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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Oct 22. 2023

냄새 2- 한없이 빈곤해지는 언어

우리는 냄새가 주는 느낌을 통해 어떤 냄새를 설명하려 한다. 상큼하고, 역겹고, 톡 쏘는 듯하고, 농염하고,  이국적이고, 편안하고, 고급스럽다는 말로 냄새를 표현한다. 냄새가 주는 느낌은 냄새와 관련된 개인의 기억과 합쳐져 주관적이고 특수한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다른 이들에게는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냄새 역시 누군가를 몸서리치게 할 수 있다.


찰스 디킨스에게 풀 냄새는 어린 시절, 공장에서 병에 라벨을 붙이며 노동할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고통스러운 냄새였다. 국도를 달릴 때 차창을 통해 스며드는 거름냄새에 어떤 사람은 거부감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편안한 고향의 정취를 느낀다. 축사에서 풍기는 고약한 냄새 역시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더 견디기 쉬운 냄새가 된다.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은 쿰쿰한 냄새에 취해 개나 고양이의 발바닥에 코를 들이밀고는 계면쩍어한다.



나는 나프탈렌 냄새를 좋아한다. 할머니네 서랍장을 열면 안쪽 깊숙이 분홍 플라스틱 망 속에 든 나프탈렌이 숨어있었다. 박하사탕 같고 바둑알 같던 순백색 구슬은 위생과 청결을 상징했다. 할머니가 치맛자락을 들썩일 때마다 늘 알싸한 나프탈렌 냄새가 났다. 개인적 경험뿐 아니라 사회집단 간의 문화적 차이가 냄새에 대해 서로 다른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서양 사람들은 소나무의 냄새를 공허하고 황량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에게 소나무냄새는 송편과 추석,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따뜻하고 기분 좋은 냄새이며, 송림과 휴식에 연관된 상쾌하고 편안한 냄새다.


이처럼 우리는 다른 사물과의 유사성을 통해, 또는 냄새에서 받은 느낌을 통해 냄새를 설명하려 한다. 언어를 통해 냄새를 직접적으로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생리학자들은 우리가 냄새를 말로 설명하려 들 때 느끼는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냄새를 관장하는 뇌의 일부인 후각뇌는 언어중추가 포함된 좌측 뇌와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다. 이런 뇌신경학적 구조 때문에 우리가 언어로 냄새를 설명하는 일이 힘들다는 것이다. 그 대신 후각뇌는 뇌의 감정적인 영역을 주관하는 번연계에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냄새는 즉각적으로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바꾸어 말해 후각과 관련된 정보는 언어를 매개로 하는 지적 판단과 그에 의한 의식적 통제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 냄새는 설명하기 힘든 감정 변화, 충동적 행동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학자들의 건조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냄새를 설명하는 일의 어려움은 냄새가 지닌 신비 때문으로 느껴진다. 언어에 의해 해석되거나 분석되지 않기 때문에 냄새는 그 원초적인 생생함을 잃지 않는다.

우리는 언어와 언어에 의한 개념화를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 우리가 보고 듣고 냄새 맡는 세상은 무한하지만 우리가 언어로 인식하는 세상은 제한적이다.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새털구름이 흩어져 있고,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고, 까마득하거나 눈앞에 다가와 있는 듯하고, 비행기가 지나간 뒤 실선 같은 흰 궤적으로 동강 나고, 동 틀 무렵 희끄무레한 기운으로 별빛을 지워나가며, 때로 검푸르고, 때로 화창하게 푸르른 수백, 수천 개의 날마다 서로 다른 너른 공간’은 하늘이라는 말로 한없이 빈곤하게 축소된다.


훔볼트(Humbolt)는 인간이 언어를 창조하는 행위를 통하여 그 자신을 언어 속에 가둔다고 했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만 세계를 인식한다. 그러나 언어를 통해 객관적 세계를 직접 인식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우리의 언어는 세계를 해석하는 데에 있어 한계가 많은 하나의 틀일 뿐이다. 언어라는 그물망을 통과하지 못하는 사물과 체험은 의미를 잃고 사라져 버린다. 『향수』에서 그르누이는 이러한 언어의 한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불이 타서 나오는 것은 전부 〈연기〉라는 말로 불리고 있었지만 그것은 수백 가지의 냄새가 섞여 타오르면서 매분, 매초 새롭게 혼합되어 하나의 냄새를 구성하고 있었다. ……대지, 자연, 공기도 마찬가지였다. 한걸음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혹은 숨을 한번 들이쉴 때마다 그것들은 다른 냄새로 채워졌고 다른 냄새로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대지, 자연, 공기라는 두리뭉실한 말로 표현하고 있었다. 냄새로 인지할 수 있는 세계의 풍부함과 언어의 빈곤함으로 인한 그 모든 이상한 불균형들로 인해서 그르누이 소년은 말의 의미를 포기하게 되었다.


냄새는 언어의 날카로운 칼날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나간다. 냄새는 설명하고 재단하고 분류하려 드는 이 세상에서 삶의 불가해함과 세계의 신비를 말해주는 은유와도 같다.

 지금까지 언급했듯이 냄새를 언어로 표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은 냄새가 주는 독특한 느낌을 언어로 표현하려 애써왔다. 작가들은 냄새가 불러일으키는 정서의 환기에 대해 날카롭게 주목했다. 이때 작가들이 냄새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는 과학적, 분석적 틀로서의 언어가 아니라 상상력과 창조성의 언어다. 쥐스킨트는 『향수』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그곳에는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낮에 이어 밤에도 모든 냄새들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마치 장사꾼들이 아직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고 있고 야채나 계란이 가득 담긴 바구니들과 포도주와 식초가 들어 있는 통들, 양념 재료나 감자, 혹은 밀가루가 가득 든 자루들, 못과 나사가 담긴 상자들, 정육점의 고기 자르는 도마, 옷감이나 구두, 구두창, 혹은 낮에 팔던 수백 가지 다른 물건들로 가득 찬 판매대……그 모든 활동들이 아주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공기 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르누이는 그 냄새들을 통해 시장을 전부 다 본 것이나 다름없었다. 냄새를 통해 보는 일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더욱이 그는 다른 사람들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세세한 것들까지 냄새로 알 수가 있었다. 모든 일이 다 끝난 후에 냄새로 인식하는 것은 보다 고차원적인 인식이었다.

                      -《향수》, 파트리크 쥐스킨트


눈을 감아도 잊고 싶은 잔상이 망막에 남아 밤새 뒤척일 때가 있다. 소설을 통해 급기야 물성物性을 획득한 냄새는 홀로그래피처럼 세계를 재구성하기 이른다. 북적거리는 상인들의 실루엣이, 시금털털하고 비릿하고 군내 나는 그들의 윤곽이 유령처럼 시장을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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