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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선생 Feb 21. 2020

겁먹지 말고 거뜬하게

2.부에노스아이레스(B.A) 도착

               

 혼자 여행할 때는 목적지에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전날, 페루 리마에서 숙박을 하고 택시를 예약해 놓았다가 아침 5시 반에 공항에 들어갔다. 리마공항은 국제, 국내선이 한 곳에 있어 언제나 무척 혼잡하다. 여유 있게 수속을 밟고 9시 45분에 출발하는 라탐항공을 탔다. 4시간 비행 후, 시차가 2시간 있어서 오후 3시 45분경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에 내렸다. 비행기 안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 시간을 체크해 손목시계를 맞춰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배낭 하나 메고 가볍게 공항을 나왔지만 괜히 겁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면서 시각, 청각, 후각 등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아 여기가 부에노스아이레스구나!’ 그러나 감상에 빠질 시간이 없다. 

 ‘그래 정신을 차리자. 먼저 돈을 환전해야지.’ 스스로 용기를 줬다. 이러면서 내가 여행 하는 이유가 뭘까? 스스로도 알 수 없다. 살아있으니까, 그리고 세상은 끝없이 새로운 것이 많으니까. 여행을 갈까 말까 망설이지 않고 그냥 기회가 있으면 무조건 가볼 뿐이다.

 환율이 불리해도 은행에서 환전해야 가짜 돈을 피해 갈 수 있다. 공항 청소하는 여자에게 짧은 현지어로 은행이 어디 있나 물어보니 복도 뒤쪽을 가리켰다. 그쪽으로 가니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었다. 줄을 서서 내 귀는, 어디서 한국어가 들려오지는 않을까 쫑긋 섰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렸지만 한국어를 듣지 못했다. 한국 사람을 만나면 괜히 든든할 것 같았다. 환전 창구는 하나이고 그 앞에는 경찰이 서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다. 500달러를 29.3환율로 14,650페소를 받았다. 거의 100페소,  50페소 짜리로 줘서 한 뭉치다. 세어보고 확인할 수도 없고 또 처음 보는 페소를 구분 하는 것도 어려웠다. 뒤에 사람들도 많이 줄을 서 있기 때문에 빨리 자리를 비워줘야 한다는 강박증에, 맞든 안 맞든 그냥 크로스백에 집어넣었다. 사전에 여행 할 나라의 화폐에 대해 공부하고 알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Casa Rosada 분홍빛집인 대통령궁                                    


 8월 중순이라 한겨울이다.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시내까지는 또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싼 버스를 탈까 하다가 좀 무모한 것 같아 리무진이나 택시를 타기로 했다. 시간과 편리함이 돈과 비례하는데 택시는 43달러를 달라고 했다. 아무래도 바가지요금 같았다. 또 혼자 택시를 타는 것도 위험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리무진을 어디서 타는지 미리 알아갔기 때문에 공항 건물을 나와 오른쪽으로 조금 걸어가 두리번거렸다. Tienda Reion이란 글자가 있는 작은 사무실이 보였다. 13달러를 주고 표를 사 그 앞에 서서 기다렸다. 내가 오기 전에 버스가 갔는지 빨리 오지 않아 안달이 났다. 30분 정도 지나 리무진버스가 왔다. 손님이 많지는 않았다. 아 드디어 지구상에서 한국과 정반대에 있는 나라 아르헨티나의 심장 부에노스아이레스다. ‘오, 내가 혼자 여길 왔구나!’ 뿌듯했다.

 차가 별로 밀리지 않아 30분 만에 시내에 들어왔다. 그러나 시내는 퇴근시간이라 그런지 엄청 밀렸다. 어둑해진 도시는 베일에 가려진 신부 같았다. 뭔가 아름다울 것 같은데 확실하게 볼 수가 없다. 책에서 봐 둔 Casa Rosada 분홍빛집인 대통령궁을 저만치 지나 터미널에 도착했다. 

 흥분도 잠시, 어떻게 호텔을 찾아가나? 궁리를 골몰히 했다. 그런데 리무진에서 내리자마자 버스회사 직원이 손님들에게 호텔 주소를 물었다. 그리고 옆에 대기하고 있는 자가용에 타라고 했다. 노부부와 흑인 청년 한 명과 내가 그 차에 탔다. 호텔이 가까운 사람들 끼리 한 차에 태워서 호텔까지 데려다 준다는 것이다. 속으로 ‘야호, 어쭈 괜찮은데’ 한시름 놨다. 지금은 경제가 안 좋지만 20세기 초만 해도 아르헨티나는 경제력 면에서 세계 5위의 강국이었다. 역시나 ‘살아본 나라’다. 괜히 신이나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안 되는 언어로, 어느 나라에서 왔는가 하면서 동승한 사람들과 인사를 했다.

 호텔은 오래된 건물이다. 욕실이 있는 싱글룸, 가격 등을 미리 예약했기 때문에 인사만 하고 여권을 내밀었다. 영어나 현지어를 잘 하지 못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 방키를 받아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겨우 두세 명 탈 수 있는 정도다. 거기다 이중으로 된 문이 덜컹거리며 닫혀서 가슴이 철렁했다. 그래도 방은 그런대로 넓었고 싱크대가 있다. 배낭을 내려 놓자마자 긴장이 풀렸다.

 “와우! 왔어. 아자아자!”

 괜히 이리저리 화장실 문도 열어보고 창문도 열어보면서 흥분했다. 아직 아무것도 구경을 하지 않았는데 그냥 이 도시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들떴다. 뭔지 모를 이 맛에, 이 나이에 혼자 배낭을 메고 나왔는지도 모른다.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기분 최고다.         



             

                               " 아저씨~~~어디에 전화 하세요?" - 길에 있는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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