 원래의 궤도를 아예 상실해 버리는 느낌. 정도가 이 책에 대한 간략한 소회가 되겠다. 피리 부는 배수아를 따라 의식 없이 비행기를 타고, 버스를 타기를 몇 시간. 눈을 뜨자 나는 어느 작은 몽골 부족의 광대한 초원 위에 서 있었다. 배수아가 길을 잃으면 나도 길을 잃고, 배수아가 거센 바람을 맞으면 내 뺨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책을 읽고 있던 카페가 현실감을 상실하자, 나는 이 책을 아껴가며 천천히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개하고 싶은 문장이 많으니 이 책은 다음 글에서 더 자세히 다루고, 오늘 얘기해 볼 책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대여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혼자 들어가기 어려운 가게 같이 가기, 게임 머릿수 맞추기, 꽃놀이 명당 미리 잡기 등 사람 한 명분의 존재가 필요할 때 이용해 주십시오. 고쿠분지역에서부터 드는 교통비와 식음료 비용만(돈이 들 경우) 받겠습니다. 아주 간단한 응답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일본인으로, 심리 상담사 고코로야 진노스케의 '존재 급여'라는 개념을 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을 떠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존재 급여'는 말 그대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급여다. 사람 한 명이 거기 있는 것만으로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을까? 그 사람이 거기 있기 때문에 위로 혹은 재미를 얻을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저자는 자기 자신, 즉 사람 한 명의 존재를 일시적으로 빌려주면서 생기는 변화를 관찰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고도 한다.)


놀고 먹는 사람의 이야기인가 싶었지만, 흥미롭고 재미있는 생각들이 가득 담겨 있다. 모든 이에게 개성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그저 가만히 있고 싶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돈에 얽매이지 않는 관계가 어떻게 마음의 부담을 줄여 주는지, 같은 일을 AI와 사람이 했을 때의 느낌이 어떻게 다른지 등 생각해 볼 거리가 많았다.


인간의 존재 가치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방향은 무척이나 다르지만 <그렇게 가족이 된다>와 결을 함께하는 부분도 있었다. 태어난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들, 떠나보내는 사람들, 새로운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고, 그렇게 가족이 된 사람을 바라보는 사회적, 정치적 시선을 톺아보는 책이 <그렇게 가족이 된다>라면,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능력을 기대하고 강요하는 현대 사회에서 한 사람분의 존재가 지니는 의미를 찾아가는 책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 말도 못하게 독특한 개인주의자는 아주 기묘한 위로를 선사하는데, 그것은 노동 급여를 받는 사람으로써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을 보며 느끼는 질투심, 저런 일을 실제로 해낸 이에 대한 일말의 찬사, 마음 구석에 꿍쳐 놓은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모두의 욕망을 바깥으로 드러내고, 그렇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음을 확인시켜 준 저자에 대한 감사가 마구 뒤섞인 희한한 형태의 위로였다.


이렇게 한 사람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 낼 수 있다면, 한 생명의 존재 가치 또한 증명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애초에 증명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지만 그렇게 잘 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야기가 옆으로 새지만, 나는 최근 들어서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와 교감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 왔다. 이것은 어느 날 갑자기 내 뇌가 영화 <컨택트>를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며 일어난 일이다. 나는 이 영화에서 그린 외계인과의 조우를 무척이나 인상깊게 여기고 있었는데, 이것이 'TV 동물농장'을 보며 느닷없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 읽은 <나의 비거니즘 만화>는 비인간 동물과 교감하고, 그들을 지키고 싶다는 나의 마음을 확고하게 만들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듣게 된 고양이와의 짧은 만남을 그리워하는 이야기는 내 마음을 후벼파기까지 했다. (화자는 동물을 무척 무서워하지만, 왠지 고양이를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고 한다.)


배수아의 에세이로 다시 돌아가자면 배수아는 채식주의자로, 늑대를 사냥하고 잡아먹으며 가죽을 깨끗이 씻어 말려 사용하는 부족에게 적응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고 고백한다. 부족인들에게 묻자, 늑대는 산양을 보이는 대로 모두 물어 죽이기 때문에 늑대의 개체수를 조절하는 것은 이곳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며 자신들이 먹고 살아가는 데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했단다. 그녀는 모든 죽음은 슬프지만, 자신이 진정 반대하는 것은 동물을 가혹한 방식으로 억압하고 살찌우고, 필요 이상의 동물 개체를 게걸스럽게 소비하는 지금의 세태임을 깨닫는다.


운이 좋게 먹이 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인간으로, 대한민국의 화목하고 평범한 가정의 둘째 딸로 태어난 나는 그동안 너무 많은 혜택을 누렸던 탓인지 다른 존재들이 있다는 것을 완전히 잊어버렸던 것 같다. 또한 세상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느라 주위를 돌아볼 여유를 잃어버렸던 것 같다. 세상에는 모두가 반대하는 머리 검은 짐승을 거두는 사람들이 있고, 인간의 존재 가치를 극한으로 밀어 붙이는 실험을 진행하는 사람이 있다. 인간에 의해 희생당하는 (인간을 포함한) 다른 동물들이 있으며, 그 모든 생명을 조건 없이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자,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많은 것들이 짓밟히는 잔혹한 세상에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나만의 신념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지킬 자신이 없었다. 그저 떠미는 대로 살고 싶지 않아.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걸. 할 수 있다와 할 수 없다 사이를 오가는 동안 나는 조금 오그라들고 말았다. 희망을 가지고 이 두서없는 글을 읽어 준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거대한 결심 따위는 결국 하지 못했다. 다만 나는 계속 읽겠다고 다짐했다. 배수아가 그런 것처럼 책이나 읽다가 죽어야지. 그러다 보면 내게도 세상에도 차도가 있으리라고 괜시리 휑한 마음을 다잡았다. 오늘의 나는 무척 나약하게 보였다. 이렇게 작아지기 위해서, 그럼으로써 작은 소리까지 듣기 위해서 책을 읽는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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