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혀두었던 네팔에서의 삶 꺼내 펼치기
7월의 한 낮, 덥다.
강남대로 위로 내리쬔 태양의 복사열은 월급통장마냥 지구에 닿기가 무섭게 다시 우주로 솟아 오른다. 아른거리는 그 풍경을 보고 있자니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며칠 째 일기 예보는 장맛비를 예고하고 있었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하늘은 흰구름과 먹구름이 반반이다.
먹구름들 틈 사이로 흰 뭉게 구름들이 모서리를 들어내고 태양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고 있다.
찰나, 그 흰 구름 중 하나가 만년설을 덮어 쓴 어느 히말(라야)의 봉우리처럼 보였다.
'아, 저길 올라 걷고 싶다'
네팔병이 다시 도졌다.
결혼 후, 아내와 네팔로 떠났다. 5년 전이다.
신께서 만든 역사라는 거대한 바다 위에 넘실대는 커다란 파도를 매일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저 파도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다. 그런데 혼자가 아닌 둘이 되자, 무언가 나도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겼다.
'둘이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파도 위에 몸을 내맡기듯 우리는 불확실과 도전 속으로 다이빙했다. 수많은 동기들이 있었겠지만 아마도 이 새로운 도전을 통해 내가 아닌 우리, 가정의 출발에 커다란 방점을 찍고 싶었던 것 같다.
생각보다 우리는 잘 적응했고 그 곳에서 약 2년을 살아냈다.
우리는 잘 먹고, 잘 걷고, 잘 잤다.
그렇게 우리는 이방인에서 네팔마 버스네 만체(네팔 사는 사람)가 되어 갔다.
올해 봄, 네팔에 80년 만의 대지진이 일어났다.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네팔에서 만났던 친구와 이웃들의 소식이었기에 살 갗에 느껴지는 생생한 비극이었다(안부를 묻는 e-mail에 아직도 답이 없는 네팔 친구들이 있다). 네팔에서 돌아와 이제 겨우 한국에 정착한 나에겐 그들을 도울 힘이 없었다. 구호성금을 내는 것이 다였다. 네팔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몇 주를 고민했다.
'네팔의 이야기를 써서 사람들과 나누자'
긴급한 구호활동이 정리되고 이제는 장기적인 재건에 돌입할 때이다. 하지만 네팔은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 중 하나다. 나라 경제의 많은 부분을 여행/관광에 의존해 왔는데, 그것 외에는 이 땅이 재건될 리소스가 별로 없다. 결국 여행객들이 그 곳을 찾아주는 것이 가장 좋은 희망이 될 것이다. 누군가 나의 네팔 이야기를 통해 지진이 남긴 두려움보다 그 땅의 매력을 좀 더 크게 느끼길 소망해 본다. 그래서 언젠가 그가 네팔행 배낭을 싸게 된다면 이 미안함을 좀 덜 수 있지 않을까?
5년 전, 숭고한 매일의 일터*였던 일기를 오랜만에 꺼내어 본다.
그리고, 적는다.
100% Made in Nepal 이야기
* 일기가 숭고한 매일의 일터인 이유: 어떻게든 네팔에서의 하루하루를 기록하려 했다. 그래서 겨울엔 최대 22시간 정전으로 전기가 없어 헤드랜턴이나 양초를 켜고 글을 써야 할 때도 있었다. 때로, 일기를 적는 것이 그 날 일과의 전부여야만 하는 날도 있었다. 후에 다른 글을 통해 이야기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