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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대한개츠비 Feb 19. 2018

[마음]_나쓰메 소세키

나쓰메 소세키와 나의 첫 만남

  소설의 3요소를 인물, 사건, 배경이라고 한다. 그중 인물의 비중이 가장 높기에 제일 앞에 배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해본다. 물론 아무 이유 없을 가능성이 훨씬 크지만 말이다. 
  등장인물이 많은 소설도 있고 적은 소설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등장인물이 적은 소설을 선호하는 편이다.  인물들 각각의 모습을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속 대표적 해결사인 미스마플과 관련된 작품에서 이런 부분을 본 기억이 있다. "나는 태어나서 이 마을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데, 바로 그 점 때문에 미궁의 사건들을 잘 해결할 수 있었지. 인간에 대해 더 가까이 관찰할 수 있었거든"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도 아주 적은 수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선생님, 나, K(선생님의 친구), 사모님(선생님의 부인), 나의 가족(형, 부모님). 소설 속에서 특별한 사건이나 배경이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각 인물들의 대사, 그 자체의 힘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탁월하다.  더불어 평론가 신형철은 인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보다 대사를 통해 단박에 그들을 드러내는 것이 훨씬 훌륭하다고 했는데 이 작품이 바로 그 한 예가 아닐까 싶다.
  
  소설을 전체적으로 보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이 작품은 앞서 말했듯이 인물이 가장 큰 힘을 갖기에 각 인물들의 의미 있는 대사들을 정리해보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각각의 대사 모음을 추려보고 다른 사람의 대사 모음과 비교해 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한 재미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부터 내가 생각하는 '마음'속 인물들로 들어가 보자. 발췌 부분도 많고 이런저런 내용들이 많이 등장하는 만큼 궁금증을 가지고 읽고 싶은 분들은 여기까지만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 선생님에 대한 나의 생각(선생님-나)
  - 나는 처음부터 선생님에게는 다가가기 힘든 신비함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다가가지 않을

    수 없다는 느낌이 어딘가에서 강하게 작동했다. 선생님에게 이런 느낌을 가진 사람은 많은 사람들 중에 어

    쩌면 나뿐일지도 모른다. 
  -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의 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을 손

    을 벌려 안아줄 수 없는 사람, 그가 바로 선생님이었다.(29쪽)
  - 내게는 그 대답이 너무 겸손해서 오히려 세상을 냉담하게 평하는 것으로 들리기도 했다(41쪽)
  - 선생님은 사모님의 행복을 파괴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생명을 파괴 해버렸다.(44쪽) 
  - 선생님의 생각은 살아 있는 생각 같았다. 불에 탔다가 차갑게 식어버린 석조 가옥의 윤곽과는 달랐다. 내 눈

    에 비친 선생님은 확실히 사상가였다. 하지만 그 사상가가 정리한 주의에는 강력한 사실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았다. 자신과 분리된 타인의 사실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통절하게 맛본 사실, 피가 뜨거워지거나 맥박

    이 멈출 만큼의 사실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51쪽)
  - 그때 나는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선생님은 과연 마음속 어디에서 일반 사람을 증오하고 있는 걸까 하고 생

    각했다. 그눈, 그 입, 어디에도 염세적인 그림자는 비치지 않았다.(89쪽)
  - 이런 말을 듣고 보니 역시 선생님은 결벽증이 있었다. (92쪽)
  - 선생님의 웃음은 ‘세상 사람들은 이럴 때 흔히 축하한다고 말하고 싶어하지’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93쪽) 

2. 선생님->나
  - “하지만 사랑은 죄악이네, 알고 있나” 나는 깜짝 놀랐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45쪽) 
  - “믿지 않는다는 건 특별히 자네를 믿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네, 인간 전체를 믿지 않는다는 거지.”(49쪽)
  - “예전에 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 머리 위에 발을 올리게 하는 거라네. 나는

     미래의 모욕을 받지 않기 위해 지금의 존경을 물리치고 싶은 거지. 난 지금보다 한층 외로울 미래의 나를 

     견디는 대신에 외로운 지금의 나를 견디고 싶은 거야..”(50쪽)
  - “그것 보게.” “뭘요?”“자네의 기분도 내 대답 하나에 금세 변하지 않았나”
  - “아니, 그렇게 보였다고 해도 상관없네. 사실 흥분했으니까, 나는 재산 이야기만 나오면 꼭 흥분한다네. 자

     네한테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이래 봬도 난 집념이 무척 강한 사람이야. 남한테서 받은 굴욕이나 손해

     는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잊히지가 않거든.”(87쪽)
   - 하지만 나에게는 그게 살아 있는 대답이었네. 실제로 나는 그때 흥분 하지 않았나. 나는 차가운 머리로 말을

     하기보다 뜨거운 혀로 평범한 말을 하는 게 살아 있는 거라고 믿고 있거든. 피의 힘으로 몸이 움직이기 

     때문이지(165쪽)
  - 나는 돈에 대해서는 사람들을 의심했지만 사랑에 대해서는 아직 사람들을 의삼하지 않았네.(174쪽)
  - 하지만 나는 남의 꼬임에 넘어가는 것이 싫었네. 남의 손에 놀아나는 것은 무엇보다 부아통이 터지는 일이었

    지. 숙부에게 속은 나는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남에게 속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네(183쪽)
  - 다시 말해 나는 고상한 사랑의 이론가였던 거네. 동시에 가장 에둘러가는 사랑의 실천가였던 셈이지(225쪽)
  - 여자에게는 커다란 인도적 입장에서 나오는 애정보다는 다소 도리를 벗어나더라도 자신에게만 집중되는 친

    절을 기뻐하는 성질이 남자보다 강한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네.(268쪽)

3. 내가 바라보는 사모님
  - 사모님은 그런 것보다 좀 더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마음을 소중히 여
     기는 것처럼 보였다.(55쪽)
  - 사모님은 내 머리에 호소하는 대신 내 심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60쪽)

4. 아버지와 나(아버지는 약간의 반전이 있다)
  - “공부를 시켜놓으면 아무튼 이유가 많아져서 못쓴다니까”.. 하지만 나는 이 짧은 한마디에서 평소 아버지가

     갖고 있는 나에 대한 모든 불만을 알 수 있었다. (110쪽)

5. 나의 생각
  - 하지만 그 직감이 나중에 나에게만은 사실로 입증되었기 때문에 나는 너무 어리다는 말을 들어도, 바보 같다

    는 비웃음을 당해도, 아무튼 그것을 내다본 자신의 직감을 미덥고 기쁘게 생각한다.(29쪽)
  - 나는 인간을 덧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어찌할 도리가 없이 갖고 태어나는 경박함을 덧없는 것이라

    고 생각했다.(103쪽)
  - 입으로는 축하한다면서 마음속으로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선생님이,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닌데 무슨 대단

    한 일처럼 기뻐해 주는 아버지보다 내게는 오히려 고상해 보였다. 나는 결국 아버지의 무지에서 나오는 촌스

    러움이 불쾌했던 것이다(105쪽)

6. 나와 형(형은 지나치게 단편적이긴 함)
  - 선생님, 선생님, 하며 내가 존경하는 이상 그 사람은 반드시 저명인사여야 한다고 형은 생각했다. 적어도 대

    학교수 정도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이름도 없는 사람,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
    가. 이런 점에서 형은 아버지와 생각이 같았다(138쪽)

7. 선생님->나(K에 대한 이야기)-유서를 통해
  - 나는 그의 고집을 꺾기 위해 굳이 그 앞에 무릎을 꿇는 일까지 했어
  - 그는 그만큼 독립심이 강한 사람이었으니까(198쪽)
  - 어설프게 옛 고승이나 성자의 전기를 읽은 그는 툭하면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려는 버릇이 있었지. 육체를 단

    련하면 영혼의 빛이 더해진다고 느끼는 일조차 있었을지도 모르네.  얼음을 햇볕에 내놓고 녹일 궁리를 한 

    거네. 조만간 녹아서 따뜻한 물이 되면 스스로 깨달을 때가 반드시 올 거라고 생각한 거지.(200쪽)
  - 내가 보기에는 자제와 인내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았거든.(200쪽)
  - 그리고 입 밖으로 꺼낸 말대로 행동하려고 하지. 그렇게 되면 그는 무서운 사람이었네. 위대했지. 스스로 자

    신을 파괴하며 나아가니까. 결과로 보면 그는 그저 자신의 성공을 깨뜨린다는 의미에서 위대한 것에 지나

    지 않지만, 그래도 결코 평범하지는 않았네.(201쪽)
  - 하지만 눈만 높고 다른 것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간단히 불구가 돼지.
  - 내가 여자의 대표자로서 앍고 있는 아가씨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기 때문이지. 지금 돌이켜보면 K에

    대한 내 질투심은 그때 이미 충분히 싹텄던 거야.(208쪽)
  - 이렇게 말하면 나는 정말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보이겠지. 그렇게 보여도  상관없지만 실제로 내가 결행하지

    못한 것은 의지력이 부족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네.(224쪽)

  각 인물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거나 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사라고 생각한 부분을 추려보았다. 위 내용만으로도 어느 정도 이야기가 그려지지 않을까 싶다. 여기에 몇 가지 생각들을 조금만 더 덧붙여보자.
  
 1.  '선생님'은 숙부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그 이후로 인간은 믿지 않기로 결심한다. 이런 자신의 의지를 여러 번 '나'에게도 표현한다. 경험은 의지를 만든다. 그 의지가 합리적이지 않더라도 틀리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하나 또는 소수의 경험과 지식의 틀 안에 갇혀 있지 않고 한 발 더 내딛어 볼 수 있는 용기를 갖지 못했다는 점에서  선생님은 대부분의 우리와 같은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2. 선생님은 숙부에게 속은 것에 분노하고 그에 대한 복수로 인간 전체에 대해 불신한다. 그러나 이 태도의 근원은 자신은 다른 인간이라는 믿음에 있었고, 그 믿음은 K와 사랑의 경쟁자가 되면서 무너지게 된다. 나 또한 선생님의 이야기들을 (경험이나 연륜의 부족에 의한)'이해하지 못하였다'라는 말로 재처두긴 했지만 그 겸손함 속에 '나는 그럭저럭 (인격적으로) 괜찮은 인간이야'라는 믿음을 깔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경박한 사람이라는 자각이 없던 나는 선생님과의 대화 후 기차에서 자신의 마음이 쉽게 변한다라는 점을 인식하고 경박한 사람은 아닐까라고 생각해 보기 때문이다.
  
3. 인간을 믿지 않는 선생님에게 K는 특별한 존재였다. K의 독립심이나 자신감, 고행적 태도 등을 동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K를 자신의 하숙집으로 불러들이는 모습에서 그 동경이 선생님 자신의 지혜로움에 대한 나르시시즘을 가리기 위한 의도된 겸손함이라는 에고는 아니었는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4. K의 자살 또한 친구인 '선생님'의 배신 때문인지, 그런 친구를 믿은 본인의 어리석음에 대한 단죄였는지, 결국 고백도 하지 못한 본인의 용기 없음에 대한 자책인지 그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 다만 하나의 신념 덩어리와도 같은 K도 자신에 대한 확신이 무너지면서 일종의 자아분열을 겪었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쓰메 소세끼라는 작가의 이름은 익히 들었지만 그의 작품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가 이 정도로 오래전 시기의 작가라는 것도 놀라웠다. 그만큼 그의 문체가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성을 확보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소설은 우선 잘 읽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 또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아직은 부족한 인생의 경험 속에서 K와 같은 사람이었던 적도 있고, 선생님 같은 사람이었던 적도 있었다.  두 사람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 그들은 인간의 원죄를 원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그저 인간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용기 없음이나 나약함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삶의 무게.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한 것 때문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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