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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무 Aug 16. 2020

내려가기


 결혼 30주년을 맞는 해에 우리 부부는 무언가 뜻깊은 어떤 일을 해보고 싶었다. 서양사람들은 진주혼식(眞珠婚式)이라 하여 진주로 된 선물을 주고받으며 성대히 예식을 치르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우리 부부는 그런 이벤트보다는 우리의 삶에 생활에서 의미가 있을 어떤 것을 해보고 싶었다. 그 무렵 뉴질랜드로 이민 간 지인으로부터 밀포드 트래킹(Milford tracking)에 대하여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뉴질랜드 남섬에 있는 밀포드 사운드라는 지명이 있는 곳에서 4박 5일로 산행을 하게 되는데, 너무 아름다운 곳이라 이곳을 걷는 것이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로망이라는 것이었다. 사운드(sound)는 대양이 육지에 좁게 깊이 들어온 협곡, 만을 지칭하는 지형적 이름으로 홍수 때 강물이 급속히 흐르며 이러한 지형을 생성하기도 하고, 빙하가 흘러가며 협곡을 만들어 생기기도 하는데 후자의 경우를 피요르드(fjord)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부부는 전혀 산악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껏 가봐야 동네 천변을 걷거나, 근처 야산을, 그것도 둘레길 걷기를 선호하는 정도인데 산행이라 해봐야 인제 자작나무 숲이나 가평 잣 향기 푸른 숲 그리고 가장 높이 올라간 곳이 곰배령 정도였다. 더구나 산장에서 잠을 자며 가는 숙박 산행은 대학생 때 단 한번 가보았을 뿐이었다. 그 지인이 알려준 바에 따르면 밀포드 사운드 트래킹의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둘 다 미리 예약을 해야 하고 정해진 인원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다. 첫 번째 방법은 자유 트래킹으로 이 경우 음식은 각자 해결해야 하고 산장에서 잘 수는 있지만 침구는 자신이 준비해 가야 해서 짊어지고 가는 짐만 40-50Kg은 족히 넘는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방법은 가이드를 두고 가는 전문 트래킹 업체인 Ultimate hikes 프로그램에 합류하는 것인데, 이때 산장에서 숙박하며 따뜻한 온수도 나오고 음식은 레스토랑 수준의 석식과 간편 조식을 제공하고, 아침식사 시간에 그날의 점심 도시락을 각자 준비한다는 것이었고, 이 경우 배낭의 무게는 15-20Kg 정도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 지인의 말로는 후자의 경우 그렇게 어렵지 않으니 도전해 보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후자는 고비용이 요구되었다. 많은 고려와 논의 끝에 다른 한 가정의 부부와 함께 가이드 트래킹을 하기로 하고, 최대한으로 비용을 줄이기 위해 비행기 편과 4박 5일 여정 외의 숙소는 우리가 다 예약하면서 북섬에 머무는 동안에는 지인의 집에 머무르기로 하였다. 30주년 결혼 기념이니 이 정도는 우리 자신의 남은 일생을 위해 투자하자고 눈을 질끈 감고 결정하였다. 가기 한두 달 전부터 우리는 산에 오르는 훈련과 아파트 12층인 우리 집까지 엘리베이터 타지 않고 올라가기 훈련을 시작했다. 난이도가 보통 정도라 하지만 산행을 별로 하지 않던 두 부부는 각자 각오를 단단히 하고 훈련에 들어갔다.


 드디어 출발, 인천 공항에서 밤에 국적기를 타고 밤새 날아가 다음날 아침 뉴질랜드 북섬 오클랜드 공항을 거쳐 루프트한자 항공사 편으로 남섬 퀸즈타운으로 향하였다. 퀸즈타운이 높은 산 위에 하얀 눈으로 데커레이션이 하고 우릴 반겼다. 이 자체만으로도 낯선 광경인 데다, 맑고 푸른 하늘과 신선한 공기가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 듯하여, 긴 여정으로 왔지만 잠시 휴식 후 퀸즈타운 가든을 한 바퀴 돌아 퀸즈타운 시내 한 바퀴를 돌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출발할 장소를 확인 후 숙소로 돌아왔다. 퀸즈타운 가든을 한 바퀴 도는 길만으로도 이미 뉴질랜드에 온 실감을 하기에 충분하였다.

 


 다음날 출발 장소에서 버스를 타고 배를 탈 선착장까지 갔다. 몇 시간에 걸쳐 갔는데 버스 안에서 보는 주변 풍광이 파노라마 식으로 거대한 영화관 스크린 같이  펼쳐져 전혀 지루한지 모르고 수학여행 간 학생처럼 흥분하며 들떠서 가다 보니, 테어 나우(Te Anau) 호숫가 선착장에 이르렀다. 뉴질랜드 전체에서 두 번째, 남섬에서는 첫 번째로 큰 호수로써 남북으로 65km로 길게 놓인 호수인데, 마오리족 와이타하 부족 족장 헤카이아의 큰 손녀딸 이름에서 기원하였다 한다. 장시간 배를 타고 가는데 호수 주위에 높이 솟은 산들과 그 정상에 쌓인 눈들이 장관을 이루었다.


 첫날은 버스와 배로 이동하는 시간이 많았고 도착한 글레이드 하우스(Glade house)에서 사슴고기 스테이크 메뉴의 석식 후 서로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참여한 사람들은 30여 명으로 미국, 호주, 유럽 그리고 자국 뉴질랜드에서 다양한 국가에서 왔는데 아시아권에서는 우리 두 부부와 일본에서 온 70대 부부 여섯 명이 다였다. 각자 오게 된 사연과 무엇을 얻기 원하는지 말하며, 4박 5일 트래킹의 동반자들에게 자신을 알렸는데 많은 이유가 버킷 리스트에 들었기 때문인 경우가 제일 많은 이유였다. 생애 한 번은 꼭 해보고 싶은 항목에 소중히 넣어두었던 것을 용기를 내어 시도해본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중에는 남다른 사연을 가진 분들도 있었다. 암에 걸렸다 치유된 아내를 데리고 온 부부, 엄마와 딸이 손잡고 온 경우도 여럿이 있었고 장인과 사위가 온 경우도 있었다. 우리를 소개할 차례가 되어 어색한 영어로 우리 부부의 이유를 설명하였다. 우리 부부가 결혼 30년이 되었는데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고, 특히  인생의 삼분의 이를 산 시점에서 남은 일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 트래킹 과정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에 정리를 하고 싶었다는 뜻으로 말하였다. 나의 아내는 부부는 실과 바늘과 같아서, 자신은 큰 뜻은 없었는데 남편이 가자고 하니 따라왔다는 의미의 말을 하였다. 그때 호주에서 온 남자들이 큰 소리로 환호하며 '우리 아내들이 이 말을 들었어야 해'하며 박수를 쳤다. 나중에 이 호주에서 온 아저씨들은 우리 팀과 번갈아 가며 트래킹 내내 꼴찌의 자리를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한 팀이었고, 마지막 지점에 이르렀을 때 거의 나란히 꼴찌로 도착한 팀이 되었다. 다들 현장에서 생업에 종사하느라 몸이 그다지 날렵하지 않은 분들이었는데 우리가 쉬면 그들이 지나가며 격려하고, 그들이 쉬고 있으면 우리가 격려하며 주먹 악수로 으쌰 으쌰를 외쳤었다.  트래킹 첫날은 별로 걷지 않아 저녁 어슴푸레할 무렵까지 산책하다 숙소로 들어가는데, 한 영어권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제2 외국어인 영어로 자신의 마음에 와 닿게 명료하게 의사 전달한 것이 대단하다며 엄지 척하시면서 격려해주셨다.

  

출처: https://www.ultimatehikes.co.nz/multi-day-guided-walks/milford-track     


 아침에 일어나 정해진 식사시간에 부지런히 달려가 중식 도시락까지 챙기고 일찍 떠난다고 떠난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이미 대부분 출발한 뒤였다. 부지런하기론 둘째 가면 서러운 우리 한국인들인데 서양인들은 우리보다 더 부지런을 떠는 것이 아닌가? 아침 안개가 신비롭게 내려와 있는 숲 속을 향해 첫 번째 다리를 건너 클린턴 강을 우측에 두고 산행을 하게 되는데 그 광경이 비경이다.


 둘째 날은 가파른 산을 오르는 코스는 없고 완만히 서서히 올라가는 길이므로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으나 그 가는 거리가 16km 정도로 그다지 긴 거리는 아니었지만, 오르락내리락하며 걷는 길이라 중간에 중식 하는데 쉬는 시간 말고는 계속 걸었는데도 거의 예상 시간에 도착할 정도의 구간이었다. 이 구간은 일 년에 많은 비가 내리므로 雨林(rain forest) 지역이라 불리는데 나무와 땅에 붙어 자라는 초록색의 이끼들과 나무줄기에서 늘어뜨려 자라는 이끼들로 이국적인 모습과 풍광을 자아내고 있었다. 하루 종일 걸은 긴 거리는 주변 자연경관을 감상하고 맑은 계곡물에 유유자적 지나가는 송어를 보며 십여 개가 넘는 폭포들을 지나다 보니 전혀 문제시되지 않았으나, 밤에 뉴질랜드 숲 속의 별들을 보려는 계획은 곤한 몸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꼭 보고 싶었던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은 그 이후로도 맘뿐이었고, 피곤한 몸은 여지없이 매번 숙소에 눕자마자 아침 눈 뜨는 시간까지 깊이 곯아떨어지게 만들었다.

 문제는 셋째 날에 발생하였다. 가장 높은 봉우리를 넘는 구간인데 전체 거리도 15Km로 만만치 않았다. 지그재그로 닦아 놓은 길 덕분에 힘은 들어도 걱정한 것만큼 어렵지 않았다. 오르막 길에서는 꼴찌를 면하고 중상위권으로 앞서가기도 하였다. 웅대한 산들과 장관을 이룬 계곡들을 발아래 두고 오르다 보니 멀리서 정상에 오른 선발대의 환호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일차 목적지 Mackinnon pass에 도착하였다. 확 트인 능선에 작은 자연 연못이 있고 장대한 산들이 군락을 이루며 발아래 펼쳐져 있다. 이곳에서 가이드들이 뜨거운 코코아를 한잔씩 타 준다. 늦게 온 사람은 마시지 못하였다고 하니, 여기까지는 웬일로 우리가 선방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정상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후 점심 식사를 하는 곳에 이르러 지칠 대로 지친 몸을 내려놓고 서로 웃어가며 점심을 먹었다. 그날 저녁은 이 산을 내려가서 Quintin Lodge에서 묵어야 하므로 잠시 후 우리는 떠나야 했다. 길을 한동안 내려가는데 아내가 무릎 관절 뒷부분, 움푹 들어간 부분이 아파오기 시작하였다. 오금이라고 하는 의학 용어로는 슬와 부위인데 점점 더 아파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좀 일찍 내려가면 Sutherland 폭포를 보고 숙소에 들어갈 수 있었고 정상까지 우리의 진도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는데, 아내의 상태로는 도저히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동료 부부에게 먼저 내려가시라고 했다. 아내는 뒤로 내려가면 덜 아프다 하여 뒷걸음으로 하산하기 시작하였다. 아뿔싸 우린 이 트래킹 준비하는 동안 평지 걷기나, 오르막길 걷는 연습만을 하였지 내리막 길에 대한 훈련은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내리막 길은 아무것도 아니므로 매우 쉬운 것이니 구태여 내려가는 것을 훈련할 생각은 꿈에도 없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가장 힘든 오르막길을 그것도 중상위권으로 주파한 우리 부부가 생각지도 못한 내리막 길에서 이런 난관에 부딪치게 된 것이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운명이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들을 짊어지시려고 한 번 드려지셨고, 그분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죄와 상관없이 두 번째 나타나시어 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9:27-28


 좀 내려가다 보니 먼저 내려갔던 일행 부부가 자리에 앉아 쉬면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때문에 유명한 폭포를 보지 못하고 속소로 곧장 가게 되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넷째 날, Sandfly point라는 곳까지 가게 되는데 샌드 플라이는 작은 파리인데, 모기처럼 사람이나 동물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 곤충이었다. 질병을 옮기거나 하지는 않으므로 큰 문제를 일으키진 않지만 물리면 여간 가려운 것이 아니라 하여 곤충 기피제를 노출된 부위에 바르고 손에 장갑을 끼고 출발하였다. 그런데 아내의 슬와 통증이 밤새 쉬었음에도 불고하고 좋아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나와 일행 부부 중 남편 되시는 분 둘이서 아내의 배낭을 우리 배낭 위에 짊어지고 내려가기로 하였다. 그러다 보니 낑낑대며 걷게 되는데 다시 우리는 꼴찌를 도맡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호주팀도 만만치 않은 듯 저 멀리서 앉아 쉬고 있다. 하이 파이브! 서로 격려하며 걷는데 우리 모습이 여간 마음에 놓이지 않는지 제일 뒤를 담당하던 가이드 Ella가 아내의 짐을 다른 가이드 Shannon과 나누어지겠다고 하였다. 너무나도 미안하지만 다른 방책이 없어 우린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호주팀과 번갈아 가며 꼴찌를 다투며 가다 Ella가 노래를 시킨다. 우린 한국어 찬송가를 불러 주었는데 Ella가 너무 좋아하였다.

 Mackay폭포와 마지막 폭포 Giant폭포를 지났다. 마지막 목표지점 Sandfly point가 3마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샌드 플라이가 점점 기승을 부린다. 기피제 범벅이 된 팔과 손에 와서 죽으면서도 달라붙는다. 정말 이 지명이 왜 Sandfly point인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33마일 표지 말뚝을 지나니 저 멀리서 호주 팀이 33.5마일 표시판에서 우릴  허그해주고 등을 두드리며 격려해주었다. Mitre Peak Lodge에 모든 짐을 내려놓고 샤워를 하고 저녁 마지막 저녁 만찬에 참여하였다. 이때 완주 자격증을 나누어 주는데 이 자격증을  한 사람 한 사람 불러 나가 받게 한다. 받을 때마다 환호성과 박수와 서로 격려의 소릴 발하는데 가장 큰 환호성을 받은 사람은 바로 나의 아내였다. 고난을 만났지만 끝까지 주행한 아내에게 사람들이 진심 어린 격려를 해주었고 아내는 네 명의 가이드를 안아주며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였다. 다음날 Milford sound 크루즈를 마지막으로 트래킹의 모든 여정이 끝나고 버스로 귀가하여 퀸즈 타운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처음 이 여정을 시작했을 때 가졌던 질문, 우리의 남은 1/3의 일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돌아왔다고 생각했었다. 이 특별한 30주년 결혼 기념을 통한 남은 일생의 의미를 논의할 여지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끊임없이 걸어야만 했던 일정들과 마지막 만난 난관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귀국 후 시간이 지나며 차차 이 일정이 우리 부부에게 준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내리막 길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지금까지 살아오며 우리 일생은 오르막 길에 대한 준비만 해왔다. 대학에 들어가려는 준비, 직장에서 경력을 쌓으며 계속 앞으로 높이 올라가는 준비만을 해왔지 내리막 길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우리의 일생에 분명 내리막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마지막에는 우리는 다 죽게 된다는 것, 그리고 성경은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 죽은 뒤 우리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바로 그것을 위해 준비하라는 메시지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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