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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무 Nov 01. 2024

북쪽으로 가는 길, 노르웨이-IV

북위 68도, 라이텐 트레일


아침에 모처럼 맑은 하늘에 아침햇빛에 자태를 드러낸 레이네 마을 전경

 라이텐(Ryten) 트레일 코스를 가기로 한 날이 되었다. 트레킹을 응원해 주기라도 하듯 이 날은 유난히 날씨가 맑고 바람도 없어 아침 식전 레이네 마을을 가볍게 산책하였는데 마을이 품은 바다도 호수처럼 잔물결 하나 없어 거울처럼 마을을 둘러싼 장엄한 산들의 호위 진영을 그대로 비추어 주었다.


 트레킹 후보지로는 레이네브링엔(Reinebringen)과 라이텐(Ryten) 트레일이 올랐는데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여건이 되면 둘 다 오르기로 하였었다. 레이네블링엔은 레이네 마을을 바라보고 우리 숙소 바로 좌측에 있는 산에 오르는 길인데 우리가 봐도 가파른 것이 30도는 족히 넘어 보였고 오르는 내내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에 사실 질려 있었다. 물론 노르웨이에 오기 수개월 전부터 계단 오르내리기와 걷기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었지만 안개와 비와 눈 덮인 정상의 그 산을 보는 순간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레이네 마을이 아름답기 그지없다지만, 우리는 일단 오르는 내내 완만하다는 평을 듣는 라이텐 트레일 코스에 오르기로 한 것이다.  


 왕복 8.7km로 3~4시간이 소요된다고 하니 점심식사는 산에서 해야 할 것 같아 김밥과 컵라면을 가져가기로 하였다. 김밥을 마는 김밥말이 틀이 없어 잘 싸질까 걱정이었지만 "김밥이 좋은 것이, 속에 무거나  어도 돼. 다 잘 어울려"라는 주부 십 단인 자매님의 말씀에 격려를 받고 다들 김밥 싸기에 도전하였다. 김밥철학. 모든 것을 포용하는 비빔밥이 '열린' 형태라면 그 뜻을 그대로 계승한 '싼' 형태의 음식이 김밥인 셈이니, 김밥은 우리나라 음식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일 게다. 계란을 두툼하게 부치고 어묵도 가로로 길게 자르고, 분주하게 만들며 아이디어도 속속 튀어나왔다. 김밥말이 틀이 없으니 다 싼 김밥은 랩으로 둘러 마무리하자고 하며 드디어 완성된 김밥과 컵라면에 부을 뜨거운 물 등의 준비를 마쳤다.  


 10월 초의 로포텐 제도는 황금빛으로 산자락과 들이 덮였다. 풀과 이끼가 가을이 되면서 황금빛이 도는 싯누런 색과 남아 있는 초록이 뒤섞여 묘한 배경을 이루고 있었고 작은 관목들이 자라고 있어 툰드라지형처럼 보였다. 트레일 출발지점까지 가는 내내 차창 밖 풍경은 어딜 봐도 아름답게 전개되었는데 갑자기 바다가 나타났다가 갑자기 눈 덮인 높이 치솟은 산이 튀어나오더니 다시 황금빛 싯누런 풀과 이끼가 섞인 들판과 산자락이 펼쳐지곤 하였다.



가는 길 가에 풍광, 어딜 봐도 아름다운

 드디어 라이텐 트레일 초입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금이 성수기는 아니어서 로포텐 제도에서는 어딜 가도 사람이 붐비는 일은 없었다. 서너 명, 대여섯 명 어쩌다 마주칠 뿐이었다. 주차장도 삼분의 일도 다 채워지지 않아 여유가 있었고 주위에 화장실이 있어 산행 중에 화장실이 있을 것 같진 않아 다들 준비하고 출발하였다.


 사실 노르웨이 사람들은 휴양을 이 북쪽으로 오기보다는 남부 프랑스나 스페인으로 가기 원한다고 한다. 면적은 남한의 3.8배 정도 되나 인구는 530여만 명이어서 유럽에서도 두 번째로 인구 밀도가 낮은 데다가 선호하는 곳도 햇빛이 가득한 남부 유럽 쪽이니 이 위도 68도의 로포텐제도는 초가을에 이렇게  한적한가 보다. 그래도 몇몇의 젊은이들이나 중년의 현지인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좌측으로는 초지에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검은색 양들도 있었는데 양들도 검은색이 있나 싶었는데 노르웨이의 스팰사우(spælsau)양은 다양한 색을 띤다고 한다. 산행을 다 마치고 다소 지쳐서 내려올 때 리서 들리는  양 울음소리는 다 내려왔구나 하는 안도의 기쁨을 주기도 하였다.


리텐  트렉으로 오르는 길 왼쪽엔 양 떼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입구 초입에서 오르는 길은 543m의 라이텐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로 형성된 습지 가운데로 나 있었다. 사람이 다니는 길을 나무판자로 길을 내서 등산로로 이어지게 해 놓았는데 이런 구조물들은 트레일 중간중간 습지가 는 곳에 설치해 놓았다. 한 사람 정도 지나갈 정도의 폭이어서 중간중간 회피공간을 만들어 놓아 상대방이 지나가도록 기다려줄 수 있게 배려도 해 놓았는데 이런 작은 디테일이 사람을 존중해 준다는 느낌으로 따뜻하게 다가왔다. 수시로 안개와 빗발이 흩뿌리는 이곳 날씨로 미루어 볼 때 이 습지들은 항상 젖어 있을 것 같은 것이, 나무판자 길은 상당히 긴 구간에 걸쳐 있었다.


초입은 습지여서 나무로 길을 만들어 자연과 사람이 서로 편안하게 해주고 있다. 사람이 지나가도록 기다려주는 여행객이  앞에 보인다.

 이 트레일은 초입이 다소 가파른 편이어서 십여 분도 안되어 숨이 가빠왔다. 물론 모든 산들이 아무리 쉬어도 처음 오를 때는 다 숨 가쁘긴 하다. 우리 몸이 근육에 산소를 보내도록 혈류를 증가 시키기고 심장과 폐가 적응하는 데는 다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고 보니 다녀오고 난 후 생각해 보면 그리 힘들지는 않은 코스였다. 초입과 중간중간 다듬어지지 않은 산길로 두 손을 써야 하는 상황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무난한 트레일이었다.


 이 산행이 좋은 것은 그 풍광에 있었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조금씩 오를수록 보이기 시작하는데, 더 오를수록 더 빼어난 경관들을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눈 덮인 산봉우리들과 강인지 피오르드인지 모를 물길들과 바다 그리고 정겨운  해변과 함께 저 멀리 보이는 날카로운 산들 하며 오를수록 더 많은 것이 보였다.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아니한가? 학창 시절 보이는 것과 사회인이 돼서 보는 것과 이제 은퇴를 앞두고 보이는 것이 다르고 직급이 오를수록 보이는 것이 다르고 자녀일 때와 결혼해서 부모가 되었을 때와 할아버지가 돼서 보이는 것이 다르지 않겠는가?

오른 곳곳이 그림 같은 풍경들이라 발걸음을 자주 멈출 수밖에 없었다. 높이 오를수록 더 많은 것이 보였다. 우리 인생길처럼

     

산에 오르는 일행들의 모습이 주변 풍광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다.
들풀들도 단풍이 드는 노르웨이, 황금색으로 물드는 풀들과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초입에 보이지 않던 눈 덤인 산봉우리들이 장엄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라이텐 트레일은 여러 길들이 있지만 우린 체력을 고려하여 히타(Hytta) 산장까지 가서 거기서 준비해 온 점심을 먹고 내려가기로 하였다. 처음 걷는 길인지라 가늠이 안되어 다소 보수적인 결정을 내렸지만 그동안 준비했건만 나의 체력은 다 드러나고 있었다. 다시 온다면 좀 더 도전적인 선택을 할 수 있 않을까 싶다. 물론 더 체력을 준비하고 와야겠지만 말이다.


 나는 운동하는 시설을 왜 피트니스 센터(fitness centet)란 말을 사용하는지 잘 이해가지 않았었다. 피지칼 트레이닝 센터(physical training cente)라든지 엑서사이즈(exercise) 센터라든지 같은 단어를 더 사용할 것 같은데 왜 적합하다는 단어를 사용할까 궁금했었는데 점차 어느 산에 오르는데, 어떤 직무를 수행하는데 나의 육신적 능력이 적합화 되어 있지 않을 때 그 수준에 올릴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사용되는구나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사실 매년  내게 버거운 산행을 예정하게 되면 그것에 도달하도록 몸을 만들어야 하므로 피트니스 과정이 필요해진다. 그것을 핑계 삼아 한번이라도 더 계단을 오르고 더 오래 걷게 되니 이런 종류의 여행을 계획하고 성취하는 것이 내 삶에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왔다. 음식 문제로 외국 여행을 그리 반기지 않는 아내도 이에 공감하기 때문에 마지못해 따라오는 척해주는 것도 그 때문이기도 하다.


 좀 더 걷다 보니 히타 산장에 다다르게 되었다. 약간의 구릉 같은 지형이어서 확 트인 시야를 제공해 주었다. 준비해 온 김밥과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여기저기 앉아 대자연속에서 임금님 식사도 부럽지 않은 맛있는 점심을 나누었다.

히타산장 근처에서 세 자매님들이 오늘 우리 일정의 정상에 오른 기쁨을 웃음으로 나타내었다.
히타 산장은 숙소에 머무는 사람에 한해서 개방하였기에 우린 주변에 둘러앉아 준비해 온 김밥을 컵라면을 국삼아 먹었다.

  내려가는 길은 비교적 수월했지만 이끼가 낀 바위는 다소 미끄러웠고 두 손을 사용해 올라왔던 구간은 내려갈 때 매우 조심스러웠다. 등산과정 중 일어나는 사고는 내려갈 때 더 잘 나는 법이고 골절상도 내려갈 때 발생하기 쉬우니 발 한 번 내딛는 것에 신중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다리에 힘이 약간 풀린듯 약간 점프하듯 발을 착지할 때면 하체 근육이 잡아주어야 하나 그렇지 못해 휘청한 적이 한두 번 발생하였다. 일행이 걱정할 까 말은 못 하고 속으로 더 긴장하며 실족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트레킹을 마무리했는데 일전에 깨달았던 것처럼 역시 산행은 내려가는 것에 대해 준비가 있어야 했다.


 여호와를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으리니 /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가겠고 /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 걸어도 피곤하지 않으리라. 이사야 40:31


 

트레킹을 마무리하며 내려가는 길. 곳곳에 짧지만 가파른 곳이 있어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내려가는 길에도  두고 가기 아까운 풍경들이 여전히 펼쳐졌지만 오로라 볼 때 했던 J의 말처럼 맘 속에 뇌리에 담아두고 아쉬운 산행을 마무리하였다. 숨 가쁜 일정을 마치고 내려왔지만 두세 시경밖에 되지 않아 우린 바닷가 카페에 가서 처음으로 커피와 다과를 하기로 하였다. 한국에서 이런 여행을 하였다면  매일 들렸을지도 모를 카페를 노르웨이 온 지 6일 만에 들리는 셈이었다. 높은 물가에 우린 식사도 다 해서 먹고 카페도 들리지 않았지만, 그리고 눈에 띄는 카페도 사실 별로 없었지만, 힘든 여정을 마친 우리는 우리 몸에게 다소의 보상을 해주기로 한 것이다. 커피와 달콤한 디저트 그런 것 말이다.

노르웨이 공인 관광 가이드 S형제의 얼짱 모습


돌아 오는 길 우측으로 장중한 풍경이 천연덕 스럽게 그냥  아무렇지 않게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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