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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강 Mar 16. 2021

알코올 에세이

맥주 이야기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어느덧 시원한 맥주가 생각나는 계절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애주가들, 특히 맥주 애호가들에게는 일 년 열두 달 중에 맥주가 어울리지 않는 계절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추운 겨울보다는 봄이나 여름에 맥주가 더 당기는 것 같습니다. 물론 안주가 치킨이라면 주종은 거의 100% 맥주로 확정이지만요. 낮이 되면 벌써 기온이 제법 올라 조금은 덥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시원한 맥주 생각이 나는 김에 이번에는 맥주와 관련된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주제로 글을 써보게 되었습니다.        

    


1. 생맥주 – 저희 테이블은 냉동실에서 얼린 잔으로 주세요!”     


개인적으로 생맥주는 가게마다 맛의 차이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가게에서 먹은 생맥주가 맛이 없었던 경우에는 ‘맥주에 물을 탄 것 같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죠. 정말로 맥주에 물을 탄 가게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맥주의 종류, 기계 관리, 온도 등 요인에 따라서 가게에서 제공되는 생맥주의 말이 천차만별인 것은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저도 국산, 수입을 가리지 않고 생맥주를 즐겨 마시지만, 지금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맛있게 마셨던 생맥주는 대학생 시절 학교 근처 호프집에서 마셨던 생맥주입니다. 신촌역 5번 출구 근처에 있는 건물의 지하 1층에 있던 가게였는데, 개강총회와 같은 대규모 모임도 이루어질 정도로 넓은 홀을 보유하고 있던 호프집이었습니다. 새내기 때부터 친하게 지낸 학교 선배의 단골집이기도 했는데, 그 선배 덕분에 일주일에 최소한 한 번은 같은 가게를 들린 것 같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안주의 가격이 대학가 치고는 그리 저렴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래서인지 감자튀김이나 모둠 소시지를 안주로 한번 주문한 후에는 생맥주를 실컷 마셔서 배를 채우곤 했습니다.     

  

가게의 생맥주가 특히나 맛있었던 이유는 냉동고에서 갓 꺼내온 맥주잔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인데, 맥주를 마시다가 맥주잔이 식으면 다시 부탁해서 차가운 잔으로 교환할 수도 있었습니다. 사실, 당초부터 500cc 잔으로 주문했다면 맥주잔을 교환할 필요가 없었겠지만, 저희 테이블은 피처로 주문해도 늘 추가 주문을 했을 정도로 맥주를 많이 마셔댔었거든요. 생각해보니 안주를 굳이 먹을 필요가 없긴 했습니다.      


이처럼 시원한 맥주잔이 생맥주의 맛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보니, 같이 간 선배는 주문하면서 언제나 “저희 테이블은 냉동실에서 얼린 잔으로 주세요!”라고 덧붙이곤 했습니다. 맥주잔이 충분히 덜 차갑다 싶으면 맥주잔도 자주 교환하기도 했고요. 그러고는 한잔, 두 잔, 나중에는 몇 잔을 마셨는지 모를 정도로 생맥주를 함께 흡입했습니다. 별 시답지 않은 주제로 수다를 잔뜩 떨면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심지어는 가게 영업 종료 시간까지 맥주를 마시곤 했는데, 그때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을까요? 때때로 그 어리고 철없던 시절이 그립기도 합니다.     


그 시절 마셨던 시원한 생맥주가 그리워서 신촌에 들린 김에 친구와 함께 예전에 갔던 호프집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폐업을 하였는지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에 쇠사슬을 묶어놓았더군요. 괜히 아쉬워서 몇 번이고 주변을 돌아다녔던 것 같습니다. 다른 호프집을 찾는 건 간단한 일이지만, 어쩌면 세월이 지나 너무나 변해버린 학교 주변이 괜히 낯설어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라도 그 추억의 호프집이 다시 영업을 하고 있다면, 시원한 생맥주 한잔을 꼭 다시 마시고 싶습니다. 물론 제 맥주잔은 냉동고에서 갓 꺼내온 걸로 부탁할 예정이고요.           



2. 치맥 – 메시의 월드컵 데뷔전이 열렸던 그날의 기억       


최고의 축구스타 중 한 명인 리오넬 메시는 저랑 동갑입니다. 그리고 메시 이외에도 카림 벤제마, 루이스 수아레즈, 곤잘로 이과인, 세스크 파브레가스, 헤라드 피케와 같은 다른 유명한 동갑내기 선수들도 아직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운동선수로 치면 이제 노장이라고 불리는 동갑내기 축구선수들이 아직까지 그라운드에서 활약을 펼치는 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더 응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리오넬 메시는 체력과 운동능력이 전성기보다 떨어졌을 것임이 분명함에도 여전히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어서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합니다.       

리오넬 메시가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 월드컵 데뷔 경기를 치른 날, 저는 1학년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것을 기념해서 친한 형들과 학교 근처 치킨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2006 독일월드컵은 한국시간으로 늦은 밤부터 첫 경기를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한국이 토고를 상대로 조별예선 원정 첫 승을 기록하기도 했고, 직전 월드컵이 2002 한일월드컵이어서 월드컵 열풍이 남아있던 시절이라 축구 중계를 하는 치킨집은 늦은 시간까지도 손님들로 늘 붐볐습니다.      


특히 본인이 자주 애용한 가게는 학교 남문 맞은편에 위치한 작은 치킨집이었는데, 닭이 작아 비교적 저렴한 대신에 맛이 좋아 가성비가 좋은 곳이었습니다. 기말고사가 끝난 금요일 밤이라 치킨집 내부가 손님들로 가득 찬 상태에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경기 시작 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당일 월드컵 첫 경기가 아르헨티나와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 경기였는데, 아르헨티나에는 에르난 크레스포, 카를로스 테베즈 등 유명한 선수들이 많아서 모두가 기대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메시는 유망주였기 때문에 경기에 나올 수 있을지 여부도 불투명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경기 시작 전의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기말고사 이야기였습니다. 함께 치킨을 먹던 형들 중 한 명이 가을졸업을 앞둔 상태에서 학점 걱정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일단 오늘은 축구를 보면서 맥주라도 실컷 마시자라는 분위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특히 졸업을 앞둔 형은 평소에도 술이 많이 약했는데, 그날은 마지막 기말고사가 끝나 홀가분했는지 맥주를 계속 마셔댔습니다. 결국 3명이 아르헨티나전 전반전이 채 끝나기도 전에 3,000cc 피처를 모두 비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미 아르헨티나가 전반전에서만 무려 3골을 넣고 있었기 때문에, 축구경기는 대충 보면서 수다에만 열을 올렸던 것 같습니다. 특히 술을 잘 못 마시는 형이 맥주를 많이 마시더니 말도 많아지고 농담도 잘해서 분위기가 너무 좋았었거든요. 맥주 피처를 추가로 주문했는데 어느새 이것마저 순식간에 마셔버렸습니다. 그때가 후반전 경기가 끝나기도 전이었던 것 같은데, 바르셀로나의 유망주 리오넬 메시가 교체멤버로 그라운드로 들어오는 장면을 치킨집 TV 너머로 숨죽이면서 바라봤던 게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월드컵 데뷔전을 갓 치르게 되는 동갑내기 선수가 역사에 남을 위대한 선수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메시는 교체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팀의 마지막 6번째 골을 기록했는데, 데뷔경기에 월드컵에서 골도 기록해서 기분이 정말 좋겠다고 정도로만 생각했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선수진이 워낙 탄탄하니 저런 것도 가능하다고 말이죠. 그 어린 선수가 월드컵에서 역사적인 데뷔를 할 때 동갑인 저는 학교 골목길에 있는 새벽까지 맥주를 퍼마시고 있었던 게 되네요.      


아르헨티나와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 경기가 끝나고 나서는 네덜란드와 코트디부아르의 경기가 이어졌습니다. 이미 새벽시간이 되었는데도 치킨집에는 월드컵 중계를 보기 위해 남아있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때가 월드컵 시즌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기말고사가 끝난 날이었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늦은 시간까지 치킨집은 계속 오픈 상태에 있었습니다. 형들이 맥주를 조금만 더 마시자고 해서 저도 남아서 추가로 주문한 맥주를 함께 마셨습니다. 이어지는 경기에서는 반 니스텔루이와 디디에 드록바의 맞대결을 볼 수도 있어서 설레기도 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네덜란드와 코트디부아르의 경기는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이미 세 사람 모두 맥주로 상당히 취해있었기 때문이죠. 결국 축구경기는 뒷전이 되어버린 상태에서 맥주만 실컷 마시다가 경기가 끝날 때 즈음에 밖으로 나온 것 같습니다. 같이 걸어가면서 뭐가 그렇게 웃기고 재미있었는지 동네가 다 떠나가도록 깔깔댔습니다. 헤어지면서 여름방학이 시작되어도 종종 이렇게 치맥 하면서 축구를 같이 보자고 했는데, 결국 그 약속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다음날의 숙취가 임팩트가 커서인지, 저마다의 방학일정으로 바빠서인지, 한국이 결국 16강에 진출하지 못해서인지, 정확한 이유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축구경기 시청은 지금까지도 본인이 즐기는 취미 중 하나입니다. 혼자 축구경기를 보는 것도 좋아하고, 친구들이랑 같이 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여기에 치맥까지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지요. 어쩌다 치맥을 하면서 메시가 출전하는 바르셀로나의 경기를 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2006년 6월 중순 무더운 여름날, 메시의 월드컵 경기를 치킨집에서 봤던 그날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기말고사가 끝나 붕 뜬 기분에 철없이 맥주를 흡입하고 있던 그 시절의 본인은 어느덧 30대 중반의 아저씨가 되어 있는데, 동갑내기 선수는 레전드가 되어 여전히 멋지게 활약하고 있으니 괜히 뿌듯하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하네요. 그래도 축구와 치맥에 대한 열정만큼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는데, 다음 축구경기는 치맥과 함께 시청해봐야겠습니다.     



3. 칼스버그 – 부디 이 청년을 알코올의 유혹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를”   

       

요즘은 유명한 수입맥주 브랜드를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4캔에 만 원 정도로 저렴하게 마실 수 있지만, 예전에는 국산 맥주보다 제법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만 수입맥주를 마실 수 있었습니다. 특히, 맥주창고와 같이 다양한 수입맥주를 취급하는 가게의 경우, 자주 가기는 부담스럽고 가끔 기분 좋은 일이 있거나 해서 분위를 낼 때에나 가끔 방문하곤 했습니다.   


저는 수입맥주 중에서 하이네켄과 칼스버거를 특히나 좋아했는데, 비용 문제 때문에 학생 때는 주로 국산맥주를 많이 마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어릴 때는 맥주라고 하면 다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맥주 맛을 제대로 음미할 줄도 모르면서 수입맥주라고 하면 괜히 더 맛이 풍부한 것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20대 초반에 어학연수를 위해 영국에서 체류했던 시기는 맥주와 관련해서는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였습니다. 서울에서는 비싸게 판매하는 브랜드의 맥주를 저렴하게 마실 수 있었거든요. 당시 저는 런던에서 홈스테이를 하면서 어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언제나 지하철역 근처의 마트에 들러서 맥주를 사서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제가 구입하는 물품은 늘 동일했는데, 칼스버거 맥주 한 캔과 스니커즈 초코바였습니다. 런던의 물가가 매우 살인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칼스버거 맥주는 매우 저렴했고, 스니커즈 초코바는 주인집 아주머니의 파스타를 먹고 나면 늘 느껴지는 허기를 달래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훌륭한 안주였거든요. 덕분에 제 방에는 일주일만 지나면 맥주 캔으로 책상이 가득 차곤 하였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매일 그날의 맥주 캔을 제때에 정리하지 않은 것이 후회되기도 합니다.     


주인집 아주머니의 성함은 ‘파멜라’였는데, 매우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자녀들이 모두 장성하여 독립한 후에는 1층의 빈방들을 어학연수를 하러 온 외국인 학생들에게 홈스테이로 제공하셨는데, 몇 년간 홈스테이를 하면서 한국과 이탈리아 학생들이 본인과 잘 맞는다고 생각하게 되어 양국의 학생들을 우선적으로 배정해 줄 것을 어학원에 요청하신 결과 제가 배정이 된 것입니다. 파멜라 아주머니의 가장 자신 있는 요리는 파스타였는데, 거의 매일 새로운 소스의 파스타를 저녁식사로 요리해주었습니다. 어떤 날은 맛있게 먹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날은 절반도 먹지 못하고 방으로 돌아가 스니커즈 초코바로 배를 채우곤 했습니다. 입맛에 썩 맞지는 않았거든요. 하우스 메이트들도 모두 이탈리아 출신이었는데, 파스타의 맛에 대하여 상당히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불쌍한 파멜라 아주머니, 저라도 파스타를 맛있게 먹어드릴 걸 그랬습니다.    

  

파멜라 아주머니는 식사시간에 학생들을 위해 대표로 기도를 해주었고, 교회에 참석할 것을 자주 권유했습니다. 특히나 저한테는 교회를 다니면 바른생활습관을 가질 수 있게 된다고 하면서, 젠틀맨은 술을 그렇게 자주 마시지는 않는다고 구체적으로 지적해주었습니다. 물론 철없는 저는 다음날에도 칼스버거 맥주를 사들고 왔지만 말이죠.             

어느덧 어학연수 일정이 종료되어 방에서 짐을 빼는 날, 파멜라 아주머니는 작별인사를 하면서 저를 위해 잠시만 기도를 해도 괜찮은지 물어보았습니다. 물론이라고 대답하자 파멜라 아주머니는 제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신 후 진심 어린 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기도의 내용은 대체적으로 제가 한국에 돌아가서 훌륭한 인재로 성장하고,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다만, 기도 말미에 파멜라 아주머니는 진심을 담아 이러한 문구를 덧붙이셨던 게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부디 이 청년을 알코올의 유혹으로부터 구원해 주옵소서.” 방에 잔뜩 쌓여있는 칼스버거 맥주 캔을 정리하면서 충격을 많이 받긴 하셨나 봅니다.  

   

가끔 칼스버거 맥주를 마실 때면 파멜라 아주머니를 떠올리곤 합니다. 여전히 알코올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다음에 뵙게 되면 파스타만큼은 꼭 맛있게 먹어드리고 싶습니다.           



4. 소맥 – 하이네켄에 소주를 말아먹을 수 있는 성공적인 삶         


소맥은 술자리에서 가장 접하기 쉬운 폭탄주입니다. 소주와 맥주를 그냥 섞기만 해도 알코올 도수가 매우 높으면서도 목 넘김이 편한 폭탄주가 그냥 만들어지니, 애주가들이 선호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소맥을 제조하는 비율도 사람마다 다른데, 원 샷을 위해 소주 한잔 기준으로 맥주와 소주를 1:1 비율로 제조하기도 하고, 맥주의 비율을 70% 이상으로 높게 잡아서 마시기 쉽게 제조하기도 합니다.      


맥주처럼 시원하게 마실 수 있고, 도수가 높아 빨리 취하기 때문에, 소맥은 야근이 잦고 다음날 일정이 타이트하게 잡혀있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습니다. 다만, 술이 쉽게 들어가고 빨리 취하다 보니 소맥은 오히려 분위기 때문에 과음하기 쉽게 되는 폭탄주이기도 합니다.      


소맥의 재료가 되는 소주와 맥주의 브랜드가 특별하게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요즘은 ‘테슬라’라고 해서 테라 맥주와 참이슬 소주로 소맥을 많이 만들어 먹는 것 같습니다. 제 경우 가장 맛있게 먹은 소맥은 하이네켄 생맥주와 소주의 조합이었습니다.      


모 언론사 법무팀에 입사한 학부 선배가 입사 턱으로 저랑 친구에게 학교 근처에서 밥을 사준 적이 있습니다. 돼지고기에다가 소주를 한잔 한 후, 2차로 맥주를 마시자고 해서 근처 호프집에 들어갔습니다. 당일 호프집에서 하이네켄 생맥주 행사를 하고 있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이네켄 생맥주 3잔을 주문했습니다. 취기가 살짝 오른 상태에서 맥주만 마시기 심심했는지 선배는 소주도 한 병 주문했는데, 이걸로 소맥을 한번 만들어보자고 제의하였습니다. 맛있는 맥주에 굳이 소주를 태워 먹는 게 아쉽기도 해서 저랑 친구가 주저하자, 선배는 맥주를 더 주문하자고 하면서 소주를 각자의 맥주잔에 그대로 붓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즉석에서 만들어진 하이네켄 소맥을 마신 순간 신세계가 펼쳐졌습니다. 평소 마시던 소맥과는 달리 엄청 부드럽고 풍부한 맛이 났기 때문입니다. 소주는 탄산 역할을 해서 청량한 뒷맛을 냈고, 하이네켄 특유의 향도 그대로 살아있었습니다. 분명 소맥인데, 크림맥주와 같은 달콤하고 시원한 맛이 나서 모두가 소리를 내서 감탄했습니다. 선배는 충동적으로 그냥 섞어본 소맥이 맛이 있자 의기양양해서는 “모두 평소에도 거리낌 없이 하이네켄에 소주를 말아먹는 성공한 삶을 살아보자.”라고 말했습니다. 친구도 옆에서 “우리는 하이네켄 소맥을 마시고 있으니 이미 성공한 삶을 살고 있네요.”라고 거들었고요. 그날 우리는 하이네켄 생맥주로 소맥을 실컷 만들어 먹은 후 헤어졌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다양한 자리에서 하이네켄으로 소맥을 제조해 보았습니다. 캔맥주, 병맥주, 생맥주 케그로 모두 시도해보았는데, 제조할 때마다 맛이 훌륭했습니다. 먹어본 사람들도 하이네켄과 소주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지 몰랐다고 감탄한 것은 물론이고요. 그럴 때마다 저는 농담 삼아서 하이네켄 소맥을 처음 마신 날 한 농담을 하곤 사람들에게 하곤 합니다. “오늘 하이네켄에 소주를 말아먹을 수 있으니 우리는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요?”      


이 농담을 들으면 대체적으로 사람들이 웃으면서 자지러집니다. 취기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맛있는 소맥을 먹어서 격하게 동감했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아무쪼록 후자이길 희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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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동료 변호사님과 같이 수제버거를 먹으러 갔다가 날씨도 덥고 해서 맥주를 함께 주문했습니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신 순간 너무 맛있어서 두 사람 모두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햄버거 가게에서 자체적으로 판매하는 수제맥주가 이토록 훌륭한 맛을 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개인적으로 무척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특히, 아직 맛을 보지 못한 맛있는 맥주를 주변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저를 매우 설레게 만들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맥주 한잔을 여유롭게 가게에서 마시기도 힘들어 늘 아쉬웠는데, 부디 상황이 빨리 나아져서 시원하고 맛있는 맥주를 제대로 음미하면서 함께 건배를 나눌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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