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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Apr 12. 2024

맡겨진 소녀-클레어 키건

지나간 유년기에 대한 애도

우리 모두 어린 시절, 누군가에게 맡겨진 기억이 있다. 부모 대신 우리를 돌봐주는 이들은 할머니나 할아버지, 친척, 혹은 이웃이었다.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부풀기도 했다. 소설 ‘맡겨진 소녀’의 주인공 소녀가 그랬듯이. 때로 부모와 떨어져 있는 시간은 기약 없이 늘어났다. 우주에 홀로 남겨진 듯 외롭고 불안했다. 아이들은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이다. 세상은 늘 그렇듯 약자에게 친절하지만은 않다. 게다가 어른들은 유년기의 기억을 잊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낀 고독과 혼란스러움이 얼마나 생경했는지를. 부모에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근원적 공포가 마음에 스며든다. 부모는 그들 세상의 전부가 아닌가. 소설에서 소녀는 먼 외가 친척에게 맡겨졌다. 그해 여름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아름답고도 애달픈 삽화를 남겼다. 이 소설은 지나간 유년기에 대한 애도이자 어린 시절에 바치는 송가이다.   

              

소설 '맡겨진 소녀' 표지와 저자 클레어 키건

                                 

소설은 소녀의 일인칭 시점으로 서술된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단어는 소설 어느 구석에도 없다. 저자는 아이들이 쓸 법한 단순하고 감각적인 어휘로 서정적이고 정교한 문장을 조각한다. 소녀가 세상을 묘사하는 도구는 그녀만의 언어다. 소녀는 ‘가지가 땅에 끌리는 나무’를 보고 ‘나무가 아픈가 봐요’라고 말한다. 아빠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수양버들’이라 그렇다는 빤한 말이다.     


  ‘나는 정말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지만 여기는 새로운 곳이라서 새로운 말이 필요하다.’                                                             -본문 25쪽    

 

소녀에게는 아직 풍부하고 복잡한 언어 세계가 없다.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해 이미 알고 있는 사물과 상황을 끌어들여야 한다. 이런 비유를 통해 소녀의 언어는 시어(詩語)가 된다. 수증기가 가득한 욕실은 ‘전부 다 보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다. 기체로 변한 조밀한 물 입자가 불완전하게 사물을 투영하는 모습을 소녀는 그렇게 표현한다. 소녀가 느끼는 감정 역시 아직 이름을 얻지 못했다. 언어라는 그물망을 벗어난 감정은 더 생생하고 선명하다. 개념에 포섭되지 않은 무언가는 날것 그대로의 힘으로 영혼을 후벼 판다. 처음 느낀 슬픔, 수치심, 설움은 늘 유년기의 기억과 붙어있기 마련이다. 소녀가 처음 느낀 따스함 역시 영혼에 깊이 각인된다. ‘아주머니의 손은 엄마 손 같은데 거기엔 또 다른 것, 내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는 것’이 있다. 소녀가 경험하지 못한 세심한 손길과 사랑이다.      


소녀는 부모에게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은 일이 없다. 아버지는 인사도 남기지 않고 그녀를 떠나버린다. 소녀가 가져온 짐을 내려주는 일조차 잊은 무심하고 무신경한 보호자다. 소녀는 아버지를 직접 원망하지 않는다. 우물에서 막 퍼 올린 청량한 물에서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 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 맛’을 느낄 뿐이다. 어머니 역시 소녀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반복되는 출산과 양육, 집안일로 바쁘기 때문이다. 다시 출산을 앞둔 부모에게 소녀는 어디든 맡겨야 할 군식구와 다름없다. 꾀죄죄한 차림새와 불량한 위생 상태로 소녀의 집안 형편과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어머니에게 소녀를 학대할 의도는 없다. 많은 자식 중 한 명에게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기에는 삶이 너무 고달프고 신산할 뿐이다.      

영화 '말없는 소녀 스틸컷

                                                   

소녀는 처음으로 융숭 깊은 마음 씀씀이와 살뜰한 보살핌을 느낀다. 응당 부모에게서 받아야 했을 관심이다. 아주머니는 소녀의 몸을 구석구석 씻어주고 소녀의 귀를 청소해 준다. 머리를 빗겨주고 느슨하게 땋아준다. 사랑이란 구체적이고 세심한 방식을 갖출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들 부부는 인내심과 참을성을 지니고 소녀를 돌본다. 집안일과 예의범절을 가르친다. 책을 함께 읽으며 새로운 단어를 익히도록 돕는다. 소녀는 글 읽기가 자전거 배우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출발하는 것이 느껴지고 전에는 갈 수 없었던 곳들까지 자유롭게 가게 되었다가, 나중엔 정말 쉬워진 것’ 같다. 사고가 확장되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순간이다.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그들과 동등한 인격체로 소녀를 대한다. 집에 온 첫날, 소녀는 잠자리에 그만 실수를 한다. 아주머니는 습기가 찼을 뿐이라고 우기며, 매트리스를 세탁한다. 소녀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하지 않으려는 세심한 배려다. 소녀는 ‘부끄러운 일도 비밀도 없는 이곳’이 당분간 내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지금껏 방치되어 있던 소녀는 온순하지만 예민하다. 자신을 억제하는 버릇이 있고 말수가 적으며 조심스럽다. ‘엄마한테 항상 시간이 있는 건 아니라서요’라는 말로 그녀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 엄마를 두둔하는 속 깊은 아이다. 처음 느끼는 사랑과 안정, 여유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소녀는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이 편안함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늘 불안해하며 살던 사람이 현재를 충만하게 향유하기란 버겁기 마련이다.  

    

영화 '말없는 소녀' 스틸컷

                                      

소녀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지닌 비밀을 알게 된다. 처음으로 소녀는 걱정과 연민을 가장한 악의(惡意)와 마주한다. 독자들은 그들 부부에게 닥친 비극을 보며 삶의 잔인함에 비탄한다. 이제 모든 퍼즐이 맞춰진다. 소녀가 입고 지낸 펑퍼짐한 옷, 벽지에 있는 무늬가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는다. 소녀는 그날 자신에게 닥친 혼란스러운 일을 ‘이상하다고’ 느낀다. ‘이상하다’라는 말 외에는 그 무례하고 몰상식한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 소녀는 아저씨와 함께 바닷가를 걷는다. 그날 잠시 자신을 ‘맡았던’ 아주머니를 떠올린다. ‘그 여자가 어떻게 걷고 어떻게 말했는지를 생각하다가 사람들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얼마나 훌륭한 양육자인지 깨닫는다. 소녀는 때로 침묵을 지키는 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운다. 섣부른 호기심과 참견이 가져온 파장의 무게를 알게 된다.      


처음 바다 너머로 보이던 불빛 두 개는 어느샌가 세 개로 늘어났다. 그들 세 사람이 새로운 가족을 이뤘음을 상징한다. 지나온 모래사장을 돌아보자 아저씨의 발자국은 보이지 않는다. ‘네가 날 업고 왔나’ 보라며 아저씨가 농담을 던진다. 그 농담에는 깊은 진실이 숨어 있다.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오솔길을 지날 때마다 소녀는 자신이 아주머니의 균형을 잡아준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들 부부를 보살펴준 사람은 소녀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 의지하고 위로하며 여름을 보냈다.      

마침내 이별의 시간이 찾아온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그러나 소녀에게는 애정과 이해, 품위가 존재하는 이곳이 진정한 ‘집’으로 느껴진다. 갑자기 소녀에게 생긴 작은 사고 때문에 이별은 늦춰진다. 그 사고가 그들 부부에게 있는 깊은 트라우마를 건드린다. 그러나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예전에도 그랬듯, 인내와 용기를 지니고 이별을 받아들인다. 여름을 보내며 소녀는 키가 훌쩍 자랐다. 더 자란 것은 소녀의 마음이다. 엄마는 금세 소녀의 변화를 눈치챈다. 그러나 소녀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절대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 만큼 충분히 배웠고, 충분히 자랐다. 입을 다물기 딱 좋은 기회다.’                                       -본문 96쪽.     


아버지와 아저씨, 두 사람 중 누군가를 향했을지 모를 소녀의 말로 소설은 끝난다. ‘아빠.’     

영화 '말없는 소녀' 스틸컷

 책장을 덮으며 독자는 소설이 남긴 여운에 한동안 마음이 먹먹하다. 인생이 지닌 아이러니에 한숨을 내쉴지도 모른다.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선량하고 현명하며 넉넉한 인품과 경제력을 지녔다. ‘네가 내 딸이라면 절대 모르는 사람 집에 맡기지 않을 텐데.’ 소녀가 잠든 줄 알고 아주머니가 내뱉은 말이다. 흔히 자식을 ‘몸 밖에 내놓은 심장’이라고들 한다. 그토록 마음 졸이는 대상을 모르는 사람이나 다름없는 먼 친척에게 맡긴 소녀의 부모를 향한 비난이다. 그들 부부가 지닌 양육자로서의 미덕은 별 고민 없이 ‘원하지 않는 아이’를 낳고 방치하는 소녀의 부모와 대비된다. 그래서 더 안타깝고 애틋하다.      


소녀는 소설에서 ‘이상하다’라는 말을 반복한다. 세상에는 이상한 일투성이다. 자격이 없는 이에게 소중한 무엇이 주어질 때, 누군가는 묵묵히 상실을 견딘다. 소설의 배경인 여름 하늘만큼이나 맑고 정갈한 문장은 조금의 군더더기도 허용하지 않는다. 저자 클레어 키건은 이 소설을 ‘긴 단편 소설’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소설은 분량상으로는 중편 소설에 속한다) 간결한 문체와 치밀한 구성, 날카롭고 번득이는 은유로 가득한 이 소설은 긴 호흡을 갖춘 한 편의 시와도 같다. 어린 시절의 결핍으로 구멍 난 가슴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권한다.      


저자 클레어 키건은 1968년 아일랜드 위클로에서 태어났다. 미국 로욜라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정치학을 공부했다. 웨일스대학교에서 문예창작 석사 학위를 받고 강단에 섰다. 24년간 활동하면서 단 4권의 책만을 냈다. ‘가디언’ 지는 키건의 작품을 ‘탄광 속의 다이아몬드처럼 희귀하고 진귀하다.’라고 평했다. 1999년 첫 단편집 ‘남극’을, 2007년 두 번째 작품 ‘푸른 들판을 걷다’를 출간했다. 2009년 발표한 ‘맡겨진 소녀’로 같은 해 데이비 번스 문학상을 받았다. 이 책은 ‘타임스’에서 뽑은 ‘21세기 최고의 소설 50권’에 선정되었다. 최근작 ‘이처럼 사소한 것들’로 오웰상을 수상했으며 2022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맡겨진 소녀’는 2023년 ‘말 없는 소녀’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됐다.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역시 킬리언 머피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었다. (허진 옮김, 다산책방, 2023, 원제: f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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