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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선생 May 09. 2020

더 늦기 전에

내 인생 도전기 - 예순 다섯 홀로 배낭여행, 남미

 혼자 배낭을 메고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젊고 미혼이고 영어를 잘하고 건강하고 또 돈과 배짱이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가족에 매여 자식 양육과 교육, 출가시키기, 남편 뒤치다꺼리 또 시댁, 친정 일 등으로 '온전한 나라는 개인적 존재'를 잃어버린 생활을 하다보면 정말 홀로 떠나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오롯이 혼자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이 이국이라니! 그것이 바로 꿈만 같은 홀로배낭여행이다. 

 그래도 딸이 시집가기 전에는 함께 배낭여행을 했다. 그 때는 내가 졸졸 따라다녔다. 딸이 가자는 대로, 먹자는 대로, 그러다보니 어떤 때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십여 년 전 독일 여행을 갔을 때는 의견이 안 맞아 싸우기까지 했다. 이렇게 내 나이 예순다섯이 될 때까지 혼자 배낭여행은 꿈일 뿐 이번 생에서는 안 되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러나 정말 ‘시작이 반’이 됐다. 

 내게 운이 찾아왔다. 3년 전 코아카 일반봉사단원으로 페루에 파견되었다. 밤과 낮 그리고 계절이 반대인 남미. 젊은이들도 가고 싶어 하는 여행지이기도 한 페루에서 기본 활동기간 2년에, 1년 연장까지 해 총 3년 간 봉사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혼자 배낭여행을 하고 더 나아가 여행기까지 써서 책을 출판하겠다는 야무진 결심을 했다.

                                    페루 밀림지대에 있는 라마스 성 안에서 찰칵


 브라질을 제외한 남미의 나라들이 스페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먼저 스페인어 공부를 했다. 하지만 생애 처음으로 접한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열 개 단어를 외우면 열한 개가 도망가는 꼴이니 절망감이 컸다. 한편 헬스장을 다니면서 체력을 길렀다. 치안도 험한 나라를 혼자 배낭 메고 돌아다니려면 걷기라도 잘 해야 한다. 

 그리고 남미 여러 나라들에 대한 역사, 지리, 문화, 음식 등에 대한 전반적인 공부를 했다. 또 다른 사람들이 여행하고 쓴 글을 책, 블로그, 브런치 등을 통해 수시로 읽었다. 그리고 항공권 구매방법, 숙소와 맛집 찾기, 또 혼자 여행할 때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사건들과 방지하는 방법 등을 수첩에 적고 외웠다. 이렇게 배낭여행을 준비하면서 설렘도 있었지만 그에 비례해 걱정도 커져갔다.

 혼자 돌아다니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나누구는 권총강도를 당하기도 했다는데…….’ 하는 걱정이 밀려왔다남들이 하는 여행을 내가 해보려니 만만한 것이 아닌 것 같고 시간이 갈수록 공포감이 커져 자꾸 쪼그라들었다여행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하지만 그러면 나중에 분명히 후회 할 것 같았다.

 진짜 더 늦기 전에 결행을 해야 한다고 다짐했다페루는 물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이구아수 폭포볼리비아 라파즈와 우유니 사막 그리고 칠레 산티아고까지평생 마음속에만 넣어두고 있다가 죽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자전거 타기


 마음을 가다듬고 심기일전해 혼자 여행가서 하고 싶은 것들을 적었다이국의 도시 중심거리를 천천히 걸어보기벼룩시장 구경하기전통음식 먹어보기카페에 몇 시간씩 앉아 커피 마시기 등등별 것 아니지만 정말 온전한 나 혼자만의 자유와   여행시간내 마음이 가는대로 이것저것 이국의 풍경과 분위기와 맛과 냄새 등 오감을 열어놓고 흠뻑 즐겨볼 상상에 의욕이 다시 솟구쳤다.

 처음으로 떠날 날이 다가왔을 때핸드폰을 잃어버리거나 빼앗길 수 있으니 비상연락 전화번호를 반복해서 외웠다여권을 복사하고 돈을 어떻게 지니고 다닐 것인가 고민했다그리고 배낭에 짐을 넣었다 뺐다하면서 배낭꾸리기에 여러 날이 걸렸다바로 전 날은 들뜨고 걱정이 돼서 밤새 잠을 못자고 뒤척이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휴일을 이용해, 페루 전국 곳곳을 혼자 배낭을 메고 돌아다녔다. 정말 이룰 수 없는 꿈같은 일이지만 이루어졌다. 사진을 열심히 찍고 메모를 하고 그리고 여행일기를 썼다. 내 인생 버킷리스트를 실현하는 일이지만 쉽고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우여곡절도 또 위험천만한 일도 여러 번 겪었다. 고산증에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말에서 떨어져 병원응급실에 가기도 했다. 

 어쨌든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입증됐고 나이 일흔이 되기 전에 홀로 배낭 메고 페루 곳곳은 물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이구아수폭포, 볼리비아까지 여행했다. 아, 이제 내 인생에서 더 하고 싶은 일은 있지만 후회는 없다. 더 늦기 전, 예순다섯에 홀로 배낭 메고 남미 여행은 ‘시작이 반’인 ‘내 인생 도전’이었다.


                                      페루 마추픽추에 갈 때는 패션이 중요해요.



                                         페루 쿠스코 시 거리에서 - 새끼 라마에게 풀 먹이기




*여기 실린 제 글과 사진을 함부로 도용하는 것을 금합니다. 이석례 (필명 : 실비아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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