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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선생 Feb 24. 2020

예순다섯의 발악일까? 낭만일까?

3.'결핍과 궁핍이 창조를 낳는다'-라보카

 혼자 여기에 도착한 내 자신에 반해 흥분했다. 잠이 오지 않아 새벽 3시까지, 외워 온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를 반복해 되뇌어 봤다. 중심은 오벨리스크다. 시험을 봐도 만점을 받을 수 있겠다. 아침 8시. 일어나자마자 실전으로 뛰어들기 위해 호텔을 나왔다.

 ‘와우! 멋있어 멋있어. 이 분위기를 느껴보려고 왔지!’ 어느 이국의 도시와 별로 다름이 없겠지만 나에게는 아주 특별한 도시로 느껴졌다. 가벼운 발걸음에 콧노래가 나왔다. 웅장하고 장식도 많아 예술작품 같은 건물들도 있고 높고 심플한 현대적인 빌딩도 많다. 금은방 골목은 낙서도 많이 있고 좁고 음침해 으스스한 분위기다. 호텔에서 조금 걸어가니 바로 67.5m 높이의 오벨리스크가 보였다. 왕복 22차선, 폭이 144m 그 한 가운데 있다. 파란 신호등이 켜지고 빠르게 걸어도 한 번에 건너기 어려운 횡단보도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 그곳을 중심으로 경로를 생각했다. 

 나이 들어 혼자 여행 한때는 절대 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시간을 넉넉하게 잡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8일을 있었다. 그리고 꼭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가보고 싶은 것의 순서를 정했다. 

 일단은 호텔로 돌아와 1박에 35달러인데 3박을 더 예약했다. 방 청소를 안 하는 조건으로, 의사전달이 잘 되지 않아 그림까지 그려가며 사정을 해 5달러를 깎았다. 이 호텔의 조식은 메뉴가 한 번도 바뀌지 않고 매일 똑 같았다. 모든 것이 다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집 나오면 고생이니깐.

 그날은 아침 식사를 한 후, 이구아수 갈 버스표를 예매하러 갔다. 길거리 신문판매대에서 교통카드를 사가지고 호텔 가까이 있는 지하철역으로 내려가 충전을 했다. 버스비는 카드결재만 되고 현금으로는 낼 수 없다. 호텔 앞에서 5번 시내버스를 타고 30분쯤 가서 레티로 지역에 있는 옴니버스터미널 앞에서 내렸다. 그곳은 서울시외버스터미널보다 더 크고 더 복잡한 것 같았다. 

 건물 2층으로 올라가 이구아수 가는 표 파는 창구를 찾아가, 편도 16시간 걸린다는 왕복 티켓을 3,980페소 약 136달러에 샀다. 장거리지만 비싸다. 다시 1층으로 내려와 버스 탈 장소를 미리 가봤다. 버스 타는 홈이 1번부터 80번까지 있다. 나는 여행 하면서 버스를 많이 이용한다. 비행기는 비싸지만 편하게 빨리 갈 수 있다. 반면 버스를 타면 돈이 적게 들고 자연풍경이나 사람 사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좀 피곤하긴 하지만……, 그래도 여행의 기억이 오래 남고 진짜 여행 한 기분이 든다.  

카미니토에 있는 핸드메이드 가게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아는 곳에서 시작하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참 우연히 잡은 호텔이지만 위치가 좋았다. 책에도 나오는 유명한 피자집이 가까이 있었다. 혼자 온 사람에게는 조각피자도 팔았다. 점심시간이라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한국 아줌마의 뚝심으로 자리를 잡고 아르헨티나 피자 맛을 봤다. 부른 배를 끌어안고 오늘의 두 번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Caminito에 가기 위해, 다시 호텔 근처에서 29번 버스를 탔다.  

 사진으로 여러 번 본 곳이라 낯설지가 않았다. ‘궁핍과 결핍이 창조를 낳는다’는 말이 딱 맞아 떨어지는 곳이다. 파랑, 노랑, 빨강 등 원색으로 알록달록 칠해진, 크지 않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독특하면서도 예뻤다. 물감을 짜놓은 팔레트를 세워 놓은 듯했다. 19세기 보카항으로 들어온 가난한 이민자들이 집을 마련하고 선박에 쓰이고 남은 페인트를 얻어다 자기 집임을 표시하기 위해 칠했다고 한다. 미리 공부해온 이것저것들을 떠올리며 천천히, 그러나 신경은 곤두세우고, 가방은 움켜잡고 어슬렁거렸다. 사진을 찍고 싶을 때는 미리 구도를 잡고, 잽싸게 핸드폰을 꺼내 찍고 빨리 집어넣었다. 기념품을 파는 다양한 상점들과 식당, 카페, 술집이 많았다. 가게 앞에서 탱고를 추며 호객행위를 하고 또 길에서도 땡고를 추는 남녀가 함께 여행객들과 사진 찍고 돈 버는 일을 했다. 

 이 지역은 탱고의 발상지이다. 나는 아르헨티나를 떠나기 전 이곳을 한 번 더 왔다. 꿈에 부풀어 이 항구에 들어왔을 가난한 이민자들을 생각하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곳에 다시 한 번 올 생각을 했다.



보카항



*여기에 실린 제 글과 사진을 함부로 도용하는 것을 금합니다. - 이석례 (필명: 실비아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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