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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선생 Nov 22. 2021

볼리비아 수도 라파즈La paz  

불가사의 한 도시 -세상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있는 수도  

                                                                                                                         

 페루 쿠스코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즈. 관광비자를 미리 준비해 오지 않았다면 공항에서 바로 돈만 내면 발행해 줬다. 우리는 입국한 후 공항은행에서 달러를 볼리비아돈으로 환전했다. 공항을 나오자 그리 멀지않게 보이는 설산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6,460m의 일리마니Illimani 산뿐만 아니라 바라다 보이는 안데스 산맥의 고산들이 웅장했다. 공항이 있는 라파즈 엘알토 지역은 알티플라노 고원지대라 평균 해발 고도가 4,000m 넘는다. 5월 중순 늦가을의 계절이기 때문에 날씨는 다소 싸늘했다. 단합을 했는지, 시내까지 가는 택시비가, 누구에게 물어봐도 같았다. 사람들과 건물들 모습이 페루와 비슷하고 또 사용하는 언어가 같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왔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엘알토를 벗어나자마자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세계 불가사의 도시 중 하나라고는 하지만 정말 놀라웠다. 마치 놀이기구를 타고 내려가는 기분인데다, 색색의 성냥갑 같은 집들이 산자락을 따라 차곡차곡 둘러 쌓여있어 신기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하나의 설치미술 같았다. 라파즈는 1548년 스페인의 정복자 알론소 데 멘도사Alonso de Mendoza가 잉카제국 마을에 건설한 도시로부터 시작됐다. 정식 명칭은 ‘평화의 성모’ 즉 ‘Nuestra Senora de La paz’다.

 커다란 항아리, 또는 절구통처럼 생긴 도시라 높은 지역과 낮은 지역의 고도 편차가 거의 900m나 된다. 딸이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해 놓은 호텔은 중간지대에 있었다. 그곳은 고도가 3,600m정도다. 차에서 내려 오르막길을 걸을 때는 숨이 금방 차올랐다. 호텔에 배낭을 내려놓고 바로 나왔다. 어제 저녁부터 먹은 게 부실했기 때문에 ‘코리아 타운’이라는 한국식당을 걸어서 찾아갔다. 한국인들 중에는 세계 곳곳으로 진출해 나름대로 자리 잡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이번에 함께 여행 온 사위와 딸도 재미교포다.

 다른 나라에서 먹는 한식이 만족스러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칼칼한 육개장, 김치찌개를 먹고 나니 속이 좀 개운했다. 다시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오면서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과일아이스크림을 사, 길거리에서 서서 디저트로 먹었다. 그런데 매연 때문에 눈과 코가 따가웠다. 급히 약국에서 마스크를 사 착용했다. 모자, 선글라스, 마스크까지 하니 좀 유별을 떠는 것 같아 민망했다. 하지만 햇살도 뜨겁고 수많은 고물차가 내뿜는 매연은 시내에 그대로 고여 있어서 심각했다.

 한국과 지구 반대쪽에 있는,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즈에 우리는 삼일동안 머물렀다. 우유니사막을 가기 위해 이틀, 갔다 와서 페루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하루를 더 있었다. 이때 아침저녁으로 챙겨 먹은 것은 고산증약이다.      

     대중교통인 케이블카를 타고 바라본 라파즈 시



                   산 프란시스코 성당Basilica de San Francisco

       

 라파즈에서 제일 먼저 산 프란시스 성당을 구경했다. 코카잎으로 장식을 한 마야인의 모습, 볼리비아의 전통신 등의 조각품이 가득한 외관과 장엄함이 느껴지는 성당은 식민지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남미에서도 오래된 성당으로 유명하다. 표를 사서 안으로 들어가니 영어를 공부한다는 여대생 가이드 앙헬리가 안내를 했다. 입구 바로 안에 이 성당의 원래 모습을 알 수 있게 만들어 놓은 미니어처가 있다. 그것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앙헬리는 성당의 역사와 규모 등에 대해 설명해줬다. 1548년에 세워졌는데 수도원과 교회가 있는 무척 큰 규모였음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런데 눈사태로 인해 성당일부가 부서져서 1784년에 재건축이 이루어졌고 지금의 모습을 유지 하고 있다.

 건물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게, 페인트칠을 하지 않고 원래 모습 그대로인 벽과 기둥을 보여주기도 했다. 몇 백 년의 시간과 이곳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간직하고 있는 성당은 위대한 침묵자, 초탈자의 모습으로 의연했다. 파란 색이 칠해진 긴 회랑에 빛이 들어 은총이 비치는 듯했고 유리창 너머의 정원에 있는 나무, 꽃들과 어우러져 사각회랑 안에 생명력이 가득한 것처럼 온기가 느껴졌다.

 포도주를 만들고 저장했던 곳, 또 여러 가지 성물을 제작했던 방,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파란색의 예수님 등을 보고 성당 지붕으로 올라갔다. 여러 개의 돔이 있고 십자가도 세워져있는 붉은 지붕이 내부만큼이나 미적이다. 그런데 벽돌 모습을 자세히 보면 생김이 조금씩 차이가 있다고 앙헬리가 알려줬다. 벽돌을 만들 때 인부들이 자기의 허벅지를 벽돌틀로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름으로 새겨진 듯 인부들의 작품에 세월의 꽃인 이끼가 피어 아름답기도 했다. 조심조심 지붕을 지나 종탑 앞에 앉아 멀리, 가까이 바라보니 장관이다. 설산이 보이고 라파즈 시내가 펼쳐져 있으며 바로 아래 광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금요일 오후를 즐기고 있다. 다양한 물건을 파는 사람들,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퍼포먼스도 하는 길거리 공연도 펼쳐지고 있다.

 앙헬리는 슈퍼주니어 팬이고 한국어도 몇 마디 구사할 줄 알아서 반가웠다. 가지고 간 간식을 성당 지붕 종탑 앞에 앉아 나눠먹으며 시내를 한참이나 감상했다. 그리고 천천히,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깜깜한 좁은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왔다. 성당은 종교를 떠나서도 아름답다. 지금도 예배를 보고 많은 성화들이 걸려있는 내부는 조형미도 아름답지만 또한 경건하기 그지없다. 성화에 담긴 의미와 상징 등은 높은 예술의 경지를 품고 있다. 화가가 글자를 쓸 줄 몰라 자기 이름 대신 얼굴을 그려놓은 성화 앞에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산 프란시스코 성당 지붕 위


          

                 에치세리아 시장Mercado de Hechiceria과 노점상    

 

 볼리바아는 물가가 싸고 수제품들이 많아 쇼핑을 하기에 좋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성당 옆길로 올라가 마녀시장, 즉 에치세리아 시장Mercado de Hechiceria에 갔다. 이름 때문에 기대를 갖고 갔지만 마녀용품만을 파는 시장이 아니다. 좁은 거리 양편으로 계속 이어지는 많은 가게들이 있다. 입구에 있는 몇 개 상점이 이름값을 하는, 마녀들이 사용할 법한 주술용품들과 알 수 없는 물건들을 팔았다.

 주술에 쓰일법한 탈과 조각품들, 부적 비슷해 보이는 그림들, 작은 짐승들과 곤충, 새들의 박제가 시선을 끌고 새끼 라마 말린 것은 징그러웠다. 여러 가지 식물의 잎, 줄기, 뿌리, 꽃잎 등을 마린 약초들, 또 다양한 약이 있었는데 약이라기보다는 향수 같았다. 사랑에 빠지게 하는 약, 강한 힘을 내주는 약, 액 땜하는 약들도 있다고 하는데 약효를 알 수는 없다. 뭐 그런 묘약이 있을까마는 괜히 약효를 의심하고 하나도 안 사가지고 온 것이 라파즈를 떠나 온 후에 후회가 됐다. 말린 코카잎이 자루에 잔뜩 담겨있고 작은 종이곽 표면에 요상한 그림이 눈길을 끄는 상품들이 쌓여 있다. 뚱뚱한 주인 여자가 뭐라도 하나 사 주길 바라는 눈길로 바라보는 것이 부담스러워 빨리 나오고 말았다.

 옆으로 계속 이어지는 다닥다닥 붙어있는 가게에는 비슷한 물건들이 쌓여있다. 알파카털로 만든 옷들, 목도리들과 가방, 망토, 벽걸이, 방석, 지갑, 다양한 기념품 등등 정말 켜켜로 쌓여있다. 눈요기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우리 숙소가 그 근처라서 매일 시간 있을 때마다 그 마녀시장을 돌아다녔다. 그런데 마지막 날 저녁에 그곳에서 일이 터졌다.

 한 가게 안으로 들어가다가 입구에 앉아 있는 강아지를 발견했다. 딸이 머리를 만져주려 손을 내미는 순간 물렸다. 이빨 자국이 앞뒤로 선명하고 피가 흘렀다. 순간 다들 놀라며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했다. 병원도 문을 닫았을 것 같고 상처보다 광견병이 걱정됐다. 주인여자가 급히 소독제를 가지고 왔다. 다행히 강아지에게 광견병 예방주사를 해주었다는 서류를 확인하고 안심이 됐다. 약국에 가서 약을 사, 바르고 먹고 난리를 피우면서 정말 여행할 때 안전이 제일 우선임을 체험했다.   

 마녀시장 가까운 거리에는 아침 5시 전부터 난전이 열리고 위쪽으로는 상설시장도 있다. 주로 농산물을 파는데 오후 2시경에 문을 닫았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새벽 동트기 전부터 길가에 앉아 꽃과 다양한 채소를 파는 사람들이다. 한 두 사람이 아니라 길 양편과 길 가운데 중앙선처럼 죽 이어 앉아서 판다. 그 모습이 장관이다. 파는 사람들 대부분이 여자들이고 어디서 그렇게 싱싱하고 탐스럽게 핀, 빨강, 노랑, 분홍, 보라, 주황, 흰색 등등의 꽃들을 가지고 와서 파는지 또 그 꽃들을 어디에 쓰는지 궁금했다.

 이곳은 주민의 절반 정도가 인디오들이다. 여자들은 대부분이 머리를 양쪽으로 길게 따 내리고, 어떤 사람은 그 딴 머리끝에 장식을 달기도 한다. 치마는 도대체 몇 겹을 입었는지 알 수 없고 주름을 겹겹이 잡은 치마는 폭이 무척 넓어서 한 자락을 들어 올려 어깨에 걸치면 망토를 겸할 수 있다. 새벽부터 길가에 앉아 꽃을 파는 사람들. 모자를 쓰고 망토를 걸치고 풍성한 치마를 펼치고 앉아 꽃을 파는 모습이 생활인이라기보다는 예술가 같았다.

 장사하는 여자들이 방한용으로 털모자를 많이 썼지만 남자들의 중절모 비슷하면서도 위로 높이 올라간 모자도 많이 썼다. 그 모자에는 웃지 못 할 이야기가 들어있다. 라파즈 관광 이틀 째 되던 날 시티투어 버스를 탔는데 그 버스 안에서 해주는 안내방송을 통해 알게 됐다.

 식민지 시절 영국의 한 상인이 유럽에서 유행하던, 남자들이 쓰던 모자를 남미로 가지고 와 장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한 것만큼 잘 팔리지가 않았다. 그래서 여자들을 겨냥해서 ‘이 모자가 지금 유럽에서 귀부인들이 애용한다.’고 선전을 했다. 그때부터 그 모자를 상류층 여자들이 사 쓰기 시작했고 점점 더 모든 여자들이 쓰게 됐고 지금은 안데스 산악지대 여자들이 주로 쓴다. 웃음이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여자들의 심리를 잘 이용한 상술이 몇 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에치세리아 시장 가는 길에서



                          대중교통 수단인 케이블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있는 수도, 라파즈의 명물은 케이블카다. 도시 허공 여기저기에 매달려, 천천히 움직이는 색색의 케이블카가 대중교통수단이라니! 정말 재미있고 놀랍고 멋지다. 2014년에 개통이 되었고 지금도 공사가 진행되기도 해 노란선, 빨간선, 파란선 외에 무지개색으로 노선이 늘어나고 있다. 라파즈 지형에 안성맞춤인 교통수단이다. 바라만 보기에는 아쉬워 케이블카 정류장으로 가서 표를 사 탑승을 했다. 어디를 가려는 목적이 아니라 그냥 타 보는 거다.

 한 대에 6~8명 정도 탈수 있고 아주 천천히 움직이기 때문에 대중교통보다는 관광용으로 제격이다. 움직이는 위치에 따라 시야에 들어오는 광경의 폭이 다르다. 또 바로 아래를 바라보면 빨래하는 모습, 마당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 노인들이 의자에 앉아 해바라기 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정상 가까이에서는 문 열어놓은 집 방안까지도 보였다. 라파즈 시민들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시내 전체를 조망하면서 유명한 관광지에서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사위는 한 번 타보는 것으로는 부족해 했다. 종일 그것만 타도 재미있겠다더니 2개 노선을 타고 라파즈 허공을 왔다 갔다 하다가 우리와 합류했다.

 라파즈는 아래로 내려가면 기온도 시원하고 공기도 맑고 도로도 넓고 깨끗하고 현대적인 고층건물도 많다. 어느 유럽의 한 도시와 비슷하다. 반면 위로 올라갈수록 그 반대다. 건물들은 도색도 하지 못하고 도로는 좁고 매연도 심각하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도 차이가 난다. 그래도 시내 곳곳에 여러 개의 박물관도 많고 좁은 강이 흐르는 언덕 벽면에는 대형 그림들이 여러 개 걸려있어 야외미술관 같다.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달의 계곡’에 갔다. 원래는 인디오들의 언어로 ‘영혼의 계곡’이라 불렸던 곳이다. 그런데 달에 갔다 온 루이 암스트롱이 와서 보고 달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달의 계곡’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여행을 하다보면 역사적으로든 전설로든 이야기가 많다. 어디까지가 진실인가를 따지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고 그냥 재미있고 또 다 맞는 이야기 같아 신기하다.

 ‘달의 계곡’은 뾰족뾰족한 돌숲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문명 도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런 땅이 있다는 것이 의아했다. 우주에서 떨어진 한 조각 다른 행성 조각 같았다. 나무로 다리를 만들어 놓아 그 길을 따라 걸으면서 주위 풍경도 보고 기기묘묘하게 생긴 돌들이 연출하고 있는 모습을 감상했다. 돌 틈에 피어 있는 한 송이 빨간 선인장꽃이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줬다. 천천히 한 바퀴 돌며 사진을 찍고 나니 이름 때문인지 정말 달 표면을 걷고 내려 온 기분이 들었다.

 2층 시티투어버스에 다른 손님이 없어 우리 세 사람만 타고 돌아다니기가 좀 미안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가이드 여자가 설명을 해 주지 않고 그냥 방송을 틀어줬다. 현재 볼리비아 대통령인 에보 모랄레스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볼리비아는 인구의 70%가 인디오지만 거의 빈민층이 많다. 그들의 지지를 받아 가난한 코카 재배 농가 출신 인디오인 에보 모랄레스가 2006년 대통령에 취임해 연임을 거듭하고 있다. 코카는 아주 유용한 식물이지만 코카인으로 악용되고 있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듣고 또 이런 저런 볼리비아에 대한 설명을 많이 해줬다.

 처음 도착 했을 때는 고산증과 매연 때문에 별로 정이 안 갔지만 떠나올 때는 언젠가 다시 오고 싶은 라파즈가 가슴에 들어와 앉았다.

달의 계곡


꽃을 파는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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