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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무 Sep 03. 2020

안전지대

 2020년 8월 첫째 주, 중국과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폭우와 홍수가 나서 이에 대해 염려가 있었던 차에 우리나라도 중부지방과 남부지방을 오가며 집중적인 호우 형태로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 간혹 강한 바람도 동반해 가며, 잦아들다 가는 다시 쏟아지는 빗줄기들. 아마존 강의 두 배에 해당하는 물을 머금기도 하는 대기천(⼤氣川)이란 현상이 있다고 하는데, 하늘에 흐르는 거대한 강이 중부지방 하늘에 깔린 것인지 임진강 하류에는 홍수 경보도 내렸다. 많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불지만 우비를 입고, 다소 큰 우산을 쓰고 매일 걷는 운동을 나갔다. 평소 흐르는 물의 양이 적어 아쉽게만 느껴졌던 냇물이 큰 소리를 내며 격류가 되어 흐른다. 자칫 그 한가운데 있다 가는 휩쓸려 내려갈지도 모르겠다는 위협감을 느끼면서 걷는다. 그 거친 물결 위로 최근 놓인 다리를 걸어 그 한가운데서 물의 흐름을 보니 물결이 도도해도 다리 위에 서 있는 내게는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 같다. 안전지대에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안전지대. 만약 다리가 없다면, 그리고 나는 이 불어낸 냇물을 건너가야만 할 입장이라면 얼마나 도전적이고 두려운 일일까? 그러나 잘 놓인 의젓한 다리가 있으므로 거센 물의 흐름 위에 나는 지금 서 있다. 안전지대이기 때문이다. 간혹 여름철 지리산에 캠핑하는 사람들이 밤새 내린 비로 갑자기 불어난 계곡에 휩쓸려 내려갔다는 보도를 접할 때가 있었다. 저녁 무렵까지는 안전해 보였기에 그곳에 자리를 펴고 텐트의 폴 대를 세웠을 터인데 밤새 내린 비는 그 자리를 휩쓸고 지난 간 것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다리도 그러고 보니 갑자기 산에 엄청난 폭우가 폭포수처럼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다면 그 물들이 합쳐지고 모여 쓰나미처럼 몰려들어 온다면 나도 이 다리 위에서 휩쓸려 내려 갈지도 모른다.  다행히 천변 뚝 방에 오를 사다리나 계단이 있어 신속히 오르면 더 나은 안전지대로 피신할 수 있을 것이지만, 그런 설비가 없다면 가파른 뚝 방을 오르다 위험에 처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발걸음을 신속히 옮겨 천변을 벗어나려 했다.


계단을 올라 뚝 방에 서니 훨씬 안전한 느낌이다.

 안전지대, 그곳이 안전지대인지는 위기의 상황이 닥쳐야 알 수 있다. 평소 안전하게 느끼며 차를 달리고 주차해 놓은 곳이 물바다가 되고 물에 잠겨 침수 피해를 주니 위기의 상황이 와야 참 안전지대인지 드러나게 된다. 1999년 921 대지진이 대만섬을 강타하였을 때 사상자가 14,000여 명가량이나 발생하였었다. 7.7의 강도로 102초간 지속된 강진으로 건물이 두부처럼 맥없이 허물어지고 어떤 이는 집 밖에 나와 보니 땅이 움직여 풍경이 바뀌었다고도 하고, 초록색 산이 붉은 산으로 변하였다고 했다는 소식들이 대만에 사는 사람들을 통해 들려왔다. 강한 지진의 영향력도 영향력이었지만 그 이후 잦은 여진으로 대만에 사는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공황 수준의 황폐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땅을 딛고 사는 사람들이 땅이 흔들리니 재간이 없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당시 나는 미국 LA 인근 Torrance에서 만성 폐쇄성 폐질환 환자에서 운동 호흡 생리와 관련된 연구소에 Casaburi 박사의 지도하에 연구진 합류하여 연수 중에 있었다. 풀장이 달린 2층 규모의 아파트의 원룸에 머물고 있었는데 아파트라고 해야 우리나라의 연립주택 단지 같은 규모였다. 어느 날 잠자리에 막 들려고 하는데 붙박이 나무 미닫이 문이 드르르 소리를 내였다. 그러더니 잠시 후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순간 너무나 당황스러워 아파트 문밖으로 뛰어나왔다. 제일 가까운 해변이 Redondo beach라도 10여 km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아파트에서 파도소리 들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해일이라도 밀려온 것일까? 하고 문밖에 나가보니 아파트 안쪽의 풀장 안의 물이 일렁이며 파도소리를 내고 있었다.  순간 아 이것이 지진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 일생 처음으로 지진이라는 것을 느껴 보게 되었다. 이 지진은 미미해서 언론 지상에도 크게 떠들 정도도 아니었는데 이런 작은 체험과 함께 당시 대만의 대 지진 소식을 들으니 대만에 살던 사람들이 얼마나 그 마음이 황폐해졌을까 하는 것이 약간이나마 마음에 와 닿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 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히브리서 12:28)


 마음대로 다니던 길이 침수되며 차들이 갇히게 되고, 당차게 내딛던 땅이 흔들리게 될 때 우린 마음에 평온을 잃게 되고 흔들리지 않는 안전지대를 찾게 된다. 영원토록 진동치 않을 안전지대. 타국에 사는 딸아이 내외에게 항상 하는 말이 거주할 집을 선택하려 할 때 항상 지금의 상태를 보지 말고 우기에 침수될 우려가 있는 곳을 피해 비교적 고지대에서 선택하라고 말하곤 하였다. 그러나 고지대라고 안전할까? 산불이 나면 고지대에 녹지가 많으니 대형 산불이 나면 피해야 할 일이다. 이렇게 머리를 굴리고 저렇게 굴려도 이 땅에서 안전지대를 찾기는 어려운 일이다. 어떤 위기에도 안전한 곳, 어떤 상황이 닥쳐도 안전한 곳, 그런 곳을 이 땅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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