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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Oct 22. 2023

냄새 1-호흡의 형제

냄새는 힘이 세다. 바람결에 묻어온 아카시아 향기가 시공을 뛰어넘어 우리를 고향집 어귀 과수원으로 데려간다. 스쳐지나간 누군가가 남긴 향수 냄새가 첫사랑의 기억을 강렬하게 환기한다. 때로 우리는 냄새를 통해 위험을 감지한다. 우리의 일상이 미지의 대상으로 가득했던 시절로부터 물려받은 본능 덕분에 우리는 폭발과 화재, 독극물로부터 몸을 지킨다. 우리는 다른 감각들과 더불어 후각을 통해 세계를 해석하고 향유한다. 태풍이 지나간 뒤, 흙내 섞인 빗물 냄새와 아침나절 갓 내린 커피 냄새, 사랑하는 사람의 체취를 통해 세계는 풍요롭고 충만해진다. 냄새를 맡을 수 없다면 깊은 숲의 향취를 뿜어내는 송이버섯 역시 흐물거리는 식감으로만 기억될 것이다. 코감기를 호되게 앓았던 사람은 고개를 끄덕일텐데 음식 맛의 대부분은 냄새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냄새가 지닌 가장 놀라운 힘 중 하나는 우리가 결코 냄새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위대한 것, 끔찍한 것, 아름다운 것 앞에서도 눈을 감을 수는 있다. 달콤한 멜로디나 유혹의 말에도 귀를 막을 수는 있다.  그러나 결코 냄새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다. 냄새는 호흡과 한 형제이기 때문이다. 살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냄새가 자신의 형제와 함께 그들 사이에 나타날 때 그것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법이다.

                       ㅡ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


쥐스킨트는 그의 소설 《향수》에서 냄새를 맡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처럼 후각이란 가장 통제하기 힘든 감각이다. 냄새는 호흡과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횡격막을 움직이는한 우리는 냄새를 맡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냄새는 이처럼 통제하기 어렵다. 2차 대전 당시 패배가 분명해지자 나치는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났던 학살의 흔적을 없애려 애썼다. 화장장을 폭파하고 희생자들의 시체를 감추었다. 그렇지만 수용소에 깊이 밴 시취와 오물의 악취는 사라지지 않고 남아서 어떤 웅변보다도 준엄하게 나치의 잔학상을 알렸다.

냄새는 예측하지 못한 순간 나타났다가 사라지며 우리의 감각을 희롱한다. 나폴레옹의 부인 조세핀이 연회장에 들어서면 제비꽃 향수 냄새가 그녀를 뒤따랐다. 향기는 일순간 사라졌다가 더욱 농도 짙게 되살아났다. 제비꽃에 들어있는 화학성분이 일순간 후각세포를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옛 선비들이 사랑했던 매화 향 역시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서정주가 시 「매화」에서 “알큰한 그 숨결로 남은 눈을 녹이며”라고 표현한 것처럼 매화 향기는 은근하지만 강한 힘을 지녔다. 달빛 어스름한 저녁 멀리서 청아하게 풍겨오는 매화의 향기를 일컬어 ‘암향(暗香)’이라고 한다. 밤이 깊어서 사위가 적막할 때라야만 비로소 제대로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갸냘픈 향기다. 그러나 매화향기는 잊을만하면 다시금 바람결에 풍겨오며 숨바꼭질하듯 선비의 사랑방을 방문했다.

몇 해 전, 해남에 있는 보해매실농원에서 맡았던 매화 향을 잊을 수 없다. 매화 향은 내가 아는 어떤 꽃 냄새보다도 매혹적이었다. 그러나 조금 떨어진 곳에서도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아카시아나 라일락과는 달리 매화는 아주 가까이 다가가야만 향기를 허락하는 듯 했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향기를 주위에 흩뜨렸는데 향에 취한 동박새들이 가지마다 꽃과 함께 피어났다.


수줍게 모습을 드러냈다가 자취를 감추는 향기는 때로는 요부의 향수처럼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의 형태로, 때로는 유림을 위무하는 풍류의 형태로 나타났다. 냄새는 이렇게 우리의 감각을 배신하며 숨었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한다.냄새는 또한 강렬한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우리를 정염에 휩싸이게 한다. 냄새의 이와 같은 반(反)이성적 속성이 이성을 통한 세계의 지배를 확신했던 근대서구사회에 가져왔던 위협은 짐작할 수 있다. 오랜 시간 동안 냄새가 폄하되고 억압당해왔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향수』에서 쥐스킨트는 냄새의 천재 그르누이가 역사에서 잊혀진 이유를 그가 다른 인물들에 뒤떨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의 천재성과 명예욕이 발휘된 분야가 역사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냄새라는 덧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냄새는 또한 강렬한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우리를 정염에 휩싸이게 한다. 냄새의 이와 같은 반(反)이성적 속성이 이성을 통한 세계의 지배를 확신했던 근대서구사회에 가져왔던 위협은 짐작할 수 있다. 오랜 시간 동안 냄새가 폄하되고 억압당해왔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향수』에서 쥐스킨트는 냄새의 천재 그르누이가 역사에서 잊혀진 이유를 그가 다른 인물들에 뒤떨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의 천재성과 명예욕이 발휘된 분야가 역사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냄새라는 덧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르누이는 보이지 않는 냄새의 힘을 간파하고 이용한다. “냄새를 지배하는 자, 바로 그가 인간의 마음도 지배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간의 폄훼에도 불구하고 냄새는 그 힘을 잃지 않았다. 유럽인들에게 신세계로 가는 길을 찾아내게 한 원동력은 동방의 향신료가 내뿜는 자극적 향기였고, 산업발전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예고했던 지표는 공장 뒤편에서 풍기는 악취였다. 냄새는 경계를 뛰어넘고, 봉인을 뚫고, 틈새를 빠져나가 눈에 보이는 세상 이면에 있는 진실에 눈뜨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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