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과 수단은 하나이다
우린 이미 본능으로 알고 있고 마음으로 느끼고 있다. 다만 그것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고 표현하지 못할 뿐이다. 우리 혀는 맛집을 알고 우리 귀는 명곡을 알며 우리 눈은 명작을 알아본다.
세상의 많은 미사어구가 있지만 굳이 그것들을 쓰는 것은 '본능적 느낌'을 말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어쩔 때는 수단에 너무 집중해 본질을 잊어버릴때가 많다. 그것도 그럴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대는 본질보단 수단이 다양해지고 다양한 수단 가운데 본질을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공기과자 라는 말처럼 공기는 잔뜩 부풀려진 과자봉지안에 너무나 적은 과자처럼 수단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본질을 잊어버릴 수 밖에 없는 시대이다.
역으로 본질은 있지만 수단을 활용하지 못해 알려지지 못한 사람도 의외로 많다.
나는 000을 좋아하는 것과 나는 000을 좋아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다르다. 내가 진짜 좋아한다면 상대방이 이미 그것을 알아채며 비용을 지불한다고 한다.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을 하지만 생각보다 결과가 쉽게 나오지는 않는다. 어쩌면 인생을 두 가지를 분별하고 찾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본능을 위한 수단의 관찰과 수단을 위한 본능의 관찰도 가능하다
마치, 안에서 밖을 보는 것과 밖에서 안을 보는 것이 완전히 다른 것처럼 말이다.
내가 아는 작가님께서 나의 음악회를 보며 조언을 해주신 기억이 난다.
'승규씨, 너무 많이 표현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이미 관객은 무슨 말을 할지 다 알고 있어요. 조금만 힘을 빼보세요.'
조금만 힘을 빼보라는 말은 초보 아티스트들이 흔히 들은 말 중에 하나이다. 어찌보면 무대에 대한 욕심과 뭔가 보여줘야 겠다는 열정이 과해서 일어나는 현상일 것이다.
무위자연의 말처럼 내가 자연이 되고 자연이 내가 되는 도교의 철학처럼 내가 음악이 되고 음악이 내가 되었을때 본질도 수단도 사라지는 '0' 된다. 그 순간부터 관객은 감동을 받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