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정 Jul 27. 2023

[치유의 책방]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금단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사랑이란 파도와 맞닥뜨리게 마련이다. 열정을 동반한 사랑은 파도가 아니라 쓰나미일지도 모른다. 그것과 조우하는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열정의 대상은 무대 위 아이돌일 수도, 우연히 하룻밤을 함께한 상대일 수도 있다. 그러기에는 당신이 너무나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자신하지 말지어다. 다른 이들의 욕망을 비웃는 자, 바로 그 욕망의 희생양이 될 터이니. 어떤 사람들은 중년이 다 된 나이에 처음으로 그런 열정에 휩싸인다. 꾸역꾸역 억누른 욕망이 성실한 가장, 사회인, 부모로서의 페르소나를 뚫고 분출한다. 애써 부정해도 소용없다. 이성과 감정은 늘 따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때로 그 쓰나미는 당신이 소중히 일군 사회적 지위, 안온한 가정을 휩쓸어 가버린다. 무엇보다도 지금껏 애써 부여잡고 살아온 당신이라는 정체성을 뒤흔든다.      

여기 사회적으로 성공한 소설가이자 교수인 저자가 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중산층으로 편입했다.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남편과는 헤어졌다. 40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많은 경험을 쌓고 풍파 역시 겪었다. 그만큼 성숙하고 또 노련해졌다. 그런 그녀가 열정적 사랑에 빠졌다. 상대는 열 살 가까이 나이 어린 외국인일 뿐 아니라 유부남이기도 하다. 자유로운 프랑스 사회라 해도 사회적으로 용인될만한 관계랄 수는 없다. 그러나 ‘단순한 열정’ 앞에 그녀의 교양과 지성, 이성은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찾아온 열정을 무시하거나 억누르려 한다. 그러나 사랑과 재채기는 감출 수 없다는 옛말도 있지 않나.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들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정을 감추기란 힘들다. 그 열정은 광기와 집착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허우적댈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수렁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 같다. 금지된 사랑일수록 더 달콤하지만, 그 뒷맛은 쓰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양가감정에 시달린다. 그 상황에 머무르고 싶은 동시에 달아나고 싶다.     

 

저자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부정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감정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그녀가 느끼는 수치심과 자괴감, 당혹스러움과 고통은 몇 배의 배율로 확대된다. 사랑에 수반한 집착, 고통(프랑스어 ‘passion’은 열정을 뜻하지만, 예수가 십자가에서 겪은 ‘고통’을 뜻하기도 한다)을 생생하고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작가의 화법에 어떤 독자들은 ‘공감성 수치’를 느낄 법하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저자는 포르노에 대해 묘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장면에 익숙하겠지만 포르노 영화를 처음 보는 나로서는 무척 당혹스러웠다. 옛날 같으면 죽을 때까지 볼 수 없던 성기의 결합 장면이나 남자의 정액을, 수세기가 흐르고 여러 세대가 지난 요즈음은 거리에서 악수를 나누는 장면만큼이나 쉽게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10쪽)  


인간이 느끼는 감정에는 행복, 즐거움, 자신감처럼 긍정적 감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치심, 집착, 열등감처럼 감추고 싶은 감정도 존재한다. 열정 역시 근세 이전에는 이성이 아닌 육체와 연관된 열등한 감정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에는 서열도 위계도 없다. 애니 아르노의 소설은 열정에 대한 포르노그래피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이 지나간 사랑의 기억을 흑역사로 치부한다. 혹은 다른 이들은 결코 경험하지 못할 격정으로 미화하기도 한다. 저자는 그녀가 겪은 열정을 담담하게 응시하고 기록한다. 그 기록은 저자의 주장처럼 ‘표현된 사실들의 가치를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는 객관적인’ 문체를 통해 개인의 경험을 ‘역사적 사실이나 문헌과 동일한 가치’로 남기려 한다.      

저자와 연인 사이에는 별다른 공통점이 없다. 그는 프랑스어의 구사에 한계가 있는 이방인이다. 미남이지만 다소 저속하고 평범한 취향을 지니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서로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환상일 뿐임을’ 깨닫는다. 그들을 묶어주는 것은 오직 성애(性愛)이다. 그래서 저자는 ‘그 사람이 나를 욕망하느냐 욕망하지 않느냐 하는 것’만을 확신한다. ‘그것은 그 사람의 성기를 보면 당장에 알 수 있는, 유일하고도 명백한 진실’이다. 육체적 흥분은 말이나 표정과는 달리 감출 수 없고 즉물적이다.      


저자는 음식 부스러기나 담배꽁초, 침대 시트 등 그가 남긴 흔적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하나하나 어떤 몸짓이나 순간의 의미를 지닌 그 물건들을, 그것이 이루는 생생한 무질서를’ 보존하기 위해서다. 첫사랑의 열병을 앓는 소녀가 느끼는 열정이 아니라 40대의 끝자락에 들어선 여성의 그것이다. 이미 많은 남자와 크고 작은 사랑을 경험했으나 그녀의 열정은 여전히 처음 사랑할 때처럼 정직하다. 따지고 보면 시인들이 주장하듯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 아닌가. 수없이 실패하면서도 여전히 조심스럽고 가슴 뛰고 설렌다.      


열정이란 회오리가 지나간 뒤, 연인들은 우정과 헌신을 동반한 관계에 정착하기도 한다. 어떤 사랑은 열정의 연소와 함께 사라진다. 그들의 사랑은 오로지 단순한 열정만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맹목적 사랑은 목적이 없기에 사라진다. 저자는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연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기 머무르기 위해 ‘완벽한 한가로움’을 원한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저자의 고백처럼 ‘단순한 열정’에 푹 빠지는 일이야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독자는 책장을 덮으며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허구와 사실을 일정한 플롯 안에서 엮은 소설과는 달리 오직 저자의 경험만이 파편적으로 흩어져있다. 소설의 형식은 단순한 양식이 아니라 작가의 철학을 반영한 형태다. 애니 아르노의 소설 속에서 나직하고 하찮은 개인의 이야기는 비로소 의미를 지니기 시작한다. 거대 담론이 사라진 90년대 한국에서 여성 작가들의 소설이 주목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애니 아르노는 자신의 소설이 ‘개인성의 함정’에 매몰되지 않기를 바란다. 개인적 경험은 애니 아르노의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통해 보편성을 획득한다. 애니 아르노는 사회학적 방법론을 통해 자전적인 ‘나’를 넓힐 방법을 추구하고 ‘나’의 주관성을 더 일반적이고 집단적인 메커니즘에 통합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단순한 열정’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독자들의 열광과 달리 평단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애니 아르노가 지금껏 써왔던 소설은 개인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사회에 대한 큰 틀을 조망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 ‘단순한 열정’은 오직 인간이 지닌 원초적 감정만을 세세하게 묘사한다. 애니 아르노는 모든 헛것을 벗어버린 남녀의 열정이 지닌 본질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위대한 사랑의 원형 역시 원초적이고 육체적인 열정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와 체제를 움직이는 원동력 중 하나는 생존에 대한 갈망, 곧 성애에 대한 단순한 열정 때문이 아닌가.     

 

아니 에르노는 1940년 9월 1일 프랑스의 서민 집안에서 태어났다. 고등 교육을 받으며 중산층 친구들과 자신의 문화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출신 성분에 수치심을 느낀다. 루앙 대학교를 졸업하고 문학 교수 자격을 획득했다.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이론을 접하며 개인이 지닌 계급성이 취향, 언어, 생활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뒤로 그녀는 작품을 통해 개인과 계급, 사회, 문화의 관계를 예리하고 냉정하게 관찰한다.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선언으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규정했다. 2003년 자신의 이름을 딴 아니 에르노 문학상이 탄생했다. 2022년 프랑스 여성작가로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최정수 옮김, 2001)     



  금단의 사랑에 빠진 당신을 위한 처방:  자신의 의지대로 사랑할 대상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언제나 좋을까. 그러나 사랑은 예상치 못한 교통사고 같은 것이다. 당신은 결혼이란 제도에 묶여있는 그이와 사랑에 빠졌다. 혹은  유부녀인 당신이 새로운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다. 금단의 열매는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달콤하다. 그러나 세상은 윤리와 도덕이란 잣대로 당신을 단죄할 것이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은 대상 그 자체인가? 아니면 사랑에 빠진 당신의 감정인가. 이런 고민이 없다면 당신은 금단의 열매를 먹을 자격이 없다. 저자의 사랑은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거기에 따르는 열정과 고통,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견딜 수 있는 자만이 그 사랑에 머무를 수 있다. 아니 에르노는 힘든 연애를 거치고 노벨상을 받았다. 당신에게 남는 것은 한 줌의 추억과 영원한 후회일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치유의 책방] 이아타의 <베이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