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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무 Aug 14. 2020

이 시대에 선비가 있는가?

 10여 년에 걸친 임상의사로서 생활에서 공공기관 전문 자문가로 전환하게 된 후, 국가단위의 중요 의사결정의 현장에 있게 되면서 근거기반 의사결정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총리실 산하의 의료선진화 사업단의 제2기 전문위원으로 참여할 기회가 주어졌고 자연스럽게 평소 소신이 있던 관점들을 제시하게 되었다. 10여 년 전의 일이다. 뜻이 같았던 학계에 계신 우리나라 암 종양 분야의 석학이신 H교수님과 같이 그 현장에 있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정부 산하 근거기반 의료를 구현할 연구원의 설립에 구성원으로 함께하게 되었다. 초대 원장으로 취임한 H교수님과 당시 초창기 멤버들이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었고 서로의 생각들, 관점들을 공유할 기회가 많았다. 당시 기억에 남는 H교수님의 담론 중 하나는 ‘나의 정의’였다. 나의 정의가 내 개인 한 사람인 경우도 있고, 가족인 사람도 있고, 자기가 속한 작은 사회인 사람도 있고 국가인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이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중심으로 살고 있다. 내가 행복해져야 하고, 내가 고가점수를 잘 받아야 하고, 내가 승진해야 하고, 내가 더 많은 이익을 가져야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외형적으로 보면 이 사람은 나의 정의가 '나'인 사람이다. 외형적이라고 굳이 언급한 것은 이 사람이 아직 깊이 이런 문제를 고민해 본 적이 없고 훗날 계기가 되면 그것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이 바뀌게 되어 나의 정의가 바뀌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드물지 않게 그런 경우를 관찰하곤 한다. 겉으로 보긴 자기중심적이고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사람처럼 보여도 그의 시각을 좀 더 큰 틀에서 보게 돕고, 참된 삶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주면 그의 눈 빛이 빛나고 그 안에 무언가 꿈틀거리며 타오르는 공감을 느끼곤 하기 때문이다. 아직 이타적 관점에 대한, 더 높은 관점을 가질 자극을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의 정의가 나인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나의 정의가 '가정'인 사랑도 있다. 작게는 직계 가족 좀 크게는 같이 밥 먹고 사는 사람, 문중과 같은 이런 정도의 규모이다. 이 정의를 가진 사람은 그 가족의 구성원이 기뻐해야 진정 행복감을 느끼므로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부단히 가족 구성원들을 챙긴다. 부인이나 남편의 눈총을 받더라도 친척 일가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것이다. 과거 우리 아버지 세대들은 적어도 그러셨다. 그래서 큰형이 동생을 위해, 큰 누나가 형제들을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일하거나 가사를 돌본 가슴 찡한 사연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는 애틋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의를 가진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가면 마피아가 된다. 우리 패밀리의 이득을 위해선 그 외 패밀리들을 해코지해서라도 우리 패밀리를 지킨다. 영화에 나올 법한 사람들이 실제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리고 좀 더 크게는 나의 정의가 자신이 소속된 작은 사회, 단체, 조직인 사람들이 있다. 국가 단위의 어떤 위원회에 참여해 보면 나라 전체를 보고 고민하는 위원이 있는가 하면, 자신이 소속된 단체의 이익을 위해 필사적으로 항변하는 사람들이 있다. 큰 틀에서 보면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보다 유연할 수 있을 텐데 그 작은 사회의 이익을 우선시하다 보니 좀처럼 회의는 결론을 맺지 못한다.


 나의 정의가 국가와 그 백성인 사람들도 있다. 이순신 장군 같은 분이 그러한 분이다. 임금의 이치에 맞지 않은 말도 이장군님의 생각을 바꾸게 하지 못했다. 임금에 참되게 충성하는 것은 잘못된 지시더라도 네네 하는 것이 아니다. 참되게 국가를 위해, 피폐해진 백성들을 위해 지략과 용맹의 균형으로 전장에 임한 이순신 장군 같은 분이 진정 그 시대에 선비요, 참된 신하요 일국의 장군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시절 그러한 이순신 장군을 폄하하고 헐뜯고 해코지하는 신하들도 있었으니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다 비슷하지 않은가? 나의 정의가 적어도 국가인 사람, 이 사람이 선비다.


 종종 국가의 어떤 순 기능을 위해 설립된 공공 기관의 직원들이나 상위의 간부들 가운데 나의 정의가 자신의 조직인 사람들도 더러는 있다. 자신의 기관이 국가를 위해 해야 할 기능이 우선이 아니라 그 조직 구성원의 복지, 이익, 생존이 최우선인 듯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우를 보면 답답해진다. 지금 그거 하라고 그 기관을 만든 것이 아닐 텐데 하는 탄식이 나올 때도 있다.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그랜트 장군은 비록 북군의 수장으로 남군과 더불어 전쟁을 하였지만 북군만을 위해 싸운 사람이 아니었다. 종전이 되고 남군의 항복을 받는 장소에서 당시 남군의 수장 리 장군은 항복문서에 서명할 때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패전으로 인해 돌아올 책임, 전쟁 비용 배상, 패전한 대가 등으로 수심이 가득 찼을 텐데, 그랜트 장군의 말은 귀를 의심케 하였다. ‘조건은 없습니다. 무기와 군인들과 말들과 모든 것을 가지고 평안히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족한 물자가 있으면 지원해드리겠습니다.’ 기뻐 축하연을 베풀려 했던 북군에게도 ‘파티는 없다. 승자도 패자도 없다. 우린 다 한 국가다.’ 정확한 표현이 그대로 기억나진 않지만 이런 맥락의 말을 한 것으로 안다. 이 종전 협상을 두고 협상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역사에 남을 만한 세기의 협상이라고 칭송한다. 만약 당시 그랜트 장군이 과도한 요구를 했더라면, 잔혹했던 전쟁의 책임을 묻고, 옳고 그름을 따지며 분노의 앙갚음했더라면, 당시 패전의 남군으로써는 다른 길이 없음으로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후 회복되고 역량이 생기게 되면 기회를 노려 연방에서 탈퇴하고 독립된 국가를 세우려 했을 것이고, 오늘날의 미합중국은 존재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랜트 장군의 ‘나’의 정의는 그렇게 컸다.


 나의 정의가 국가나 민족이 아닌 인류인 분도 있다. 예수님이 그런 분이셨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기독교인들은 좁다. 자신들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한다. 하나님이 자신들만 구원하셨다고 한다’라 말하면서 기독교는 편협하다고 비평하기도 한다. 그런데 성경을 아무리 읽어 봐도 예수님께서 믿는 이만을 위해서 죽으셨다고 하지 않으셨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십시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요한복음 1:29)

이것은 죄들이 용서받을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을 위하여 쏟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입니다. (마태복음 26:28)


 성경은 예수께서 세상의 죄를 없애셨다고 하였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라고 말씀하셨다. 사실은 이렇다. 친구여, 지금 기독교를 비판하고 하나님을 거슬려 말하고 있는 당신을 위해서도 예수님께서는 피 흘려 돌아가신 것이다. 누가 다섯 친구를 위하여 잔치를 준비하고 초대하였다 하자. 그는 다섯 친구 모두 마음에 품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음식을 정성껏 준비한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재산을 허비하여 준비하였다, 그런데 청함 받은 친구 중 어떤 이는 맘속에 이르기를 ‘이 잔치를 배설한 주인이 무슨 의도로 이 잔치를 배설하였나?’ 의심하며 ‘혹 이 음식을 배불리 먹게 하고 무슨 요구를 하려는 것 아닌가?’하며 음식에 입도 대지 않았다면, 이 음식은 그 사람과 무관한 것이 된다. 심지어 사흘을 굶어 허기진 상태라 하더라도 눈 앞에 보이는 이 풍성한 음식은 그의 허기짐을 구원하지 못한다. 열흘을 굶은 사람이라면 굶어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바로 그 친구를 포함하여 잔치를 배설하였건만.


 나의 정의에 대해, 당시 초대 원장이셨던 H교수님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꿈 구던 것을 현실화시키는 작업들을 해나갔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의료와 관련된 많은 사이비 정보들, 사익을 취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그러는지 스스로 자신의 정상적 판단을 마비시켜 그리하는지, 아님 정말 몰라서 그러는지, 입증되지도 않은 건강정보를 공개적으로 각종 매체와 인터넷 등을 통해 쏟아내고 있었다. 병에 걸린 환자 입장에서는 이런 정보들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다. H교수님의 지론은 ‘각 집마다 정수기를 놓고 물을 걸러 마실 것인가? 국가차원에서 신뢰할 수 있는 상수도시설을 갖추어 물을 마시게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그 연구원에서 근거가 있는 신뢰할만한 의료기술인지 아닌지 국가적으로 평가하여 양질의 정보를 국민들에게 줌으로써 일반인들의 선택권을 보장하자는 말씀을 하시곤 했고 구성원들의 큰 공감을 얻게 되었다. 그러던 중 어떤 연구결과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자 국회에서 국감에서 다루어지게 되었고 당시 원장이셨던 H교수께서는 대나무 같이 소신을 굽히지 않고 대처하셨다. 이것이 훗날 미움을 사게 되고 국회위원을 무시한 행동으로 오해받게 하였고 그 연구기관은 그 여파로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 대쪽 같은 선비이신 H교수님, 이런 분들이 사회 곳곳에 계신 것을 그 이후로도 목도하곤 한다. 이 시대에도 선비들이 있는 것이다. 그 선비들은 당장 자신의 영화보다는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할 말, 행동을 한다. 이런 선비들이 없다면 참으로 불행한 나라가 된다. 조선왕조 그 왕권이 시퍼렇고 권세를 잡은 조정 군신들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때도 목숨을 걸고 간하는 선비들이 있었던 나라가 아니었던가? 그 흐름이 오늘도 이 시대에 흐르고 있다. 이쯤에서 독자들은 ‘당신도 선비입니까’라고 물을 만하다. 난 선비가 아니다. 상대가 들을 귀를 갖고 있지 않다고 판단하면 입을 다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닌 것을 그렇다고 한적은 없는 것 같다. 영합하려 한적은 적어도 없는 거 같으나, 한두 번 이야기해도 못 알아들으면 거기서 그치니 천상 나는 선비는 아닌 셈이다.


 장마가 언제 그치려는지 오늘도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다. 오늘도 우리는 이 시대에 선비의 모습을 보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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