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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색고양이상점 Jul 13. 2024

있는 그대로 보기

7월 13일 명상일지

 있는 그대로 보기


 명상을 하다 보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시간이 늘어난다.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다가도 이내 정신을 차린다.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는 건 그동안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건 내게 일어났거나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왜곡 없이 본다는 뜻이다. 사건을 내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같은 걸 보고도 다른 면을 부각해서 본다. 사건을 내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건 내게 해가 될지, 득일 될지를 늘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사건에 '자신'을 놓고 보면 인식은 늘 왜곡된다. 그래서 스스로를 옅게 하거나 지우고 사건을 바라보려는 노력이 있는 그대로 보기의 관건이다. 결국 문제가 되는 건 '나' 자신이다.


나에 대해


 사건의 중심에 '나'를 놓고 보는 순간 왜곡이 일어난다면, 나를 갖다 버리면 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나란 결국 과거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사건을 마음대로 편집해서 기억한 것들을 모두 갖고 있는 존재다. 그걸 자신으로 여기면서 산다. 그래서 과거에 불행한 일을 당하면 현재의 나는 '불행한 일을 겪은 존재'가 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과거에 해소되지 않은 상처는 백일하에 드러내면 상처가 낫는다고 했다고 한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같은 나라는 생각이 받쳐주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가능했겠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싹 다 기억을 모은 것들을 나다'라는 말은 그런데 맞는 말일까.


가스라이팅의 늪


  우리는 어릴 때부터 계속해서 남들이 좋다고 하는 가치를 진짜 좋은 건 줄 알고 가스라이팅 당하면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자아상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기억의 총합을 적절히 편집된 것이고, 기억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사회적 가치가 이미 녹아있는 장면들이다. 우리의 가치판단의 틀은 당연히 사회에서 쑤셔 넣은 것이고, 그것들에 부합하면 부합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우월감을 느끼고, 부합하지 못하면 부합한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간다. 우월감을 느끼는 우리와 열등감을 느끼는 우리는 그러니까 스스로를 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셈이다. 남들은 나를 그렇게 대할 수밖에 없다고 쳐도 스스로가 자신을 그렇게 대하면 망가진다.



명상


 명상이 깊어지는 날들이 있다. 한날은 유독 깊은 몰입에 들었다. 심장박동소리가 온몸에서 느껴졌다. 쿵쿵.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기도를 타고 넘나드는 공기의 결이 느껴지는 듯했다. 스스로를 시험할 수 있는 최적의 상태에 들었다. 과거에 겪은 불행한 일들을 떠올렸다. 불행한 기억을 불러와서 그 장면들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나'와 불행한 기억들을 불러와서 그 장면들을 불러내는 일을 하고 그 속으로 들어가는 나를 바라보는 '나'가 있었다. 그 상태에서 과거에 느낀 감정들은 명상을 하고 있는 현재에 있는 내게 전혀 닿지 않았다.


다시 나에 대해


 명상을 통해 확인된 '나'란 것은 사실 큰 게 아니다. 기억된 나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과거에 이미 끝났던 것들이고 그것들은 '나들'이었던 것이다. 그것들을 현재에 서서 들여다볼 수는 있지만 그것들은 현재 숨 쉬고 있는 '나'랑은 전혀 무관한 것들이다. 그것들을 현재의 나와 계속해서 같은 것들로 여기면서 살면 우리는 과거에 살았던 것들로 미래를 살고, 미래는 정해진 과거의 지루한 반복으로 살게 된다. 현재는 없이. 그러니까, 과거의 나들은 현재의 나와는 별개로 끊어버리는 연습을 통해 지나간 것들과 현재를 같다고 인식하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현재의 나는 그저 숨 쉬고 있고, 심장박동이 온몸에서 뛰고 있음을 느끼고 있는 몰입상태의 어떤 것일 뿐이다.

 

우울증이 나아지고 있다


 우울증이 심했었다. 우울증을 겪었고, 나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말하는데 우울증은 결국 자학이다. 외부적 요인을 탓하면서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드는 자학이다. 과거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너 때문이다, 환경 탓이다, 네가 날 때려서 그렇다, 네가 바람을 피워서 그렇다, 엄마 때문이다, 아빠 때문이다 등. 우울증이 심할 때 어릴 적 가정환경을 탓하고, 개처럼 공부시켰던 사회를 탓할 때 누군가 그 말에 반문이라도 하면 좆도모르면서 씨발 엄청난 반감이 일었다. 그래서 우울증이 심한 사람한테는 결국 자학이니 뭐니 그런 소리를 하면 안 된다. 결국은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아서 생기는 서늘한 병이다.


다시 있는 그대로 보기


있는 그대로 본다는 건 그래서 현재에 오롯이 발을 딛고 서서 어떤 과거의 바람이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고 사건을 눈 부라리고 바라보는 것. 그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글을 쓰면 늘 길을 잃는데, 오늘도 길을 잃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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